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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초 Apr 26. 2022

조건부 행복을 찾지 않기로 했다

나는 생계형 워킹맘입니다 17

코로나와 바쁜 육아, 직장생활에 치여 오랫동안 못 만났던 친구를 드디어 만났다. 친구는 요즘말로 '비혼주의자'로 결혼 계획과 관심 또한 없다. 30대 초반에 독립을 해 원룸에서 살던 친구는 최근 드디어 방 두 칸 짜리 집을 마련해 새 보금자리를 마련하게 됐다.

친구는 여전히 결혼을 종용하는 엄마로부터 스트레스를 받다가 최근 새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며 '원래 결혼할 때 보태주려 했는데 이번에 결혼한다 셈치고 주겠다'며 엄마가 금일봉을 주셨다고 했다. 그러면서 '드디어 나를 포기하셨나보다'고 안도를 하고 있었는데 웬걸, 어느 날 갑자기 내 얘기를 하시며 "루씨 걔는 잘 지낸대니?"하며 내 안부를 물으시더라는 거다. 친구는 "응 결혼해서 아기랑 행복하게 살고있지"했더니 대뜸 "아니 너는 친구가 결혼해서 애도 낳고 잘 살고 있는데 그걸 보고도 아무 생각이 안들어?!" 하시더라고.

이 말을 듣고 나는 전혀 엉뚱한 포인트로 충격을 받았다.

친구가 내 삶에 대해 묘사한 '행복하다'는 형용사, 마치 동화속 공주님과 왕자님의 엔딩에서 '그 둘은 결혼해서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답니다'와 같은 뉘앙스가 느껴져서다.

남들이 당연히 이견의 여지 없이 행복할거라 생각하는 나의 삶은 과연 내 스스로 행복으로 충만하다 할 수 있는가.


결혼생활까지는 착한 남편을 만난 덕분에 그럭저럭 만족했지만, 육아를 하면서는 솔직히 말해 흔히들 말하는 '그전엔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경지의' 벅차오르는 행복이나 즐거움을 느낀 적은 아직 없었다.

물론 나의 조건은 나쁘지 않다. 육아에 나보다 더 적극적인 남편과 가까이 살면서 수시로 도움을 주실 수 있는 친정엄마, 그리고 임신출산 과정에서 별다른 이벤트가 없고 부부 모두 육아휴직을 쓸 수 있었기 땜에 임출육으로 일을 강제로 내려놓지 않아도 됐었다. 나는 운이 아주 좋은 편이라는 걸 인정한다.

사랑하는 남편과 아기도 있고 일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어린시절 꿈에 그리던 그럭저럭 화목한 정상가족을 꾸리고 있는 나는 분명 행복해야 하는데 왜 그렇지 않은가? 이런 생각을 하는 나는 배부른 투정을 하는 것인가?


Tim Mossholder 님의 사진, 출처: Pexels


사실, 나는 자유와 혼자 있을 시간이 제한됐을 때 불행감을 많이 느끼는 성격이라는 걸 너무 늦게 알았다.

육아가 힘들고 혼자 있을 시간이 없어져 괴로운 건 여느 엄마들이 대부분 겪는 감정이긴 하다. 하지만 아이의 웃는 얼굴이나 사랑스러움으로 그 이상의 행복을 얻고 둘째까지 계획하는 엄마들도 다수인 것 같은데 애석하게도 나는 그것이 힘듦을 상쇄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내 행복을 찾기 위해 아이의 행복을 희생시켜가며 내 생활을 '억지로' 찾을 생각은 없다. 내가 내 시간을 가지면 그만큼의 시간은 남편이나 친정엄마 등 다른 사람이 또 그만큼 자유를 희생해야 한다. 어차피 예전처럼 온전히 그 시간을 만끽하지 못한채 마음 한켠이 불편한 상태로 몸만이 쉴 뿐이다. 게다가 아이는 내가 일을 하는 동안에는 어쩔 수 없이 나와 분리돼 있고, 아직은 내 손길이 많이 필요한 영유아일 뿐이다. 내 의지로 세상에 내놓은 아이기 때문에 내가 다소 내 행복을 희생해서라도 아이의 행복을 지켜주는 것이 지금은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에 잠겼다. 만약 내가 친구처럼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서 살았더라면, 아니면 결혼하더라도 출산을 하지 않고 딩크로 살았더라면 과연 더 행복해졌을까?

가지 않은 길이기에 함부로 논하기는 어렵지만 일견 친구의 자유로운 삶이 부럽기도 했다. 내가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기관을 알아보러 상담을 다니고 발달센터를 돌아다니고 울고불고 밤을 지새며 화장실도 마음대로 가지 못하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보다 아이가 좋아하는 동요, 내가 먹고 싶은 것보다 아이랑 같이먹을 수 있는 음식, 내가 가고싶은 곳보다 아이가 놀 수 있는 키즈카페나 공원을 찾아다니고 주말에도 쉴틈 없이 아이의 발달에 좋은 놀이를 준비하는 동안 친구는 직장생활 이외에는 다양한 취미생활로 자신의 삶을 여유롭게 즐기는 것 같아 보였다. 친구는 스스로도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남과 비교하지 않고 오로지 나 자신만 놓고 비교해 본다면? 나는 결혼 전 혼자일 때 항상 행복하기만 했었나?

집에서 독립하며 불화한 원가정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스스로 돈을 벌면서 그동안엔 엄두를 못 내던 다소 비싼 음식들과 사고싶은 것들을 사고, 늦은 시간까지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는 자유를 만끽하며 홀가분함을 많이 느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한켠에는 늘 불만과 불안감도 있었다. 정년이 보장되지 않는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이 일을 그만두게 되면 생계는 어떻게 유지할지, 늙어서 주변에 아무도 남지 않게 되면 내 미래는 어떻게 될지, 이미 결혼한 친구들은 주말에 시간이 나지 않아 혼자 주말을 보내게 되면 무엇을 해야 할지 허전함이 밀려왔다. 서른이 넘으니 혼자서 떠나는 여행도 더 이상 재미가 없고 심심했다. 어쩌다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도 이미 서로 취향이 너무 확고해진 탓에 맞추기가 더 스트레스였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해서 자식을 낳고 키우는 내 삶이 더 행복하며 정답이라는 얘기는 결단코 아니다. 나는 나 스스로 평생 '비혼'에 만족하며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님을 알았고 마침 착하고 어진 남편을 만나서 가정을 꾸리기로 결심했었다. 자식을 낳기로 결심한 것도 나였다.

 

결국 어떤 상황도 100%의 행복, 만족을 보장하진 않는다. 

행복은 상황에서 찾는 게 아니라 스스로 찾는 것임을. 

같은 상황에서도 나는 항상 오지않은 미래를 앞당겨 걱정하며 불안해했지만 친구는 현재를 즐기며 만족한 상태를 누리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힘든 육아와 일을 병행하면서도 아이가 자라는 모습에 행복을 느끼는 엄마들이 더 많다.

결국 조건이 아닌 내가 바뀌어야 하는 것임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마냥 그리워하고 추구하며 현재를 불행으로 만들기보다는,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서 행복을 찾기로 했다. 물론, 몸이 힘들면 행복을 잘 느끼지 못하는 나의 성격상 아이가 어릴 때는 어쩔 수 없는 스트레스를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아이가 어린 것도, 내가 일거수 일투족을 모두 챙겨야 하는 것도 인생 전체에서 보면 잠깐이니까. 나의 젊은 날 일상처럼 함께했던 불안감에서 조금은 벗어나 지금은 평생 나와 함께할 배우자와 아이가 있어 느끼는 만족감과 안정감도 큰 선물임을 매 순간 깨달으려고 한다. 행복은 누군가가 내게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자각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아이도 자라고, 나 역시 아이의 행복한 모습에서 더 큰 행복을 선사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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