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뚜벅초 Apr 04. 2024

육아 얘기밖에 할 말이 없는 엄마

30대의 중반을 넘어 후반으로 진입한 나는 이제 왠만한 또래 지인들은 결혼했고, 제법 확고했던 '딩크' 지인 중 일부도 아이를 낳으며 육아의 세계에 진입했다. 우리 세대, 소위 'MZ'라고 불리는 이들은 부모됨을 앞두고 대개 이런 마음가짐을 갖는 것 같다.

"나는 엄마가 돼도 나 자신을 잃지 않을 거야."

"애 엄마 됐다고 맨날 애 뒤꽁무니만 쫓아 다니면서 육아 정보, 학원 정보 얘기밖에 안 하는 아줌마는 안 될거야. 그렇게 재미없는 인생은 살지 않을거야. 엄마가 되더라도 그 전의 나처럼 취미, 일에 집중하고 재미있게 살고 싶어."

그리고 그렇게 될 자신이 없는 다수의 사람들은 그냥 출산을 하지 않기로 해버린다.


이런 'MZ'들을 보고 이미 육아를 경험하고 있거나 아이를 키운 사람들은 이렇게들 답한다. "글쎄, 그게 말처럼 쉽지 않을걸. 나도 처녀 적엔 그저그런 아줌마 되고 싶지 않았는데 결국 나도 별 수 없더라고. 재밌게 살고 싶으면 그냥 결혼, 출산 안 하는 게 답이야." 혹은 "애 낳고도 즐기면서 살 수 있어요. 어린이집 보내면 내 시간 많으니까 하고싶은 공부도 하고 취미생활도 하면 돼요. 주말에는 가족들 찬스 쓰면 되구요." 라고 용기를 주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면 나의 경우는?

아이가 5살이 된 지금은 예전보단 그나마 내 시간을 갖기 조금은 쉬워졌지만, 아이 세 돌 전까지를 기준으로 보자면 '나 자신'을 위한 물리적, 정신적 여유는 없다고 보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아기 시절 기질이 예민하고 잠이 없는 아이를 키우느라 어쩔 수 없이 '타율적'으로 그랬던 측면도 있고, 어느 정도는 '자발적'으로 그런 시간을 보냈다.

어차피 내 품에서 떠나보내야 하는 아이라면 어릴 때라도 충분히 '집착'하는 게 맞다는 생각에서였다.

굳이 시간을 내려면 어린이집을 좀 더 빨리 보내고, 다른 사람 손에 더 많이 맡기고, 울려서라도 빨리 재우고 내 시간을 가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내 자아를 찾아봤자 그 시간이 엄청나게 행복하고 홀가분할 것 같지 않았고, 이왕 엄마가 된 이상 핏덩어리 아이를 두고 내게 더 우선순위가 높은 것에 주력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었다.

아이 낳고 몇 년을 개봉 영화도 보지 못하고 핫하다는 곳도 못 가보고 요즘 무슨 드라마, 이슈가 유행하는지도 잘 모른 채 살았다. 육아서 외의 책도 아이 세 돌 전까지는 거의 볼 생각도 못했다. 대신에 각종 육아정보와 발달심리학은 무슨 전공자마냥 섭렵했다.


워킹맘이기에 두 돌이 지나 어린이집을 보냈고 지금도 등하원도우미 선생님을 고용해서 주 2~3회는 저녁 늦게까지 남의 손에 맡기는 처지지만, 그 시기를 조금이라도 늦추고 싶었다. 아이들은 언제까지나 엄마의 사랑과 손길을 필요로 한다지만, 그래도 조금씩 크면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지고 엄마의 보호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정도도 달라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나름 버둥거린 덕택에 어린이집을 보내고 복직을 하는 발걸음이 생각보다는 무겁지 않았다. 나의 무심한 성격 탓도 있겠지만 일하는 엄마로서의 비애나 죄책감도 그리 들지 않는 편이다. 나름대로 할 도리를 했다는 생각에서였을까. 아이는 비록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나는 그랬다.


아이 웃는 얼굴만 봐도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하고 모든 피로가 풀린다는 부모님들도 있다. 아직 말을 못 하는 아기랑 노는 것도 그렇게 재밌다고 하는 친구도 있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렇지 않다. 지금도 육아는 물론 신생아 때에 비하면 '선녀'다 싶을 정도로 난이도는 낮아졌지만, 여전히 별로 재밌지는 않다. 여전히 내 육아를 이끄는 것은 팔 할이 책임감이다. 나머지 이 할은...그냥 꾸준히 익숙해지고 있는 과정일 뿐인 것 같다.

출산과 결혼은 미련한 사람이나 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요즘 시대에, 이런 나의 삶은 일견 미련하게 보일 것 같다. 미혼 때보다 더 날씬하고 아름답게 꾸민 엄마들이 흔해서 별로 놀랍지도 않은 시대에 나는 임신출산으로 찐 살이 여전히 남아 있고 생존을 위한 운동만 하는 정도다. 그나마 지금은 일을 하고 있기에 업무 얘기, 직장 얘기라도 할 수 있지만 만약 내 삶에서 일을 뺀다면, 결국 아이와 남편이라는 가정이 내 인생의 절대 지분을 차지하는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취미 겸 사이드잡으로 하고 있는 블로그조차 육아가 주된 테마다. 맙소사, 그러고보니 이 브런치에도 온통 육아 얘기밖에 안 쓰고 있다.


나는 '진정한 나'를 잃어서 슬퍼해야 하나?

하지만 나는 아이를 낳고 정말 못 자고 못 먹고 못 씻어서 힘들고 우울한 적은 있어도 진정한 나로 살지 못해 힘들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딱히 없었다.

애초에 진정한 나란 무엇인가? 엄마로서의 나는, 육아를 하는 나는 진정한 내가 아닌가? 나는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해서 본업으로도 글을 쓰고 취미로도 글을 끄적거리는데 그 주제가 육아라면 진정한 의미의 취미생활이라고 할 수 없나?

어째서 육아를 하는 엄마는 진정한 나로 살지 못해서 슬퍼해야 하나?

아이 키우는 이야기를 하는 엄마는 자아도 없이 애한테만 매여서 사는 슬픈 인생인가? 그렇다면 자신의 본업에 열정적으로 임하는 직장인은 자아도 없이 일에만 매달리는 불쌍한 삶인가? 아이 키우는 이야기를 하는 '아빠'에 대해선 어떤가, 자아 없는 사람이라는 시선 대신 '가정적'이라는 칭찬이 따라붙지 않나? 왜 아빠는 가정적이면 좋지만 엄마가 가정적이면 헬리콥터맘이고 더 나아가 '예비 맘충'이 될까?


분명히 육아에 몰두하느라 자신을 잃어버려 슬픈 분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육아를 하는 엄마의 삶을 그저 희생뿐인 불쌍한 삶이라고 스스로를, 남을 재단하는 것은 어쩌면 다른 형태의 탈을 쓴 모성 혐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육아에 푹 빠져 지냈던 시간이 부끄럽지 않다. 아줌마 애엄마가 되어버린 내가 슬프거나 우울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만큼 나는 성장했고, 변화했고, 삶의 과정을 거쳤을 뿐이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아이가 자라면서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의 비중도 늘어날 것이다. 그 시간 또한 기대가 된다. 그리고 그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고 평온함이 계속되도록 아이가 나를 필요로 하는 한 최대한의 관심을 내어주려고 스스로를 다그치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