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공황장애 약은 효과가 좋았다. 첫 며칠간은 공황이 지속돼서 '어쩌면 공황장애가 아닌 다른 병일지도 몰라'라는 생각에 두려웠지만, 역시나 일주일도 되지 않아 안정을 찾았다.
이제는 약을 넘어 근본적으로 내 삶을 돌아봤다.
일에 치여, 육아에 치여, 각종 의무에 치여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은 멀리멀리 미뤄두기만 하지 않았는지?
설령 내가 퇴사를 하고, 자연 속 외딴 집으로 들어가 하루종일 자유 시간을 갖는다 해도 그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은-별 것 아닌 사소한 일상들일 것이다.
가족들과 함께 따뜻한 밥을 지어 먹고, 도란도란 일상을 이야기하고, 차를 마시고, 직접 만든 달콤한 간식을 먹고, 나무 냄새를 맡으며 걷고, 산책길에 못 보던 꽃이 핀 것을 반가워하고, 이따금씩 하늘을 올려다보고, 읽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읽지 못했던 책들을 맘껏 읽고, 쓰고 싶은 글을 쓰고, 돈이 되지 않는 것들을 배우러 다니고, 밤이 되면 새 소리를 들으며 아이의 자는 얼굴을 바라보며 편안하게 잠자리에 드는 것들 말이다.
이런 것들을 지금 당장 하면 안 되는 걸까?
예전에는 이런 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많다고 생각하면서, 더 중요한 것들을 해치우기 전에는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 왔다. 결국 내 삶이 자유롭지 못한 건 나를 둘러싼 외부 조건이 아니라, 내 마음이 만들어낸 조건이다.
하지만 어쩌면 내게 정말 필요한 것들은 저런 것들이었다. 아프게 된 내 몸과 마음이 그걸 알려주려는지도 모른다.
반쯤은 의무감에 읽고 있던 자기계발서를 잠시 덮어두었다. 그리고 한동안 찾지 않았던 소설책과 에세이집을 다시 손에 들었다. 앞만 보고 살아가던 내게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속삭여주는 글자들의 숲에서 나는 나무 냄새를 힘껏 맡듯이 책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어릴적 활자 속에 빠져 지내던 나를 어른들은 걱정했다. 친구도 없이 방에만 틀어박혀 책만 읽는 내가 충분히 아이답지 않아서였다. 물론 나도 내가 걱정스러웠다. 남과 다른 모습의 내가 어른이 되면 계속 사회에 적응을 못 하고 방구석에만 틀어박힐 것 같았다. 책과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고 내키지 않는 모임에 나갔다. 전혀 흥미 없는 이야기에 흥미있는 척 맞장구를 치고 옷을 그럴듯하게 입는 방법을 배웠다. 멀쩡한 사회인으로 보이는 내가 만족스러웠다. 책을 읽더라도, 아직 한참 사회에서 일해야 하는 시기인 나는 돈 버는 법에 집중해야 한다며 그런 책을 의도적으로 골랐다.
나는 책에 우열이 있다고 믿는 부류는 아니다. 다만 지금은 잠시 쉬어가는 시기이기에, 내 머리가 필요하다고 요구하는 책 대신 마음이 끌리는 책들을 대신 골랐다. 언제 발매됐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오래된 재즈 곡 플리(플레이리스트)를 재생하고, 따뜻한 차를 우린다. 그리고 소설책을 편다.
세상 살기가 서투르던 어린 시절 나는 자주 책 속으로 도피했다. 친구를 사귀지 못했던 학창시절의 나는 점심시간이 되면 허겁지겁 밥을 먹고 도서관에 틀어박혔다. 모두들 삼삼오오 모여 노느라 조용한 도서관에서 인적이 드문 서가의 책을 하나하나 뽑아 읽으며 시간이 가기를 기다렸다. 내 시야가 책 속 활자에 머무는 동안 어디에도 마음 둘 곳 없는 현실에서 잠시나마 도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평범한 사회인이 되어 수십 년을 살아오다 몸과 마음이 많이 낡아져버린 나는 오랜만에 다시 '필요 없어 보이는' 책을 잡았다. 어지럽고 시끄럽고 머리아픈 세상사에서 잠시 벗어나 있다. 곱게 정제된 말들로 머릿속을 씻어내린다. 어쩌면 세상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친구가 없어 도서관으로 도망갔던 학생 시절의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자주 찾던 도서관에서 동아리에 가입했다. 봉사 점수를 준다는 말에 혹해서 가입했던 동아리에서 친한 선후배들이 생겼고, 말 없던 나는 친구를 사귀는 방법을 조금씩 연습하게 됐다. 친구 하나 없던 내게 수능날이라고 군것질거리를 가져다 주는 후배 응원단을 같은 반 아이들이 신기하게 바라보기도 했다. 그런 과정 덕분인지 대학교 진학 이후부터는 친구를 사귀는 게 조금씩 편안해졌다.
세상은 이렇게 아이러니하다. 도망치려는 곳에서 의외의 답을 찾기도 하고 문제가 풀리기도 한다. 반면 어떻게든 문제를 풀어보려고 발버둥치면 더욱 문제가 꼬여 버리기도 한다.
지금의 내가 그 옛날 아무도 없는 도서관에 틀어박혀 엎드려 있던 학생 시절의 나를 만난다면 뭐라고 말할까.
때론 도망쳐도 괜찮다고, 너무 힘들 땐 일단 도피하는 것도 또한 방법이라고 얘기해 주지 않을까.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두려움을 원동력 삼아 성실히 살았던 나는 예기치 못한 몸과 마음의 병을 얻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편하려 하면 나의 삶도 새로운 방향으로 전개될지 모른다.
오랜만에 걱정이 아닌 기대감을 안고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