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전 조리원 동기는 생각만 해도 왠지 부담스러웠다. 출산 전까지 전혀 삶의 궤적이 달랐고, 단지 아이를 비슷한 시기에 낳았다는 것 외엔 아무런 공통점이 없는 성인여성들이 그렇게까지 친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어서 일부러 밥을 방으로 갖다주는 조리원을 선택했다.
그 후 2년이 넘었지만 아직 한 번도 조동이 없는 생활이 불편하다거나 후회가 된 적은 없었다.
심지어 우리 아기는 또래보다 다소 발달이 늦기 때문에 만약 조동이 있었다면 실시간으로 비교가 되면서 심적으로 더욱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을 거란 생각이 들어 오히려 가슴을 쓸어내린다.
기존에 알던 친구나 동료들이 임신출산을 하면서 육아 얘기를 하기도 하고, 필요한 정보는 왠만하면 인터넷에 다 있거나 개인적으로 전문가를 찾아다니고 책을 찾아보며 공부했다. 요즘은 아무튼 정보가 많아서 문제지 부족할 건 없었다. 아직 교육이나 입시가 크게 이슈되는 시기도 아니고 영유아기에는 동네 네트워크가 그리 절실하지 않은 게 사실이었다.
더군다나 코로나로 1년 넘게 집콕생활을 했지만 원체 사람을 만나며 에너지를 얻는 성격이 아니다보니, 육아가 힘들어서 그렇지 사람을 못 만나 외롭단 느낌은 전혀 없었다.
시간이 지나 복직을 하고 더 지나 아이도 어린이집에 가게 됐다.
타지역에 사는 친구도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며 자연스럽게 다른 엄마들과 모임을 형성했다기에 나 역시 그렇게 될 줄 알았다. 그전엔 없던 엄마들 네트워킹이 생기면 어떻게 처신을 해야 되나, 좋은점도 있다지만 피곤한 일도 많다던데 걱정도 됐었다. 친구의 경우에는 같은 어린이집 엄마 중 하나가 텃세를 부리느라 아무 이유없이 인사를 받지 않아 어처구니 없었다는 경험담도 있었다. 아이의 발달, 남편의 직업, 벌이, 양가 부모님의 금전적 지원, 사는 집의 평수와 자가 전세 여부까지 세세하게 캐묻고 따지는 분위기도 있다길래 긴장도 됐다.
그런데 이게 왠걸, 워킹맘인 나는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녀도 그 아는 엄마가 '안 생겼다'.
다들 어떻게 동네엄마 친구를 만드는 걸까? 맘카페를 검색해 보니 친한 엄마를 만들려면 가만있지 말고 먼저 다가가라고들 했다. 등하원 길에 마주치면 먼저 반갑게 말을 걸고 커피라도 한 잔 사고, 혹은 놀이터에서 아이를 놀리면서 옆에 있는 엄마의 전화번호를 따고 다음에 집으로 초대하는 방식으로 친해진다고들 했다. 그런데 나는 도무지 내 동선에서 다른 또래 엄마를 마주칠 일이 없었던 것이다.
아침에 부랴부랴 아이를 준비시켜 등원을 해도 소규모 가정어린이집이라 그런지 다른 엄마들은 보이지 않았다. 하원할 땐 주로 남편이 비번일 때 하거나 친정엄마가 대신 해 줘서 역시 잘 갈 일이 없었다. 이 동네 놀이터는 온통 초등 이상의 큰 아이들이 노는 분위기라 우리 아이같은 어린 아이들은 잘 보이지도 않았다.
출처: www.irasutoya.com
솔직히 말해서 나 자신만 생각하면 오롯이 우리 가족의 힘으로만 육아를 하는 지금의 상태가 더 편하다.
괜히 비교를 해서 속 시끄러울 일도 없고, 관심 없는 화제에 흥미있는 척 이야기를 들어줄 필요도 없고, 나와 살아온 과정도 방식도 결도 다른 사람들을 단지 내 아이의 친구 엄마라서 친한 척 생활을 공유하지 않아도 돼서 좋다. 만난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을 서로 집에 초대해서 사생활을 공개하는 것도 내 성격상 거부감이 먼저 든다. 학교 다닐 때도 무리지어 놀기보다는 맘에 맞는 소수의 친구들과만 노는 편이었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 육아를 하려면 이런 상태를 유지하기 어렵다고들 한다. 영유아기에는 크게 와닿지 않지만 유치원에 가면 하원 후 함께 놀이터에서 놀고 조를 짜 체험활동을 다니면서 미리 친구무리를 만들고, 그대로 초등학교에 진학해 적응을 돕는다는 것이다. 요즘 초등 저학년 이전 아이들의 친구관계는 엄마가 만들어주는 게 암묵적인 분위기라고 한다.
이제 겨우 두돌이 좀 넘은 우리 아기는 어린이집에서도 키즈카페에서도 처음 보는 또래나 형, 누나들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 자연스럽게 같이 어울려 노는 걸 봐서 타고난 사회성은 괜찮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더 크고 나이를 더 먹으면 어찌될 지 모를 일이다. 아무리 사회성이 좋아도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이미 친구 무리를 형성하고 있다면 다가가기가 어려울 수 있다. 자식을 위해선 약간의 리스크라도 줄이고 싶은 게 부모의 마음이니까.
그리고 이런 엄마모임 네트워킹에서 워킹맘은 열세일 수밖에 없다. 일단 물리적인 시간과 기회가 부족하다. 또 가진 정보도 부족하다보니 다른 엄마들 입장에선 '얻을 게 없다'. 그래서 보통 전업맘은 전업맘끼리, 워킹맘은 워킹맘끼리 어울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워킹맘들은 계속 시간을 내기 어려워서 네트워킹 자체를 맺기 어렵고 결국 이것도 워킹맘이 '내가 회사를 다니느라 우리 아이의 사회성이 부족한가'하는 자책과 고민을 던져주는 원인이 된다고 한다.
우리 가족은 때마침 현재 다니는 가정어린이집을 졸업할 때 쯤 다른 지역으로 이사갈 예정이라 어차피 초등 이후의 인간관계를 위한 네트워킹은 이사 후 맺어도 될 것 같다. 만약 그때도 계속 일을 하고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 친구를 사귀어야 할까 고민이 된다. 안 그래도 새로 형성되는 단지라 교육기관이 부족해 어디로 옮겨야 할지도 걱정인데, 육아기 단축근로라도 쓸 수 있다면 기관 선택 폭이 좀 더 넓어지고 겸사겸사 하원 후 엄마모임을 만들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물론 아직까지 직장을 다니면서 육아기 단축근로를 쓰는 사람을 직접 본 적은 없기에 가능성은 높지 않다.
결국 내 고민은 아직 어떤 방향으로도 결론이 나지 않은 미해결 상태다. 어쩌면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육아휴직 제도가 개선돼 좀 더 많은 휴직이 가능해질지도 모르고 여러가지 다른 사유로 결국 퇴사를 결정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게 되든 우리가 덜 후회하고 더 만족스럽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