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후 돌아온 건 직장내 괴롭힘

나는 생계형 워킹맘입니다 4

by 뚜벅초

사실 내가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은 아이를 낳기 전 휴직을 냈던 직장과 다른 곳이다.

소위 수당만 챙기고 '먹튀'를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었던 직장에서 1년 4개월(연차 포함)의 장기 휴직을 선뜻 내 주니 고마운 마음에서라도 더 오래 근속하고 싶었던 게 사실이다.


앞서 말했듯이 내가 다니던 직장은 중소기업 치고는 업계에서 직원 복지를 챙겨주는 편이었다. 사내에 워킹맘도 많았고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쓰고 복직한 선배들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산휴가 3개월과 육아휴직 1년을 모두 다 쓰고 온 직원은 거의 없는 게 현실이었다. 가장 흔한 건 출산휴가 3개월에 육아휴직 6개월이었다. 나 역시 임신 초기에는 그래도 6개월 정도 휴직을 내는 게 그나마 눈치도 덜 보이고 무난할 것 같았지만, 임신기간이 지속되고 애착육아를 접하면서, 뱃속에서 자라는 아이에 대한 책임감이 점점 커지면서 그래도 내 여건상 내가 줄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을 아이에게 줘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겼다.


먼 훗날, 내가 늙고 병들면 내 곁에는 누가 남을까.

그 답이 회사나 커리어는 아니었다. 심지어 우리 업계는 여성 선배들 중 일부 '먼치킨급'을 제외하면 중년기를 넘어서면 업계에서 찾아보기도 어려웠다. 대부분 다른 길로 진로를 트는 경우가 많았다. 온라인이니 솔직히 말하자면 나 역시 그렇게 될 것 같다.

결국 내가 늙고 병든 뒤 내 곁에 남아줄 존재는 그래도 가족 뿐이었다. 특히 동년배인 배우자보다는 자식이 아무래도 남아있을 확률이 높겠지. 물론 이것은 노후에 자식 덕을 보겠다는 심보는 아니다. 하지만 자식이란, 내게 아무 것도 해주지 않아도 존재 자체로도 한없이 의미있는 존재가 아닐까.


뭐 아무튼 그런 생각으로 나는 감히 1년 4개월 육아 휴직계를 냈다. 당시 휴직계 결재를 받으러 갔을 때 임원분의 눈빛을 잊지 못한다. 웃으며 사인을 해 주셨지만 '너무 오래 내네..허허...'라는 말에는 깊은 뒷끝이 남아 있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당연히 행사할 수 있는 권리니까.


직장일보다 더 힘들었던 가정보육을 마치고 복직원을 내러 오랜만에 회사에 들르니, 완전히 낯선 신생 부서에 나를 발령하겠다는 '통보'가 떨어졌다.

잘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우려를 내비쳤지만 윗분들의 의지는 확고했다.

사실 더 강하게 반발할 수 없었던 것은, 나보다 더 짧은 휴직을 냈던 선배들도 다들 복직과 함께 기피부서에 발령돼 왔던 선례를 봐 왔기 때문이었다. 나에게만 특혜를 달라고 요구하기엔 명분이 부족했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음 반, 그래도 집에서 갓난아기와 못 먹고 못 자고 못 씻던 생활보다는 좀 낫겠지 싶은 마음 반으로 복직을 결정했다. 무엇보다 이 직장이 아니면 딱히 갈 곳도 없었다. 돈 나올 구멍도 안 보였다. 남편은 언제나 힘들면 그만둬도 좋다는 입장이었지만, 당장 내눈앞에 보이는 미래가 외벌이를 할 만큼 여유롭지 않아 보였다.


복직 초기에는 그럭저럭 '사람다운 일상'을 찾은 것에 대한 해방감으로 열심히 하루하루를 보냈던 것 같다. 하지만 아무런 매뉴얼도, 활용할 만한 경험도 없었던 신생부서에서의 업무는 점점 겉돌기 시작했다. 아무 성과를 내지 못한 채 무의미하게 시간만 때우다가 퇴근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누가 나를 갈구진 않았지만 온 몸으로 눈치가 보였다. 설상가상으로 당시 부서장은 자신이 점찍어둔 후배들을 하나하나 부서로 끌어들이며 그들에게만 일거리를 주기 시작했다. 심지어 그 사실도 뒤늦게야 알았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나와 달리 너무나 많은 성과를 내고 있는 후배들이 신기했는데, 알고보니 부서장이 자신의 라인에게 노골적으로 힘을 실어줬다는 사실을 여러 정황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에 미처 다 쓸 수는 없지만 견디기 어려운, 하지만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하기엔 애매한 모욕들을 당하기도 했다.


결국 참지 못하고 부서 이동 요청을 했다. 부서장은 의외로 흔쾌히 '그래, 루씨 씨가 여기 있기에는 경력이 너무 아깝지'라며 조금만 있으면 대대적인 부서 개편이 있을테니 기다려 달라는 답을 했다. 그 뒤로 무한 기다림이 이어졌다. 하지만 다른 이들이 속속 부서를 옮기고 있는 와중에도 내 부서 이동 소식은 없었다. 가을에 있을 거라는 부서이동은 11월이 됐고, 11월은 연말로 변했다.

그리고 그 약속은 결국 '다음 해'까지 미뤄졌다. 부서장은 아예 "위에서 새 부서를 준비 중인데 그 준비가 완료되면 너를 보내주겠다"고 했다. 아니, 그럼 또 신생 부서로 가라는 얘기였다.


Yan Krukov 님의 사진, 출처: Pexels


그제서야 나는 일련의 일들이 모두 내가 '제 발로 퇴사'하게 만들기 위한 계획이었음을 깨닫게 됐다. 육아휴직을 하고 돌아왔더니 괴롭혀서 내쫓으려 한다는, 뉴스 사회면에서나 보던 일이 정말 나에게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니 집에 와서도 무거운 감정을 추스르기가 힘들었다. 집에 와서 아이와 놀 때는 최대한 밝고 명랑한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했지만, 회식 자리에서 칭찬과 격려를 가장한 빈정거림과 비꼼을 들은 날에는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다가 펑펑 울게 돼 남편이 황급히 아이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간 적도 있었다. 그 순간 아이에게 안 좋은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서는 당장 직장을 퇴사해야겠다는 결심이 들었다. 남편 역시 빨리 퇴사하라고 재촉했다. 혹시나 정말로 완전히 경력이 단절돼 오랫동안 다시 일을 못 하게 되더라도 아이 앞에서 안좋은 모습을 보이느니 그만두는 편이 나아 보였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 알게 된 일이지만 고의적으로 일을 주지 않는 것도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됐다. 사실 몸담고 있던 시기에는 '그래도 내가 더 잘 하면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는데, 퇴사 후 지난 일들을 객관적으로 돌아보니 나는 의도적인 괴롭힘을 당했었다.


사실 직장 생활에서 괴로움이 커진 이후부터는 어떻게든 이직을 해 보려고 틈나는 대로 구인구직 사이트에 들어가 미친듯이 이력서를 넣었다. 그래도 결혼 전엔 이직을 하려고 이력서를 넣으면 적어도 열 곳 중 한두 곳 정도는 반드시 연락이 왔는데, 이번에는 도무지 감감 무소식이었다. 오죽하면 내가 이력서를 빈 칸으로 잘못 올려둔 게 아닌가 하고 몇 번이나 들어가서 재확인을 했을 정도였다. 헤드헌팅 업체에도 이력서를 넣었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간혹 자사 양식으로 추가 이력서를 보내달라 하는 헤드헌터들도 있었지만 막상 열심히 이력서를 넣고 보면 별다른 답이 오질 않았다. 그간 서른이 넘고도, 결혼을 앞두고도, 결혼 후에도, 임신 출산 육아를 거쳐가면서도 일을 꾸준히 유지해오면서 솔직히 인력시장에서 '가임기 여성'이 겪는 불리함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몸으로 체감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많아진 나이와 오른 연봉도 영향을 줬겠지만, 아이를 낳고 돌아오니 인력시장에서 나를 찾는 기업의 수요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친하게 지내던 옛 직장 동료가 자신의 회사로 이직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해 왔고, 망설이던 나는 바로 면접 일정을 잡고 이직을 준비했다. 이전 직장보다 규모도 작고 다소 열악한 직장으로 옮겼지만 후회는 없었다.


물론 요즘은 일과 육아의 두 마리 토끼를 현명하게 잘 잡는 워킹맘들도 많다. 애석하게도 내 경우에는 육아를 잡기 위해 커리어 면에서는 일보 후퇴를 선택한 케이스다. 훗날 내 결정을 후회하게 될까? 그럴지도 모른다. 많은 선배맘들이 육아 때문에 일을 포기한 과거를 두고 후회하는 모습을 봤다. 그럼에도 아직까진 나는 긴 육아휴직이 후회되진 않는다. 원체 '엄마 체질'이 아니고, 모성애가 부족했던 내가 초반 육아를 전담해서 하지 않았다면 영원히 엄마라는 자리가, 내 아이가 낯설었을 것 같다. 내 아이의 성장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잘 안다는 건 엄마로서의 효능감을 많이 키워주는 계기가 됐다. 이제 남은 건 앞으로 아이에게 '내가 얼마나 희생했는데'라며 값을 받아내려 하지 않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마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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