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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끊고, 내 리듬대로 삽니다

알고리즘 노예 탈출기-11

by 뚜벅초


SNS와 익명 커뮤니티를 이용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보통의 결심들은 시간이 흐르면 점점 느슨해지고 흐지부지해지는 것과 달리, 이번에는 더욱 더 SNS와 커뮤니티를 멀리하고 있었다. 초반에는 그나마 업로드만 하던 인스타그램도 삭제해버리고 구글링을 할 때 나오는 익명 커뮤니티 게시글의 제목조차 보기 싫어서 차단하는 프로그램을 깔았다. 너무 결벽증적인 행동이 아니냐고? 그만큼 SNS와 익명 커뮤니티를 멀리했을 때 얻어지는 장점이 내겐 너무 많았던 것이다.


앞서 여유시간이 늘어나고, 컨디션이 좋아지는 등의 장점은 이미 이야기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좋았던 것은 내가 더 이상 나와 직접적인 관련 없는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며 살지 않게 된 것이다. 비가 올 것 같으면 우산을 들고 나가야 할지 커뮤니티 검색부터 하고, 아이의 발달이 조금만 이상한 것 같아도 맘카페에서 고민글을 읽다가 밤을 새버리곤 했던 나였다. 이제는 그냥 나의 판단을 믿는다. 정 혼자 판단하기 어려운 것은 주변 사람들과 고민을 나누거나 아니면 전문가가 쓴 책을 찾는다. 논문을 찾아보기도 한다.


익명 커뮤니티와 SNS에는 정말 참 많이도 바람직한 인생에 대한 기준점들이 회자된다. 은수저 이상의 부모님 아래서 태어나 최소 인서울 상위권 대학은 나와야 하고 전문직이나 대기업이나 공기업이라도 취업해야 사람 취급을 받는다. 그 아래는 망한 인생 취급을 받는다. 소기업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이직을 거쳐 본인이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거나, 아니면 아예 자신이 창업을 해 먹고살만한 삶의 기반을 마련한 수많은 삶의 예외성들은 아예 논의되지 않는다. 아무튼 그렇게 그들이 인정할만한 직장에 들어갔으면 35세가 되기 전에 빨리 결혼을 해야 루저 취급을 받지 않는다. 물론 부모님 노후 대비가 안 됐거나 직장이 위에 열거한 곳이 아니거나 모은 돈이 몇억 이하거나 외모가 받쳐주지 않거나 하면 이 결혼은 망한 결혼이다. 그 정도 수준인데 상대방에게 결혼하자고 하는 것도 양심 없는 짓으로 댓글러들의 지탄을 받는다. 좋은 직장 들어가서 돈 많이 벌고 차는 어느급 이상 수입차, 가방은 어느급 이상을 들고 서울 30평대 이상 브랜드 아파트에 살면서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삶은 틀림없이 행복할거라고 그들은 말한다.


물론 나는 현대 사회에서 사람이 인간다운 삶을 사는 데 있어 어느 정도의 물질적 기반은 필수적이라고 보는 편이다. 사람이 빵만으로 사냐지만 사실 빵도 없으면 다른 것도 의미가 없지 않나. 하지만 저렇게까지 인류 대다수를 그냥 패배자요 애잔한 정신승리자로 모는 공간에서는 그 누구도 행복하기 어렵다. 사실 저들이 말하는 조건을 두루 갖춘 사람이라도 어딘가는 루저인 부분이 하나씩 있기 때문이다. 의사가 돼서 강남아파트에 살지만 키가 160이 되지 않을 수도 있고 금수저지만 장애가 있을 수도 있다.


한국사회의 경직된 인생 정답지에 대한 강요는 오랫동안 문제점으로 지목돼 왔는데, 정작 이를 비판하는 젊은 세대들이 온라인에서 그 정답을 누구보다 열심히 설파하는 건 참으로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처음에는 이에 동의하지 않던 사람들도 온라인 공간에서 체류하는 시간이 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세뇌되고 만다. 나 역시 정말 내 인생이 망한건가? 싶을때도 많았다. 명문대를 나오지도 대기업을 다니지도 금수저를 물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냥 평범하게 하루하루를 살던 내가 온라인 상에서는 한없이 부족한 삶을 살고 있는 존재로 느껴졌다. 쉬려고 SNS를 했을 뿐인데 자꾸만 기분이 다운됐다.


또 SNS의 특성상 인생의 하이라이트만 강조해 올리기 때문에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최고급 휴양지와 파인다이닝과 오마카세와 골프 샷과 내 아이의 똑똑하고 예쁜 모습은 올릴지언정 빚에 시달리고 부부싸움을 하고 고부갈등이 일어나고 아이가 말을 듣지 않아 버럭하고 마는 부끄러운 모습들은 절대 올리지 않기 때문이다. 다 연출된 모습임을 알고서도 우리는 SNS를 보면서 우울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 역시 질 수 없다는 생각에 무리를 해서 카드를 긁고 인증샷을 올린다. 좋아요 몇 개가 찍히고 나면 남는 것은 가벼워진 통장 잔고 뿐이다.


사본 -pexels-sindre-fs-1106416.jpg 사진출처 : pexels


내 삶에서 이러한 소리들을 '음소거' 했더니 자유가 찾아왔다. 아무리 그냥 온라인 공간에 돌아다니는 소리일 뿐이라 해도 알게 모르게 나의 마음에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비록 고급 아파트와 명문대 졸업장과 자랑스러운 대기업 직장은 없지만 나는 그래도 아직 젊고 건강한 덕분에 내 손으로 돈을 벌 수 있고, 가족들이 모두 별탈 없이 하루하루를 살고 있으며, 비바람이 몰아칠 때 몸을 뉘일 집이 있고, 세 끼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하게 됐다.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물건들을 생각없이 따라사지 않고, 추천하는 음악과 콘텐츠 대신 내가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것을 찾아 소비한다. 하루가 멀다하고 정신없이 쏟아지는 '신상' 대신 한물 간 것이라도 내 마음이 동하는 것을 선택한다. 대세와 트렌드를 정신없이 좇지 않고 불안에 의한 소비를 하지 않으니 보다 편안한 선택을 할 수 있게 됐다.


내 아이를 맘카페와 SNS 속 아이들과 비교하지 않게 됐다. 인스타 릴스 속 세 살에 영어를 말하고 네 살에 받아쓰기 백 점을 맞는, 운동도 잘 하는 아이들과 비교하는 대신 별 문제 없이 건강하게 친구들과 뛰어노는 걸 좋아하는 아이에게 감사하게 됐다. 유튜브의 공포스러운 배경음악과 함께 올라오는 극단적인 사례들을 보며 내 아이한테도 혹시나 무슨 문제가 있을까봐 매의 눈으로 살피기보다 그냥 하루하루 사랑을 더 주기 위해 노력하게 됐다.


굳이 SNS와 익명 커뮤니티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우리네 삶은 이미 스트레스의 온상이다. 그렇지 않아도 어깨에 짐을 한가득 이고 가는 현대인이 여가시간조차 맘편히 쉬지 못하고 SNS로 불특정 다수와의 비교에서 자유롭지 못함이 안타깝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이전 시대 우리의 비교대상은 기껏해야 가족이나 주변 지인, 이웃 몇 사람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알고리즘으로 실시간 비교와 평가를 셀프로 하고 있다. 심지어 나와 상황도 전혀 다르고 속사정도 모르는 사람들의 가장 빛나는 모습들을 상대로 말이다.


요즘 단연 화두가 되는 키워드는 바로 '마음건강'이 아닐까 싶다. 정신과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미어터지고, 마음챙김을 내건 서비스와 가게들이 불티나게 팔린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아프고, 건강하지 못하다는 걸 방증한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 배경 중 하나로 스마트폰 속 SNS 문화를 꼽고 싶다. 너무 많은 사람들과 실시간 비교를 하고, 내 가장 멋진 모습을 과시해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서 우리의 마음은 시들어가는 게 아닐까. 이제는 스마트폰 속 남의 삶을 들여다보는 대신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내 기분이 어떤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그리고 내 마음이 가장 편하게 느껴지는 리듬대로 한 발짝식 인생을 걸어나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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