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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세를 뜨지 못하니, SNS라도 지웁니다

알고리즘 노예 탈출기 - 1

by 뚜벅초

보통의 결심은 대개 '오늘까진 맘껏 먹고, 내일부터는 샐러드에 닭가슴살만 먹어야지!' 하는 식으로 계획적으로 흘러간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여느 날처럼 퇴근 후 화장실에서 물놀이를 하는 아이를 보며 스마트폰 속 SNS 앱들을 모조리 지우는 것부터 시작됐다. 그만큼 나는 많이 지쳐 있었던 것 같다.


출근해 종일 일을 하고 퇴근 후 집에서는 육아 출근을 하는 쳇바퀴 같은 삶 속에서 나는 언제부턴가 같은 망상을 하기 시작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지금 사는 집을 내놓은 뒤 주변에 아무 것도 없는 조용한 곳으로 가서 고요하게 내 가족만 챙기며 사는 삶을 살아보면 어떨까. 너무 많은 의무와 너무 많은 인간관계가 버거웠다. 뼛속까지 내향인이고 에너지가 많지 않은 나는 나 자신의 일상을 감당하는 것도 이미 피곤했다. 직장에서는 보직을 맡아서 내 할일 외에도 다른 사람들과 회사 대소사까지 일부 책임져야 했고 점점 자라나는 아이는 몸은 조금씩 편해졌지만 결정하고 알아보고 판단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였다. 심지어 아이가 친구를 사귀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보호자들까지도 안면을 트게 됐다. 내 인간관계와 관심사는 카카오톡 친구목록의 수천 명 친구들 그 이상으로 한없이 넓어지고 말았다.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이곳 '브런치'만 봐도 우리 가족보다 여건이 받쳐줘서든, 더 큰 용기를 갖고 있든 실제로 모든 의무를 벗어던지고 자연 속으로 칩거하는 삶을 실행에 옮긴 분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런 용기도 여건도 따르지 않았기에 망상은 그냥 망상으로만 고이 접어둔 채 잠에 들었다 깨어 똑같은 하루를 반복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체념하기를 거듭하던 어느날, 다른 생각이 들었다.

꼭 몸을 격리시켜야만 마음의 평화가 찾아올까? 그 이전에, 내가 정신적으로 과도하게 맺고 있는 관계들과 정보들은 없나?

그렇다. 나는 이미 늘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 속 무한 새로고침 알고리즘으로 수많은 정보들과 관계들을 내 일상에 부르고 있었다. 딱히 초대하진 않았지만, 이미 내 삶에 너무도 깊숙히 들어와 있는 불청객들이다.


새로고침 한 번만 당기면 무한대로 새로운 정보들이 쏟아지는 SNS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의 실시간 알고리즘 피드와 각종 익명 커뮤니티의 1분에도 수십 개씩 쏟아져 나오는 글들.

그곳에서 나는 내가 평생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의 비정상적인 행태, 예를 들면 진상 시댁 식구들과 배우자의 악행과 꼴 보기 싫은 직장 동료의 나쁜 습관을 공유하며 욕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나의 사연도 온라인 어딘가에 올라와 있을지도 모른다. 다른 인종 다른 종교 다른 신념을 가진 사람들의 끔찍한 점을 한껏 부풀려 혐오감을 부추기는 콘텐츠들도 조회수가 잘 나오기에 단골 소재다.

물리적으로는 거리두기가 일상화됐지만, 정신적으로는 '초근접 사회'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우리는 서로의 사생활을 아는 데 익숙해졌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의 일거수 일투족이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카톡방의 '받은글'로 돌아다니는 세상이다. 인스타와 유튜브는 접속만 하면 영상과 사진이라는 '가짜 같은 진짜 같은 가짜'를 생생하게 재현하며 매일 새롭고 자극적인 정보들을 눈앞에 들이밀었고, 익명의 사람들은 텍스트로 혐오감을 주고받았다. 사랑보다는 혐오가 칭찬보다는 미움이 자극적이고 재미있고 조회수가 잘 나오기 때문이다.



사본 -pexels-pixabay-267350.jpg 출처: pexels



하지만 이 모든 정보들은 과연 우리가 꼭 알아야만 하는 것일까?

우리는 늘 연결돼 있지만 정신적으론 외로움을 느끼기 쉬운 현대인이다. 외로움을 잊기 위해 SNS를 하고 익명 게시판을 보고 있지만 결국 이는 목마를 때 바닷물을 마시는 것과 같은 건 아닌가?



그럼에도 알고리즘의 사슬을 쉽게 끊지 못한 건 그 놈의 '도파민 중독' 때문이었다. 2000년대 초반 다음카페부터, 싸이월드부터 익명을 통한 소통을 해 오던 나는 이미 그 해악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과장 좀 보태면 현존하는 왠만한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대부분 접속 정도는 해본 것 같다.

그런 것들을 끊으려는 노력을 안 해 본 건 아니다. 하지만 다이어트를 하면 배가 고프지 않아도 자꾸 입이 심심하듯이, 이미 새로고침으로 수 많은 정보가 쏟아지는 알고리즘의 노예가 된 나는 결국 몇 달을 버티지 못하고 다시 앱을 깔고 말았다.

그리고 나름의 명분조차 충분했다.

'사회생활을 하려면 업계 단톡방에 있어야지. 내가 없는 사이 무슨 정보가 나올지 모르잖아.'

'아이를 키우고 있으니 맘카페와 sns 정보도 수시로 체크해야지. 내가 모르는 사이 내 아이에게 꼭 필요한 좋은 정보를 놓칠지도 모르잖아.'


하지만 그런 곳들에서 얻는 필요한 정보가 10%라면 불필요한 정보는 90%는 되는 것 같았다. 사실 필요한 정보 10%도 잘 생각해 보면 정말 '없으면 큰일 날'정도는 아니었다. 다른 경로로도 충분히 얻을 수 있었다. 일단 익명 커뮤니티와 SNS가 없던 시절에도 우리는 그럭저럭 잘 지내지 않았는가?

유용한 정보를 공유한다는 명분 하에 그런 익명 공간에서 유통되는 대부분의 정보들 대부분은 마음을 피로하게 만드는 부정적 콘텐츠들이었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재단하고, 한껏 자극적인 문구들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그 끝에는 '이걸 사지 않으면 당신은 경쟁에서 뒤처진다'는 광고성 협박까지 곁들여졌다.


이런 정보를 접하지 않으면 안되는 걸까?

일단 해 보자. 정말 SNS와 익명 커뮤니티가 없이 살아 보고, 안 되겠다 싶으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면 되니까.

직장을 그만두고 인간관계를 모조리 단절하고 산 속에 들어가 사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온라인상의 불필요한 정보로부터 스스로를 차단시키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 극단적으로 시작하면 바로 지쳐 나가떨어질 게 뻔하므로, 내가 할 수 있는 수준에서 시작했다.

그렇게만 해도 무려 앱만 4개를 삭제했다. 수익 창출을 하고 있는 블로그와 인스타는 업로드만 주로 하는 것으로, 실시간 피드는 보지 않고 있다. 브런치는 앱을 삭제하고 PC에서 글만 올리기로, 걸핏하면 알고리즘에 낚여 몇 시간 쯤은 '순삭'되어버리는 유튜브도 과감히 지웠다. 음악을 듣거나 정보 검색 용으로 뜨는 것만 그때그때 보면 될 일이었다.

그 밖의 모든 익명 커뮤니티 접속하지 않기, 포털 사이트 뉴스 댓글을 포함해 (내가 내 계정에 올리는 글에 대한 댓글을 제외하면)모든 익명 댓글 보지 않기. 업계 익명 오픈카톡방을 포함한 모든 카톡방 읽지 않기(만약을 대비해 방은 남겨 두었다).


그렇게 내 삶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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