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목표를 종이에 쓰고 심지어 하루에 100번씩 읽거나 필사를 하기도 한다. 그 중 일부는 너무 쉽게 달성되기도 하지만 대다수는 아마 시간이 흘러도 별다른 진척이 없을 것이다.
한 번 실패 정도는 그럴 수도 있다고 대범하게 넘어갈 수 있지만 실패가 두 번, 세 번이 되면 인내심은 점점 고갈되고 만다. 결국 ‘끌어당김 따위는 없다!’고 선언하며 그간 한 노력을 그만두게 된다. 그리고 노력을 하기 전보다도 오히려 더 부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힌다.
나 역시 늘 그랬다. 이전에 쓴 글 '10년 전 블로그를 보고 깜짝 놀랐다(링크)'에 등장하는 2013년 당시에도 목표하던 것들을 이루기 위해 매일같이 감사일기를 쓰고, 작은 일이라도 좋은 점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필기는 통과해도 면접에선 매번 탈락을 거듭하면서, 취업준비는 예상치 못하게 길어지고 설상가상으로 부모님 사업이 완전히 망하면서 그렇지 않아도 좋지 않았던 두 분의 사이는 더욱 나빠지게 됐다.
급기야 엄마는 빠르게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을 찾아다니면서 다단계 사기에 빠져 나까지 끌어들이려 했다. 나는 나대로 취업준비가 길어지면서 모아둔 돈도 바닥이 났고 비빌 언덕이 전무한 나는 공부를 하면서도 각종 아르바이트를 병행해야 했다. 편도 2시간 거리 사무실에 가서 블로그 광고글 올리는 알바도 했고 명절 시즌을 맞아 떡 공장에서 단기 아르바이트도 했는데 당시 같이 일하던 아주머니 두 분이 어찌나 심하게 텃세를 부리던지(일부러 일을 틀리게 알려주고, 그대로 하면 틀렸다고 혼을 내거나 심지어 사람을 앞에 두고 카톡으로 뒷담화를 하는 게 내 눈에 보이기도 했다) 몇 주를 꾸역꾸역 버티다가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업무 도중에 그만두겠다고 선언하고 버스를 타고 그냥 집에 와버렸다. 지금도 그때 그 아주머니들을 생각하면 식은땀이 날 정도다. 이런저런 일련의 과정 속에서 내 삶은 기적을 끌어당기기는커녕 더 나빠지기만 하는 것 같았다.
엄마의 다단계 회유를 피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던 회사 근처 고시원에 방을 얻어서 얼떨결에 자취생활도 시작했다. 월급이 100만원인데 그 중 40만원을 월세로 낸 것이다. 정말 아플 때 병원 갈 돈이 두려워 참았고 편의점 삼각김밥 사먹을 돈도 없어서 고시원 밥과 김치에 눅눅해진 김을 얹어 먹었다. 대기업 사무실에서 파견계약직으로 일을 했는데 하필 내 또래의 정규직 직원들이 엄청 많았다. 같은 사무실에서 같이 일을 하지만 그들이 받는 돈과 내가 받는 돈, 처우는 너무나도 달랐다. 나랑 동갑이었던 정규직 대리는 본인이 자리를 몇 시간 비우는 건 괜찮지만 내가 1시간만 비우면 난리를 쳤다. 정규직에게는 주는 영화 티켓을 나와 또 다른 비정규직 직원들에게는 안 주는 등 치사한 일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그 와중에도 공채 최종면접에서 미끄러지기만 수차례였고 언젠가는 너무 답답한 마음에 탈락 통보를 알린 면접관에게 문자로 '왜 떨어졌는지 이유라도 알려달라'고 읍소를 하기도 했다(당연히 답장은 오지 않았다).
매일매일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무섭던 날들, 여기서 더 나빠질 수 있을까 싶을 때 갑자기 무릎 인대 염증이 덧나서 거동을 못 하게 됐다. 그때 내가 살던 곳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건물의 꼭대기층 고시원 방이었다. 결국 그렇게 원망하던 엄마 등에 업혀서 집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1년 뒤 이번에는 동생의 느닷없는 폭행으로 아예 원룸을 얻어서 무작정 독립을 했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 속 감사일기를 적던 블로그(위에 목표를 적은 블로그와는 별도 계정이었다)는 완전히 잊혀졌고, 끌어당김의 법칙 따위는 내 인생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감사와 긍정의 마음 따위는 자리잡을 새도 없이 살던 중, 예기치 않게 당시의 목표는 어느 순간 도미노 쓰러지듯 우르르 이뤄지게 됐다. 하지만 이미 나는 이전에 블로그 쓴 목표 따위는 잊은 지 오래기 때문에 내가 그것을 끌어당긴 게 아니고 그저 때가 됐을 뿐이라고 생각했었다.
모든 목표는 이뤄지는 데 시간이 걸린다. 사안에 따라서 1시간일 수도 있지만 10년 혹은 그 이상이 걸릴수도 있다. 평생에 걸쳐서 이뤄지는 것도 많다. 그리고 성장과 발전은 대개 계단식으로 이뤄진다. 끝이 안 보이는 평지(심지어 평지라면 다행이지만 알고보면 수없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험난한 길)를 한없이 걷다 보면 어느새 특정 시점에서 크게 발전하는 패턴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과정에서 길을 잃고 방황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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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글에서 ‘기분 좋은 마음으로 목표하는 것을 쓰라’고 했다. 좋은 기분을 유지할수록 목표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고 많은 성공한 사람들과 동기부여가들은 입을 모아 말하고 있다. 하지만 목표를 이뤄내는 과정에서 기분을 좋게 유지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더군다나 ‘노력’이 들어가는 시점은 대부분 몹시 고통스럽다. 차라리 아예 바라는 것 없이 대충 되는 대로 산다면 그 순간에는 마음은 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발전을 원한다면 반드시 일정 수준의 고난이 따른다. 자연히 사람이기에 평정심을 잃고 절망에 빠지기 쉽다.
결국 그렇기에 더 감사해야 하는 것이다. 감사하는 마음은 사람을 상황과 관계 없이 기분을 나아지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 이루지 못한 목표를 바라보며 절망과 조급함에 시달리기보다 우선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 나 역시 감사의 마음에서 멀어지면서 목표는 더욱 멀어졌었다. 점점 작아지는 마음 속에 목표를 낮추고 있었다. 정말 정말 가진 것이 단 하나도 없다면 우선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다. 오늘 내가 살아있는 이 순간은 어제 죽어간 사람들이 간절히 바라던 시간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여기에 몸도 건강하고 따뜻한 밥도 먹을 수 있고 추위에 몸 뉘일 수 있는 집(그것이 자가든 전세든 반지하 월세든)이 있다면 더더욱 감사할 일이다. 세상에는 그것조차 갖지 못한 사람들이 아주 많다.
10년 전 목표를 눌러쓰던 나도 가진 것이 하나도 없었지만 그래도 감사하려고 애썼다. 많지 않지만 친구들이 있어서 감사했고 그들과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어서 더욱 좋았고 가족들이 건강하며 귀여운 고양이들이 집에 있고, 아직 젊고 가능성이 있음에 감사하려고 했다.
개인적으로는 목표를 100번 적는 것보다 모든 일에 감사하는 습관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물론 이것은 사람마다 견해의 차이가 있다). 나 역시 목표를 100번 적거나 소리내어 말하기는 해본 적 없지만 어느새 이뤄졌으니까. 다만 감사와 긍정을 잠시 잊으면서 목표가 이뤄지는 데 시간이 더 걸렸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난 안된다고 생각하며 공부를 아예 놓기도 했고 원치 않는 직장에 면접을 보러 다닌 적도 있었다.
감사를 하면 마음에 힘이 생기고 다시 한 번 일어나 노력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그렇게 나를 둘러싼 힘든 상황도 조금씩 바뀔 것이다.
10년전 블로그를 발견하기 전 얼마 전까지의 나도 그랬다. 원하던 직업을 갖고 바라던 이상형과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내 집과 먹고살기 충분한 급여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면서 스스로 힘들어했다. 10년 전의 내게는 이 중 아무 것도 없었는데도 말이다. 어느새 내가 가진 것들에 익숙해져버린 탓이다. 이런 마음으로는 앞으로 또 무엇을 이루더라도 행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10년이 지나 그때 그토록 바라던 것을 대부분 이룬 나는 더욱 감사할 것들이 많아졌다. 그럼에도 감사함을 잊고 있던 탓에 나는 갖고 있는 것의 소중함을 몰랐고 더 이상의 발전보다는 그저 유지하는 삶을 택해 왔다. 하지만 10년 전 블로그를 열어보는 순간 나의 삶이 무엇 때문에 여기에 오게 됐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