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단상
지난 7월에 작성한 글이나 매거진을 새로 분류하면서 재발행했습니다.
이점 감안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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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이 곳에 글을 남길지 말지 고민이 됐다. 일단 발단이 된 사건은 우선 돌아가신 분이 그 선택을 하게 되신 이유를 명백하게 밝히지 않은 상태로 극단적 선택을 하셨으며 비록 돌아가신 장소가 교실이라고 해도 그 가해의 주체가 무엇인지는 여러모로 설왕설래가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연차 낮은 교사에게 일방적으로 하달되는 업무의 양이 과다했다고 하고(실제로 배우자가 공직에 있는 입장으로서 저연차 시절 과도한 업무미룸을 당해봤다는 경험담을 들은 바, 이는 아예 근거없는 소문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다) 혹자는 진상 부모들의 상식에 어긋난 컴플레인이 한 사람을 죽음으로 밀어넣었다고 한다. 하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으므로 살아있는 자는 우선 여기에 대해 함부로 어떤 억측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그렇지만 동료교사들 또한 현장의 비상식적 민원이 극에 달했다고 입을 모으는 상황에서 이는 분명히 우리 대중들이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는 생각은 든다. 그도 그럴 듯이 이미 많은 선생님들이 학부모와 그 가족의 괴롭힘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세종시에서는 한 어린이집 보육교사가 학부모 가족의 지속적인 괴롭힘으로 자살했지만 이번 사건처럼 화제가 되지도 않고 그냥 '인터넷 짤방'으로 가끔씩 회자가 될 뿐이었다. 물론 그 사건은 '맘충 클래스 ㄷㄷ하네'정도의 자극적인 제목으로 '유머글'로나 소비될 뿐 별다른 반향이나 제도개선을 이끌지는 못했다.
아이를 낳고 엄마로 살아간지 어느덧 3년 반 정도가 지났는데, 그간의 소회를 말하자면 우선 애 엄마에 대한 시선이 정말 상상 이상으로 차갑고 배타적이고 걸핏하면 '가르침의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또 하나 느끼는 점은 정말 많은 부모들이 이전세대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육아를 열심히 함과 동시에 상당수의 부모들은 기본적인 책임조차 지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가정보육이 충분히 가능한 상황에서도 열이 나고 아픈 아이들을 보육기관에 일단 넣어 두면 된다는 입장이고, 무상보육의 혜택을 맘껏 누리며 "공짠데 안 누리는게 바보"라고 생각하며 양육의 시간을 최소화하기에 급급하다.
물론 이해가 아예 안 되는 건 아니다. 나는 아이가 기관에 가기 전, 그러니까 글자 그대로 24시간 아이와 한몸처럼 붙어있던 시절, 난생 처음으로 우울증에 걸려서 정신과 약을 아침저녁으로 복용하며 그 시간을 버텼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렇게 고생스러우면 차라리 어린이집이라도 보내라 했지만 나는 당시 코로나의 두려움도 있었고, 무엇보다 내가 내 의사로 낳은 아이에 대해서 최소 1년 남짓도 책임을 못 진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기관에 보낸다고 '애를 버리는 것'은 아니라고 반박할 분들도 있겠지만, 그때 우리 아이는 돌도 되기 전이었고, 돌 이전의 아이는 엄마가 단지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애착형성이 완전히 이뤄지기 이전의 아이들은 부모와 떨어져 있을 때 '유기 불안'을 느끼기도 하니, 아이의 입장에서는 자기가 '버려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 어린 아기들에게는 상황설명이 되지 않으니, 그렇게 생각한다 해도 오해를 바로잡을 기회가 없는 것이다.
최근 내 또래의 많은 주변인들이 임신과 출산을 하고 있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상당수의 많은 예비 부모들이 하는 말은 "나는 아이를 낳더라도 옛날 엄마들처럼 무조건 희생하고 싶지 않아. 나는 내 인생을 살 거고 아이랑은 그냥 평등하게 공존하면서 친구처럼 지내고 싶어"다. 실제 아이를 낳으면 이게 얼마나 현실화 가능성이 낮은지는 차치하더라도, 과연 아이를 키우면서 희생을 안 하는 것이 능사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요즘은 희생하는 어머니상에 대한 반감으로 너도나도 희생하지 않고 '우아하게' 육아를 하는 것이 트렌드로 자리잡은 것 같다. 여기에 '친구같은 부모상', 마음을 읽어주는 친절한 육아관까지 끼어들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에게 쓴 소리 하지 않고 우아하고 예쁜 목소리로 "그랬구나, 우리 ㅇㅇ이가 불편했구나~ 괜찮아~"만 반복하는 기이한 육아상이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육아를 해 본 결과 아이들은 결코 누군가의 희생과 '망가짐'이 없이는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자랄 수 없다. 사실 우리 모두가 다 누군가의 희생을 토대로 자랐다. 우선 임신/출산 자체가 모체의 건강을 크게 위협하는 과정인데다 갓 태어나서 3년 정도는 아이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크게 제약되다보니 먹고, 입고, 자고, 씻고 등 기본적인 생존을 영위하는 것마저도 주양육자가 자신의 일상을 오롯이 갈아넣어야 겨우 가능하다. "옛날 아이들은 대충 막 키워도 잘 자랐다는데?"라는 말도 있지만, 물론 어느 정도는 그런 측면도 있긴 하지만, 더 구체적으로는 예전에는 주양육자-주로 엄마나 할머니-의 희생이 따로 조명되지 않았을 뿐, 예나 지금이나 육아는 엄청난 희생을 담보로 한다는 게 사실이다. 오죽하면 애 보라니 차라리 콩밭 매겠다는 옛말이 있겠는지.
그러나 소위 'MZ'라고도 불리는 우리 세대는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내 인생을 오롯이 바쳐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기에는, 우리 역시 충분히 귀하게 자란 세대다. 우리가 어릴 때도 이미 평균 출산율은 2명을 넘지 않았으며 80%가 넘는 인구가 대학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양육에 필요한 에너지와 요구되는 육아의 완성도는 어느 세대보다 높다. 그저 밥 먹여주고 재워주기만 하면 평생 효도를 하는 것이 마땅했던 이전 세대와는 차원이 다르다. 발달부터 건강, 정서, 교우관계, 학업까지 완벽하게 케어하고 열심히 맞벌이해서 결혼자금, 취업자금까지 물려줘야 겨우 부모노릇 '평타'는 쳤다고 하는 세대다. 양육자의 역할은 무한대로 늘어났는데 부모는 희생을 하기 싫다? 결국 다른 사람이 희생을 '대타'로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만만한 대상은 아이를 대신 봐주는 조부모나, 어린이집·학교 교사 등이 된다.
나도 소중하지만, 내 아이는 나보다 더 소중해. 이게 바로 요즘 세대의 많은 부모들이 가진 생각이 아닐까. 그렇게 소중하기 때문에 작은 상처라도 나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혹시나 학대를 당한 게 아닐까 걱정되고, 어린이집 선생님 표정이 굳어 있으면 내 아이가 평생 갈 마음의 상처 트라우마를 입을까봐 걱정이 되는, 육아 서적과 논문을 탐독하는 나와 같은 많은 엄마들의 정서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것을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고 어린이집 문을 두들기는 순간 당신은 진상 엄마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걱정되면 집에서 끼고 키워야 하지만, '내 자유시간' 또한 소중하기 때문에 기관의 단 맛을 끊지 못한다.
애 낳고 기르기 좋은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데 나도 동의하지만, 자기가 마땅히 지어야 할 책임을 지지 않는 부모가 많은 사회는 아무리 출산율이 늘어봐야 지금과 같은 문제는 여전할 것이다. 이런 문제를 그냥 둔 채 아무리 '오은영 박사' 개인을 마녀사냥하고, 80년대생 맘충은 '개똥녀' 때부터 문제였다고 두들겨패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 막상 진짜 타깃이 되어야 마땅할 진상들은 애초에 그런 비난을 받는다 해도 자신은 정당하기 때문에 '예외'일 거라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당되지 않는 대다수의 '정상 맘'들이 아무리 행동을 조심해봐야, 이미 '애 엄마는 맘충'이라는 도식에 젖어든 대중들은 당신에게도 예외없이 돌을 던질 것이다. 나는 개인 SNS에 예스키즈존 식당을 소개하며 '아기 식기도 마련돼 있어서 아이랑 같이 밥을 먹을 수 있어 좋았다'고 '칭찬' 했는데, 어떤 이가 '지 새끼 먹일 밥그릇은 들고 다녀야지 맘충 같으니 ㅉㅉ'라는 댓글을 남긴 적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항상 외출시 아기용 식기를 들고 다니는 편이지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아기식기 하나 없는 이런 업장은 영업을 하지 말아야 한다'며 맘카페에 올려 조리돌림을 한 것도 아니고, 만약 그 가게에 아기식기가 없었다 한들 나는 준비된 식기로 밥을 먹였기에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대치 않은 서비스를 받아서 칭찬을 했을 뿐인데, 역시 혐오에는 타당하고 이성적인 사고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실감한 에피소드였다.
이미 이번 사건으로 인한 파장도 산으로 가고 있는 모습이다. 그동안에는 그래도 '논란'의 수준이었던 '애 엄마 혐오'가 이제는 '그것 봐라 역시 맘충 혐오는 사이언스'라는 식으로 확산되고 있고, 급기야는 애 낳은게 무슨 벼슬이라고 쓸데없는 출산 장려 정책 싹 다 없애버려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 형국이다. 길에서 애 엄마만 봐도 심장이 두근거라고 해꼬지를 당할까봐 신경이 곤두선다는 글들도 수 차례 봤다. 이번 사건 혹은 이전의 비슷한 고통으로 극단적 선택을 하신 분들이 이런 식의 논의를 과연 원했을지, 나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런 식의 '돌 던질 대상 찾기'로는 아무 것도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개념' 있으니까 이 논의에선 예외야"라는 식의 사고방식도 단편적일 뿐이다. 이미 맘충을 욕하는 사람들은 상대의 개념 있고없고 여부보다는 '맘'인지 '아닌지'가 중요할 뿐이기 때문이다. 내가 겪었던 것처럼 평범한 식당 칭찬, 교사 칭찬에도 '너도 맘충이야'라는 댓글을 받게 되는 건 시간 문제일 뿐이다.
사실 이러한 사태의 해결점은 이미 '노키즈존' 논쟁 때부터 논의돼 왔다고 본다. 비단 아이를 동반한 고객뿐이 아니라 도에 넘치고 상식적이지 않은 요구를 '손님은 왕'이라는 케케묵은 명제를 갖다대며 요구하는 진상들을 합법적으로 제지할 수 있는 방법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손님이 '소설'을 날조해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려 가게를 문닫게 한다 한들 이미 명예훼손 재판이 끝나고 난 뒤에는 한 자영업자의 생계 또한 파탄난 뒤일 것이다. 교육기관 또한 마찬가지다. 이미 교육서비스 또한 '과열경쟁'에 내몰린 상황에서 업주들과 원장들은 과도한 친절경쟁으로 수익 창출에 나서고 있고 그 과정에서 구성원들은 부속품처럼 갈릴 뿐이다. 그리고 요구되는 친절 서비스의 수준도 갈수록 상향평준화되고 있다. 어디에도 가르치는 이에 대한 인격적 존중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이를 개선하는 것은 너무 비용도 많이 들고 어렵기 때문에, 대중은 만만한 이들을 조리돌림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모습이다. 그 편이 더 쉽고 재밌고 자극적이어서 '조회수가 잘'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학부모들에게 아무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내 육아의 1차적 책임이 부모인 내게 있다고 절감하지 않는 한, 내 자식은 자라면서 조금의 상처도 받아서는 안 된다고 믿는 한, 내가 상처주는 것은 괜찮지만 남이 주는 것은 큰일 난다고 생각하는 한, 나는 '우아'하고 '친구같은' 부모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자식에게 절대로 쓴소리를 할 수 없다고 믿는 한 교실의 문제아들은 점차 늘어나고 그것은 누구보다도 당신 자신과 자식에게 가장 큰 데미지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또 자식에게 쓰는 시간과 에너지를 아끼고, 그로 인한 묘한 죄책감을 교사에게 깐깐하게 구는 것으로 해소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한 이런 사태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그로 인한 '욕'과 '돌팔매질'은 엄한 부모들이 대신 맞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