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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초 Oct 12. 2023

저질체력 워킹맘은 반찬가게에 간다

나는 생계형 워킹맘입니다 25


아이를 낳고 14개월이 될 때까지 육아휴직을 하는 동안 나는 이사 등 불가피한 사정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이유식과 유아식, 간식을 직접 만들어 먹였다. 재료는 모두 유기농과 무농약으로, 유기농 전문 샵에서 어렵게 재료를 공수해다 만들었다. 요리를 잘 하지는 못해도 싫어하지는 않아서 코로나 시기 돌전 아기와 감금 생활을 하는 팍팍한 와중에도 아이를 재우고 새벽 2시까지 주방에서 수선을 떠는 그 시간이 마냥 괴롭지만은 않았다. 딱히 결과물이 없는 육아와 가사보다는 요리는 그래도 그럴듯한 결과물이 나오니 나름 재미도 있었다. 어쩌면 그래서 많은 엄마들이 아이를 낳으면 예쁘게 세팅된 유아식 식판샷을 자랑하며 요리하는 재미에 푹 빠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아 과정에서 그나마 가장 주도적이고, 창의적인 일이 바로 아이 밥을 해 주는 일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하지만 복직과 함께 나는 주방에 거의 들어가지 않게 됐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일을 하고 들어와 또 주방에서 다지고 볶을 여력이 나에게는 없다. 차라리 평일 비번이 있는 남편이 아이 반찬을 해 두거나, 아이가 좀 크고 나서는 온-오프라인 반찬가게들을 섭렵했다. 많은 엄마들은 그래도 아이 입에 들어가는 음식을 어떻게 사서 먹이냐며 힘든 몸을 이끌고 직접 반찬을 하고 국을 끓인다. 심지어 워킹맘이라도 그렇다. 친하게 지내는 워킹맘들과 이야기를 하는데 아이를 재우고 새벽 늦게까지 반찬을 만들고, 주말에는 종일 아이 반찬과 국을 끓여 쟁이느라 시간이 하나도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주말에는 아이와 함께 늦잠을 자고 여기저기 놀러다니느라 바쁘다. 물론 그것은 아이가 노는 거지 내가 노는 게 아니기 때문에 쉰다는 건 아직 어불성설이다. 반찬가게 반찬조차 잘 먹지 않는 날은? 혹은 내가 뭔가 맛있는 게 먹고 싶을 땐? 배민을 켠다. 4살짜리는 이제 매운 것만 아니면 왠만한 건 다 잘 먹는다.


출처 : pexels


아직까지 아이의 건강상태는 그래도 평범한 수준인 것 같다. 키는 다소 작은 편이지만 영유아 검진상 어쨌든 정상범주고, 잔병치레는 또래 같은 반 아이들과 별 다를 바 없고 수족구니 하는 전염병도 그리 걸린 적이 없는 걸로 봐서 특별할 건 없는 듯하다. 모유수유도 건강상 이유로 100일까지밖에 못했는데 이 정도면 다행인 듯하다. 물론 지금의 식습관이 평생을 결정하기에 아이를 그렇게 키우면 안 된다고 힐난하실 분들이 있을는지도 모른다. 미래는 겪어보지 않았으므로 나도 뭐 반박할 의사는 없다. 하지만 내가 주방에 자주 들어가지 못하는(않는)이유는 명확하다.


1. 이미 일과 육아로 쉴틈 없이 채워진 일상에 요리까지 추가하기에는 역부족이며

2. (어차피 일을 해야 한다면) 아이와 함께 눈을 맞추고 상호작용하는 시간과 건강한 식단을 마련하는 것 중 굳이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면 전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다.


나는 어릴 때부터 약골이었다. 보통 초등학생만 돼도 아이들은 잘 아프지 않는다던데, 중학생 때까지 수시로 열이 올랐던 나는 학교를 '개근'한 적이 단 일년도 없었다. 나처럼 일을 평생 하셨던 우리 엄마의 고충이 새삼 느껴진다. 운동신경과 체력은 별개라지만 달리기 시합을 하면 6명 중 6등이었고 500명 오래달리기 중에서는 499등을 했다. 이런 내가 애를 낳아 키우고 심지어 일까지 병행한다는 게 스스로 생각해도 기적이다 싶을 정도다. 


저질체력인 내가 워킹맘 생활을 효과적으로 '롱런'하기 위해서는 취할 건 취하고, 버려도 되는 건 잠시 버리거나 미뤄도 된다는 판단을 내렸다. 어차피 다 잘할 수 없는 게 인생이고 그 중에서도 워킹맘의 인생이라고 생각한다(다 잘하시는 분들은...존경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을 재단하진 말아주세요). 나는 하루 최소 6시간 이상을 자야 정상적인 컨디션이 유지되는 체질이고, 무슨 짓을 해도 밤 11시는 되어야 잠자리에 드는 우리 아이(이것도 많이 나아진거다. 더 어릴 땐 날밤을 꼴딱 세웠다)를 키우며 아침 6시반에 일어나 출근준비를 하려면 아이와 함께 잠에 들어야 내가 살 수 있다. 아이를 재우고 뭔가 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또 하나의 이유는 아이가 돌 무렵일 때, 한참 폭발적으로 발달이 이뤄지던 무렵 나는 주방에서 유기농 이유식을 만드는 데 꽂혀 하루에도 몇 시간 씩 주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남편은 직업상 이틀에 한 번 집에 오고 사실상 나와 아이 둘만 하루종일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코로나여서 딱히 집에 누굴 들일 수도 없었다. 여러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겠지만 우리 아이는 돌~두돌 무렵 쯤 발달지연이 있었고, 우리 부부가 만사를 제치고 아이와의 상호작용과 놀아주기에 신경쓴 결과 지금은 정상발달 이상으로 올라온 상태다. 물론 지금도 원인은 알 수 없지만, 나는 그 당시 '내가 차라리 이유식을 사 먹이고 아이랑 좀더 놀아줬다면 발달지연이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렇게 내가 열심히 유기농 무염 이유식을 해 먹였던 우리 아이는 어린이집을 다니고, 할머니의 육아도움을 받으며 할머니가 사오는 각종 달디단 간식에 마음을 뺏기면서 지금은 과자를 너무 좋아하는 아이가 되고 말았다.


나는 사실 성격상 아이와 열심히 몸으로 놀아주는 것보다는 주방에서 조용히 요리를 하는 걸 더 즐기는 성격이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 가족의 상황상, 아이의 성향상 여러 가지를 고려할 때 아이에게 더 필요한 건 예쁘게 데코레이션 된 유기농 식단보다 엄마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이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나는 반찬가게에서 안 매운 아이반찬을 산다.


물론 다 잘하는 분들도 많다. 하지만..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존경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을 재단하진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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