어린이집 적응했다고 끝이 아니었다
나는 생계형 워킹맘입니다 5
아이 두 돌 무렵 처음으로 어린이집 상담을 다니며 집 근처 어린이집 몇 곳을 순회했다. 보통 상담 시간은 오후 5~6시였는데, 연장반 교사가 있는 곳들이었지만 대부분 원아가 보이지 않았다. 있다 해도 두어 명 정도였다.
우리는 일반반으로 등록했지만 맞벌이 부부다 보니 차후 사정이 생기면 연장반으로 전환을 할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해 연장반 운영 여부를 유심히 봤다. 하지만 생각보다 이용율이 높지 않은 모습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연장반은 일반반처럼 프로그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연장반 교사가 장난감 등으로 놀아주며 하원 시간까지 아이를 맡아 주는 곳이 많다는 것이었다. 물론 원마다 상황은 다를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 아이들은 집에 일찍 가고 싶어하고, 다른 아이가 먼저 집에 가면 서럽게 우는 아이들도 많다고 했다.
우리는 일단 아이를 일반반으로 보내고 있다. 일단 남편이 교대근무인 덕분에 3주에 한 번 꼴인 주간 주를 제외하면 격일로 낮에 집에 있어 직접 하원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근처 사시는 친정엄마가 하시던 요양보호사 일이 힘에 부쳐 잠시 쉬시는 중에 하원을 필요할 때마다 잠시 도와주시며 용돈을 받기로 먼저 말씀하셨기 때문에 3시30분 하원이 가능할 수 있었다.
오전 9시경부터 오후 3시30분까지의 시간이 다행히도 아이에겐 그리 버겁진 않은지 아이는 딱히 힘들어하지 않고 즐겁게 원 생활에 적응해오고 있다. 물론 두어시간을 더 맡긴다 해도 크게 차이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원이 좋다 한들 집보다 더 편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특히 다른 아이들이 모두 하원하고 나서 혼자 어린이집에 남아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를 생각하면 몹시 마음이 아플 것 같다. 일부 어린이집에서는 연장반 교사를 구하기 어렵고, 수요가 적다는 이유로 연장반을 맡기려는 부모들에게 눈치를 주고 아이를 빨리 하원시키라고 종용하는 경우도 꽤 있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엄마들이 번거로움과 비용에도 불구하고 하원도우미를 고용해 일찍 하원을 시키고 있다는 걸 오래지 않아 알게 됐다.
Juan Pablo Serrano Arenas 님의 사진, 출처: Pexels때마침 일을 하시던 엄마가 소정의 수고비를 받고 급할 때마다 아이 하원 및 내 퇴근시간 전까지 돌봄을 해주시겠다고 나서니 더할나위 없이 다행스런 조건이다. 물론, 아무리 수고비를 드린다해도 이미 연로하신 친정엄마를 육아에 다시 투입시키는 게 걱정스러운 건 사실이었다. 괜히 엄마 고생시키지 말고 연장반을 보내거나 하원 도우미를 쓰는 게 맞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흔한 맞벌이의 공식처럼 나이든 친정엄마를 고생시켜 내가낳은 아이를 키우는 게 싫어 부부가 교대로 육아휴직을 쓰기도 했던 우리이기 때문이다. 한참 고민이 되던 찰나 최근에 읽은 재테크 서적 <3인 가족 재테크 수업>에서 맞벌이 부부의 조부모 육아 부탁에 대한 글이 있었다.
많은 부모님이 결국에는 안쓰러운 마음으로 손주를 일정 기간 키워주는 선택을 한다. 이럴 때 자녀 입장에서 연로하신 부모님께 아이를 키워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죄송스럽겠지만 죄송함을 무릅쓰고 부탁을 드려보자. 그리고 부모님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지 말고 반드시 경제적인 보상을 해드려야 한다.
(중략) 3자에게 나갈 돈이 가족 안으로 순환되면서 부모님은 경제적 소득이 생기고 자녀의 안전과 정서적 안정을 얻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상담을 하다 보면 은퇴를 앞두고 있거나 은퇴를 했는데 노후준비가 안 돼 고민하는 5070세대가 많다. 은퇴했지만 급여수준이 적더라도 일자리를 얻으려고 애쓰거나 70세가 한참 넘었는데도 일을 하고 있는 노인도 많다.(후략)
-<3인 가족 재테크 수업> 발췌
우리 양가 부모님 역시 평생 모은 자산을 사업 실패와 사기피해 등으로 말년에 잃고 노후가 불투명해진 케이스다. 당장 생계가 어려워 육아 못지 않은 육체노동에 종사하시며 살아가고 있다. 사실 우리가 넉넉한 형편이면 그냥 조건 없이도 도와드려야 마땅한 상황이기도 하나 우리 역시 코가 석자인 탓에 부모님이 일을 하실 때까지는 정기적 도움은 드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친정엄마가 수년간 하던 요양보호사 일로 심한 피로감을 호소했고, 일을 쉬시는 동안 손주를 돌보면서 생활비 명목으로 일정액을 드리니 엄마 입장에서도 사위 눈치가 보인다거나 불편함이 적고, 우리 아기도 어릴 때부터 자주 보면서 엄마아빠 다음으로 편하게 느껴지는 할머니와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무척 안정적으로 어린이집 하원 후 생활을 보내고 있다.
물론 연장반과 할머니 도움을 '선택'할 수 있었던 내 처지가 여러모로 운이 좋고 감사해야 함을 익히 잘 알고 있다. 애초에 도움을 받을 수 없어 연장반이 선택의 문제가 아닌 맞벌이 부부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내 경우에도 만약 친정엄마가 손주 돌봄을 고사하셨더라도 전혀 원망하는 마음은 들지 않았을 것이다. 내 아이는 우리 부부가 낳았을뿐 우리 엄마의 의지로 낳은게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의 의무는 당신의 자녀들을 키운 것으로 완수된 것이다.
단, 이런 경우에 많은 맞벌이 부부들은 하원 도우미를 급히 구하는데 아무래도 '남'이다보니 발생하는 여러 가지 변수, 갑자기 도우미가 일을 그만둘 때 대타를 구하기 어려움, 간혹 정말 상식적이지 않은 사람을 만나 받는 예기치 않는 스트레스 등으로 결국 아이를 연장반에 보내고 다소 무거운 마음으로 아이를 데리러 가거나, 혹은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아이 엄마가 타율적으로 직장을 그만두게 되는 코스를 밟는다. 이런 일들이 어쩌면 우리에게도 언젠가 일어날지도 모른다.
이런 결론을 내리기 싫지만, 평범한 두 사람이 온전히 자기 힘으로 생계를 꾸리며 아이를 기르는 일이 무척이나 힘든 세상이다.
최근 저출산 해결책으로 거론되는 정책들은 대부분 아이를 둔 부모가 빨리 일터에 복귀하도록 보육을 '싼 값에, 오래' 할 수 있도록 하는 분위기다. 사실 제도적으론 근로 증명만 내면 야간 연장반을 무료로 이용하며 석식까지 먹일 수 있는게 보장은 돼 있다. 하지만 위에 쓴 것처럼 현실적인 이유로 많은 부모들은 그런 방법을 택하지 못하고, 안 한다. 교사들의 입장에서도 최저임금에 준하는 보수만을 받고 밤늦게까지 중노동에 종사하라는 건 거의 착취에 가까울것이다.
나는 부모들을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무조건 일터로 복귀시키기보다, 아이를 맘껏 가정에서 돌볼 수 있도록, 가정과 병행이 가능한 방향으로 제도가 이뤄지길 바란다. 육아기 단축근로가 있어도 대기업, 공무원이 아니면 쓰기 어려운 게 현실이고 쓴다 해도 업무량은 그대로인 게 태반이다. 그리고 애초에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부모 도움을 못 받는 이들은 수도권 기준 전세조차 구하기 어려운 현실이기도 하다. 출산율을 정말 늘리고 싶다면 이런 배경을 모두 이해하고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안정적인 직업도 집도 없는데 고작 몇십, 몇백 만원의 지원금이 나온다고 해서 젖먹이를 기관에 일임할 생각으로 아이를 낳는 부모는 많지 않을 것이다. 단순히 어린이집의 수만 늘린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