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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카페 눈팅을 끊고 악몽에서 벗어났다

알고리즘 노예 탈출기 - 2

by 뚜벅초


아이와 분리수면을 하지 않는 우리 가족은 큰 패밀리 침대에서 모두 다 함께 잠을 잔다. 육아를 하는 부모님들은 잘 알고 있겠지만, 아이가 새근새근 자는 숨소리만 울려퍼지는 캄캄한 방 안에 누워 소리를 내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육아를 하면서 다른 한 손으로 할 수 있는 일들 자체가 매우 제한되기 때문에, 달리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또 육아란 몹시 고강도의 노동이므로, 체력 소모가 적으면서도 말초적이고 자극적인 스트레스 해소제를 필요로 한다. 누군가는 육퇴 후 주방에서 즐기는 맥주 한 잔이 쌓여 '키친 드렁커(알콜 중독자)'가 되고, 누군가는 SNS 중독자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평소 커뮤니티나 SNS를 별로 하지 않던 내 주변 육아맘들도, 아이를 낳고 나서는 어느 순간 SNS와 맘카페에서 살고 있다고 털어놓는다. 많은 엄마들은 처음에는 처음 접하는 낯선 육아의 세계에서 '꿀팁'을 얻으려고 가입한 맘카페에서, 어느순간 자극적인 고부갈등 부부갈등 사회갈등 글들을 읽다가 빠져들게 된다. 그래서 많은 엄마들은 맘카페에서 육아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명목으로 강하고 자극적인 감정들을 쏟아내고, 또 다른 사람들이 쏟아낸 감정들을 주워담는다. 글을 쓰면서 해소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 자리는 다른 사람들이 쏟아낸 감정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다. 심지어 요즘은 결혼, 출산 자체가 논쟁거리가 되고, 엄마들의 갑질 논란이 뜨거운 감자가 되면서 맘카페는 너무도 쉽게 전쟁터가 된다.


예전 우리 부모님 세대의 주부들이 막장 아침드라마를 보며 카타르시스를 얻었다면, 요즘 엄마들은 스마트폰 속 익명 게시판의 막장 글들을 보며 카타르시스(?)를 얻는다. 차이점이라면 아침드라마에는 끝이 있지만, 맘카페 게시판은 모든 익명 게시판과 알고리즘 기반 SNS가 그렇듯이 끝이 없다. 아이가 잠들고 날짜가 지나고 새벽 1, 2시가 되어도 게시판 글은 끝없이 올라온다. 들어올 때는 맘대로지만 나갈 때는 맘대로가 아니다.


익명 커뮤니티와 SNS를 하지 않기로 마음먹으면서 나는 하루에 10번도 넘게 접속하는 것 같은 카페 앱을 지워버렸다. 스마트폰에서 SNS 앱을 지우고, 지우지 않더라도 알림 기능은 모조리 끄고, 각종 익명 커뮤니티와 댓글을 전혀 보지 않았다. 아이가 잠들고 나서도 잠이 오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맘카페의 게시판을 수도 없이 새로고침하며 정보를 빙자한 온갖 감정과 사연 속을 헤매다 겨우 잠이 들었을 터. 하지만 카페 앱조차 삭제한 그 날은 딱히 할 게 없었다. 하지만 달리 할 것도 없기에, 나는 그 공백을 채워야 했다. 원래 다이어트를 할 때도 배고픔을 억지로 참아야 하면 금방 망해버리기에 살이 덜 찌는 방울토마토나 야채 같은 걸 먹으면서 배고픔을 잊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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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SNS와 맘카페를 하지 않기로 한 첫날 밤, 아이를 재우고 이 적막을 무엇으로 채울까 고민했다. 그 날은 한달에 한두번 있을까 말까 한 아이가 나보다 먼저 잠든 날이었다(우리 아이는 신생아 때부터 유독 잠이 없어서, 내가 먼저 잠들어야 겨우 잠든다). 평소때 같으면 즐겁게 스마트폰을 켜서 맘카페의 모든 글을 읽고 있겠지만, 오늘은 다르다. 무엇을 할까 하다가 전자책을 읽어볼까 했다. 그러고보니 독서를 자주 하겠다고 전자책 앱을 받아놓고 접속을 안 한지가 수 개월이다. 나름 전문적인 육아서를 펼쳤는데 한장한장 펼치기가 고역일 정도로 재미가 없었다. 이렇게 재미가 없으면 다시 익명 커뮤니티로 돌아갈게 뻔하다. 최대한 재미있어 보이는 소설책을 대신 내려받았다. 연쇄 살인극이 일어나는 코믹 스릴러였다.


별로 건전하지도 않은 책을 읽다 잠에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날 잠자리는 유독 편안했다. 평소같으면 강하고 인상적인 꿈을 꾸느라 잠을 자도 안 잔 것처럼 피곤했을텐데, 이 날은 무슨 꿈을 꿨는지도 기억이 안 날 정도로 깊고 편안한 잠을 잤다. 아이와 함께 잠을 자면서 나는 이삼일에 한번 꼴로 지나치게 생생하고 긴장도가 높은 꿈을 꿨다. 오죽하면 꿈을 꾸는 것이 무서워서 잠들기가 두려울 때도 있었다. 그런데 모처럼 꿈을 꾸지 않고 깊은 잠을 잔 것이다. 하지만 겨우 첫 날이기에 이게 SNS와 익명 커뮤니티를 하지 않은 효과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렇게 열흘이 지났다. 나는 여전히 단 한 번도 기억에 남는 꿈을 꾸지 않고 대체로 잘 자고 일어났다. 놀라운 변화였다. 질좋은 잠을 자기에 가장 좋은 습관인 '잠 자기 전 두 시간 전까지는 디지털 기기 사용하지 않기'를 실천하지도 못했는데, 단지 무한 새로고침 익명커뮤니티와 SNS를 하지 않았을 뿐인데도 수면의 질이 높아진 것이다. 매일같이 지독한 만성피로와 피곤함에 찌들어있던 나는 그것이 단지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생활 때문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원인은 전혀 엉뚱한 데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너무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이었다.


SNS와 커뮤니티를 끊고 나서 달라진 점은 이뿐이 아니었다. 삶의 질 전반이 크게 나아졌다.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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