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계형 워킹맘입니다 26
오랜만에 가족이 모두 모여 아침 식사를 하는데 남편이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다가 물었다. "우리 출산한 지 몇 년 됐지?" "다음달에 네돌이니까 4년이잖아;;; 왜?" "출산한지 5년 이하 가정이 첫 주택 구입시 취득세 500만원까지 면제해주는 법안이 국회 본회의 통과됐대." "오!! 그럼 우리 내년에 혜택받을 수 있겠네? 근데 소급적용 되는거야?" "그런 것 같은데?"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9/0005233173?sid=100
기사를 보니 사실이었다. 우리는 아직 출산한 지 5년이 되지 않았고 내년 분양받은 집에 신규 입주할 예정이니 혜택을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기사를 잘 보니 '앞으로' 2025년까지 자녀를 출산한 부모가 주택을 구입할 경우였다. 우리는 이미 자녀를 출산했을 뿐 앞으로 출산계획은 없기 때문에 해당이 되지 않았다. 에이 좋다 말았네.
물론 정책 입안자의 계획은 이 정책의 영향으로 결혼을 하지 않은 국민들은 세금 혜택을 받기 위해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결혼은 했지만 아이가 없는 이들은 아이를 낳기로 결심하고, 우리처럼 한 자녀를 둔 가정은 둘째 계획을 해서 세제 혜택도 받기를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기대와는 달리 "역시 그럼 그렇지"하고 해당 법안에 대한 관심을 빠르게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집은 경기도 1기 신도시의 30년 된 20평대 아파트, 옮기는 집도 같은 지역의 신축 20평대 아파트다. 누군가는 '그렇게 좁은 집에서 어떻게 애를 낳고 살아?!'하고 경악할 지도 모른다.(실제로 아기가 거실에서 놀고 있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SNS에 사진을 올렸다가 익명의 누군가로부터 "(집안 꼴을 보아하니) 정말 경제적으로 힘드신 듯 하네요.. 힘내세요.."라는 진심어린 위로를 해주는 댓글을 받은 적도 있다. 보아하니 어그로성은 아닌 것 같고 진심으로 내가 불쌍해 보여서 남긴 것 같았다.) 하지만 무수저에 가까운 흙수저인 우리 부부가 만나서 (당연히 양가 지원은 없는 정도가 아니고 우리가 양가 부모님을 도와드려야 되는 상황이다) 이 정도라도 맨손으로 일군 것에 나는 상당히 감사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기가 더 어릴 때는 무려 10평대 미니투룸에서 살았다. 해도 잘 들지 않고 툭하면 심한 공사소음으로 집이 흔들리는 그곳에서 육아 우울증을 얻고 도망치듯 지금의 신도시 아파트로 이사해 왔다. 그리고 아이를 키우려면 일정 평수 이상의 집이 필요하다는 걸 절실히 체감하고 이 이야기를 역시 SNS에 쓰니 이번에는 평생 육아란 아내나 엄마의 몫으로 간주하고 직접 주양육자로 살아본 적 없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이는 중장년 남성분들이 "라떼는 단칸방에서 애 5명 낳고 잘만 살았는데. 미친 X 같으니"라는 등의 반박을 하셔서 글을 지우고 다시는 그 SNS에 들어가지 않게 됐다.(아까는 불쌍하다더니 이번엔 또 배가 불렀대 어쩌란 말이냐 트위스트...)
아무튼 좁은 집에서 아기와 사투를 벌이며 육아우울증까지 얻었고 20평대로 이사와도 터져나오는 짐에 팬트리 있는 집으로 빨리 이사가고 싶은 마당에, 둘째라니 엄두도 못 낸다.
그나마 아직은 우리 아이가 4살밖에 되지 않아 집의 크기 등에 큰 관심은 없지만 이제 빠르면 초등학생만 돼도 친구들끼리 너네 집은 몇 평이냐고 비교를 한다니 언젠가 우리 아이도 "우리 집은 왜 20평대밖에 안 돼? 00네 집은 40평대라는데"라고 할 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이런 건 주된 이유는 아니다. 더 큰 이유는 우리가 양가 도움 없이 맞벌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가 아프면 우리 연차를 털어넣느라 정작 나는 열이 39도가 돼도 출근해야 하고, 일에서 퇴근하면 집으로 육아출근을 하기에 건강이 실시간으로 나빠져도 속수무책이란 것이다. 게다가 이제 코로나 끝났다고 윗분들은 수시로 회식을 하고 불참시 그 분들 '마음속 데스노트'에 적힐 각오까지 해야 하는 평범한 K-직장인이다보니 여기서 둘째를 낳으면 현실적인 옵션은 '경력 단절'이다.
그렇다고 일을 내려놓고 알뜰살뜰 아껴가며 두 아이를 열심히 키워봐야 돌아오는 주변의 시선은 '남편 등에 업혀 사는, 시대 착오적인 전업주부', '요즘 세상에 애 둘을 낳고 외벌이를 하다니 용감하기도 하다', '잠재적 맘X' 등으로 여기는 게 지배적이다. 아이가 있으면 일을 해도 민폐고 안 해도 민폐 취급을 하니 이 나라의 출산율이 점점 0으로 수렴하는 건 너무도 당연한 현실이다.
이런 얘기 아무리 목 놓아 해봐야 기성 세대들은 (내 SNS에 배때지가 처불렀다고 욕하시던 분들처럼) 요즘 젊은 것들이 편한 것만 좇는다고 남의 일이라고 생각할 뿐이고, 102030 젊은이들은 '응 이민가면 그만~' '난 어차피 우리나라 망하기를 바래서 상관 없음'이라는 답만 돌아온다. 그런데, 그 전에 내수 시장이 망해서 본인들 일자리부터 사라지고, 월 수입부터 마이너스로 전환할 '당연한 미래'는 왜 예측을 못하는지 모르겠다.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국민들이 가장 중요한 가치로 '돈(경제력)'을 꼽는 나라라고 한다. '가족'이나 '건강'을 꼽는 해외 다른 국가들과는 역시나 차별적이다. 그런 나라 국민이라 거실에서 놀고 있는 돌쟁이 아기의 귀여움보다는 모르는 사람의 SNS 사진 속 집 평수와 연식을 보고 계정주의 형편없는 자산 사정을 추측하며 'ㅉㅉ'를 날리는 게 상식인 사회가 돼 버렸다. 그런 나라의 정치인들은 저출산에 대한 대책조차 결국 돈을 지급하고 세금을 깎아주는 등 '돈'으로만 해결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에 대한 '가임기 부부'들의 반응은 위와 같다.
돈이 제일이고 생산성이 유일한 인간의 가치라 믿기 때문에 당장 나가서 돈을 (다른 사람들처럼) 벌지 못하는 애 엄마는 2등시민, 민폐로 취급하는 분위기가 팽배한 듯하기도 하다. 태어나자마자 키와 몸무게로 줄을 세우는 '나래비'의 나라여서 그런가. 1등을 하지 못하면 모조리 죄인이 되는 나라여서 그런가. 수치화된 성과를 너무나 좋아하다보니 돈이라는 숫자에도 더욱 집착을 하고, 돈이 많은 사람은 다 가진 것으로 간주하는 분위기가 생긴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서 한강의 기적을 이뤘던 이 나라는 결국 유례없는 저출산, 자기소멸로 미래 노동력과 내수시장이 사라져서 결국 경제성장의 동력까지 잃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