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대로 살지 않아도 된다

by 뚜벅초

많은 사람들이 인생 최고 행복한 시절로 떠올리는 어린 시절과 학창시절이 난 그리 아름답지 않았다. 사실대로 말하면 떠올리기도 싫은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너무 끔찍한 경험은 아예 머릿속에서 지우려는 생존 본능 덕분인지, 사실은 잘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취업준비생 시절 지원했던 한 회사는 특이하게도 출신 초, 중, 고를 모두 입력하라고 했는데, 내가 졸업한 초중고 이름이 순간 기억이 나지 않아서 스스로 놀랐던 기억이 난다.


유치원에 입학한 6살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고 3때는 같은 반 친구랑 우연히 같은 가수를 좋아하느라 친해져서 다행히 왕따로부터는 벗어났다. 그 친구랑은 유일한 학창시절 친구로 지금도 친하게 지낸다.) 나는 말 그대로 '왕따'였다. 대놓고 괴롭힘을 당하는 왕따부터 그냥 친구만 없이 외롭게 학교를 다니는 은따까지 다양하게 경험해 봤다. 지금 기준으로는 발달센터를 다녀야 할 정도로 사회성이 몹시 나빴고 선택적 함구증 비슷한 것도 있었다. 초등 고학년이 될 때까지 학교에서는 아예 한 마디도 하지 않아서 애들이 굉장히 희한해하던 기억이 난다. 딱히 인지기능엔 문제가 없어서 성적은 그럭저럭 상위권이었지만 교우관계가 좋지 않으니 늘 고개를 숙이고 힘없이 걸어다녔다. 부모님은 본인 먹고살기에 바빴고 그 시절의 많은 어르신들이 그렇듯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일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어쩌면 알고 계셨지만 그냥 회피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 긴긴 시간을 어떻게 보냈을까? 오롯이 혼자서 각종 처세술 책을 읽고, 인터넷 서치를 하면서 사교성을 후천적으로 터득하기 위해 그야말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했다. 부모님 지원은 못 받았으니 돈 안 드는 방법은 왠만한 건 다 시도했다고 하면 된다. 대학 초기에도 사회성이 완전히 올라오진 않아서 소위 말하는 '찐따(물론 이 때는 다들 성인이니 대놓고 괴롭히거나 하는 건 없었지만)' 취급은 받았던 것 같다. 대학에 올라오고 나서는 각종 알바를 닥치는대로 했다. 또 나와 성향이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려고 노력했다. 나와 비슷한 조용조용한 친구들과만 어울리면 마음이 편했지만, 비슷한 사람들 사이에서 안주하는 것은 결국 20대 초반의 내게 장기적으로 성장의 계기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와 정반대라고 여겨지는, 소위 '인싸'라고 하는 사람들과 다소 불편하더라도 어울렸고 술자리에 나갔고 MT를 따라갔다. 처음에는 대화 플로우를 따라가는 것조차 어려웠지만 나중에는 아무렇지 않게 끼어있을 정도로 발전했다.


그렇게 사회인이 됐다. 이제는 누구도 내가 어린 시절 그렇게 사회성으로 지독히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는 걸 믿지 않을 정도가 됐다. 나를 외향인으로 착각(?)하는 사람까지 일부 있을 정도다.(객관적으로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어릴때를 제외하곤 외향인이 되고 싶진 않았지만 그냥 생활에 불편함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 내 성격으로 인해 제약을 받고 싶지 않았다. 이제는 내향성 때문에 생활에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사진 출처 : pexels


흔히들 성격에는 우열이 없기 때문에, 내향적이고 비사교적인 성격이라고 해서 억지로 사회적이 되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고 타고난 스스로를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고들 이야기한다. 본인이 그 성격 그대로 살아도 행복하다면 이 말은 맞을 수 있다.

하지만 타고난 성격으로 인해 자신이 일상생활이 크게 불편하고, 무엇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 방해가 될 정도라면 이는 달라지기 위해 노력해봄이 마땅하다고 본다. 해보지도 않고 '난 이렇게 태어났으니까 다소 맘에 안 들더라도 그냥 이렇게 살아야 해'라고 생각하는 건, 스스로의 가능성을 미리부터 너무 제약하는 것이다.


가정 환경과 주변 환경도 마찬가지다. 양극화로 인해 '흙수저'와 '금수저'로 나누는 풍조가 시작되면서 많은 사람들은 자기 가능성에 일찍부터 제한을 걸어버린다. 대학을 갓 졸업했을 때의 나도 그랬다. 고만고만한 가정환경에 비슷한 학벌과 똑같이 취업 안 되는 전공을 한 우리들은 소규모 회사에서 최저임금을 받으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에 안도하는 분위기였다. 원하는 회사에 취업하기 위해, 원하는 급여를 받기 위해 인턴을 하고 스펙을 쌓는 사람들을 보며 '대기업에 놀아나고 있다'고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들조차 있었다. 나 역시 그런 분위기 속에서 어차피 원하는 회사에 공채로 들어가는 건 소수의 선택받은 사람들이나 가능하고, 우리 같은 흙수저에 비명문대 문과 출신들은 그냥 이렇게 적당한 월급 받으며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고 살다 가면 감사한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같은 과 안의 한정된 인간관계를 넘어서면 그 밖에는 다른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앞서 사회성을 키우기 위해 이런저런 동호회나 동아리에 가입했다고 했는데, 그 중에는 같은 과가 아닌 다른 과와 함께하는 중앙동아리도 있었다. 그곳에서는 교환학생과 인턴 등 사회에서 여러 경험을 쌓으며 더 큰 꿈을 꾸는 사람들이 많았다. 굴지의 기업을 골라서 취업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고(물론 지금은 취업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때는 그랬다) 나 역시 우연히 그들에게 들은 정보로 인턴기자로 일할 기회를 얻게 되어 언론사 공채를 준비하게 됐다. 우여곡절이 꽤 길었지만 어쨌거나 원하던 수준의 회사에 합격을 하고, 비슷비슷하게 소기업이나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놀던 같은 과 동기들로부터 질투를 받고 멀어지긴 했지만 어쨌거나 나의 인생관은 이 과정을 계기로 많이 달라지게 됐다.


타고난 사회성이 부족하다고, 집안 형편이 어렵다고, 스펙이 부족하다고 그냥 거기에 머물러야 할 이유는 없다. 물론 그 삶이 행복하다면 다행이지만, 스스로를 냉정히 돌아봤을 때 그 삶에 100% 만족하지 않는다면, 어딘가 껄쩍지근함이 느껴진다면, 주변의 '잘 나가는' 사람들이 자꾸만 불쾌하게 느껴진다면 그건 당신이 그 삶에 그리 만족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다.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면서 번 돈은 모두 술값으로 쓰며 "어차피 우리 과는 취업 안 되니까, 난 이 정도로 사는게 제일 행복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친구는 내가 공채에 합격했다 하니 갑자기 모진말을 내뱉으며 "너는 나보다 처지가 나으니까 나한테 이런 소리 좀 들어도 상관없잖아"라고 했다. 그 친구가 말했던 '행복'이 사실은 진심이 아니었음을 방증하는 게 아닐까 싶다.


시간이 흘러 나 역시 많은 것이 달라졌다. 어느새 내가 가진 것에 적당히 안주하고, 나보다 더 많은 것을 물려받거나 좋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보며 불쾌감을 느낄 때가 많았다. 하지만 내일 모레 마흔을 앞두고 있고, 아이를 키워야 하니까 여기에 안주해서 살아가는 것이 내겐 최선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하지만 10년 전 블로그에 남긴 글을 보고 예전의 열정을 다시 한 번 상기하게 됐다. 그리고 '진짜 최선'이 뭔지 다시 한 번 생각했다.


내가 그냥 타고난 대로만 살았더라면 지금 어떻게 됐을까? 내향적이고 사회성이 부족한 성격이 내 팔자려니 했다면 지금도 최소한의 경제활동만 하거나, 혹은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지 못한 채 부모님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착한 남편과 귀여운 아이도 영영 만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흙수저에 비명문대에 취업 안 되는 과를 나왔으니 평생 이 정도에 안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계속 마음에 들지 않는 직장을 전전하며 근로기준법 쯤은 우습게 어기는 곳에서 온갖 부조리를 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나의 첫 직장은 연봉 1700만원에 퇴직금이 포함돼 있었고 연월차도 없었다. 내 전임자는 임신을 했다는 이유로 출산휴가도 없이 '짤렸다고' 대놓고 들었다. 내 인생이 평생 그곳에 머무르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달라지려고 노력했고 그렇게 내 인생도 조금씩 나아졌다.

그렇다는 것은 내가 지금 꿈꾸는 내 삶도, 마냥 망상으로만 존재하지 않을 수 있고 언젠가 현실이 될 가능성이 충분하단 것이다.


당신도 돌아보면 눈앞의 여러 장애물을 치워가며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온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도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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