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가진 몸과 마음을 되살리기로 하고 결심한 또 한 가지는 배달음식과 외식 줄이기였다. 아이를 낳고 쭉 맞벌이를 해 오면서, 육아와 회사일에 시달리느라 주방에 들어가는 일은 극히 드물어졌다. 그나마 교대근무를 하는 남편이 출근하지 않는 날 간단한 요리를 해 놓는 정도였다. 시간이 없거나 심신이 지칠 때, 그리고 솔직히 말해 그냥 맛있고 자극적인 음식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싶을 때 습관적으로 배달앱을 켰다.
배달음식은 희한했다. 분명히 오기 전까지는 맛있을 거라는 기대감으로 즐거웠는데 막상 먹어 보면 대부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가끔 정말 맛있는 배달음식을 먹어도 특유의 자극적인 맛에 속이 더부룩했다. 자극적 양념에 혀가 길들여져서 왠만한 간은 심심하게 느껴졌다.
취준생 시절, 아르바이트를 하며 고시원 살이를 잠시 한 적이 있다. 정말로 수중에 돈이 없고 공용 주방도 쓰고 싶지 않아서 편의점 음식으로 며칠을 끼니를 때운 적이 있었다. 겉보기에는 탄-단-지를 고루 갖춘 한식 도시락 같았지만 이상하게도 먹을수록 속이 축나는 느낌이 들었다. 20대의 젊은 나이였는데도 그랬다.
지금은 그 때보다 경제적으론 훨씬 윤택해졌지만 이젠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요리를 자주 외주화했다. 그나마 양심은 있어 아이 먹을 밥만 따로 챙겨주고 어른들 먹을 건 따로 시켜먹기도 잦았다.
공황 증상으로 한참 고생하던 시기 심한 장염 증상까지 찾아왔다. 설사를 하다 핏덩어리가 나올 정도로 복통이 심했다. 특별히 잘못 먹은 건 없어서 원인은 알 수 없었다. 병원에서도 고개를 갸웃했다. 결국 주사를 맞고 약을 먹은 다음에야 겨우 진정이 됐다. 심리적 요인이 신체화됐던 건지, 뭘 잘못 먹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분명한 건 그 날도 나는 못다 잔 잠을 깨운답시고 진한 커피를 큰 머그컵 가득 채워서 먹고, 달디단 빵으로 두뇌를 억지로 회전시키고 있었다. 할 일이 많았으니까.
'우리가 먹는 것이 곧 우리 자신'이라는 말이 있다. 낡고 지친 내 몸을 좀 더 건강한 것들로 대접하기로 했다. 워킹맘으로서 주방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맛있고 건강한 식사를 할 수도 있었다. 자극적인 음식에 눈이 가려졌을 뿐.
겨울철, 날이 쌀쌀할 땐 국물 요리가 생각난다. 이럴 땐 양배추와 소시지, 토마토, 그리고 냉장고에 있는 갖은 야채를 대충대충 큼직하게 썰어 물에 넣고 치킨스톡 한 스푼과 충분히 끓여 내면 그럴싸한 '포토푀'가 된다. 따끈하게 구운 식빵에 찍어 먹으면 더욱 맛있다.
주말 아침, 김이 모락모락 나는 포토푀 한 대접을 끓여 마침 퇴근한 남편과, 거실에서 놀던 아이와 한 그릇씩 나눠 먹었다. 밖에는 싸락눈이 쌓이고 있고 우리는 따끈한 아침을 맞이한다.
시댁 텃밭에서 캔 고구마를 에어프라이어에 넣고 30분간 굽고, 차가운 우유와 함께 먹으면 한 끼 식사가 된다. 두부를 잘라 들기름과 함께 팬에 구워서 간장과 함께 먹기도 했다. 손이 많이 가지 않아도 맛있고 건강한 음식으로 우리 가족의 일용할 양식을 만들 수 있었다. 양배추를 물에 데쳐서 잡곡밥을 쌈 싸 먹는 건 아이도 나도 좋아하는 식단이다. 시간이 부족할 땐 제철 과일과 따끈한 차 한 잔도 간단한 간식이 되기도 한다.
맞벌이를 하는 가정에서 이런저런 반찬을 만들어 먹기보다 '한 그릇 요리'를 맛있게 만들어 먹는 편이 손도 덜 가고 식재료도 남지 않아 효율적이다. 한동안 다양한 재료로 솥밥을 만들어 먹는 데 꽂혔다. 전기밥솥에 쌀을 불리고 그날 먹고 싶은 다양한 재료와 다시마 한 장을 넣고 밥을 하면 끝이다. 사실상 재료 손질만 하면 돼서 무엇보다 간편하다. 소고기, 연어, 옥수수, 올리브, 버섯, 가지 등 구하기 쉽고 끌리는 재료를 적당히 넣으면 훌륭한 한 끼 식사가 된다. 재료에 따라 간단한 양념장을 넣으면 슥삭 비벼먹을 수 있다.
봄과 여름은 맛있고 신선한 채소를 잔뜩 먹기에 더욱 좋은 계절이다. 한국 요리에서는 잘 쓰지 않는 토마토도 집에서 특별한 요리를 만들기에 적절한 식재료다. 입추가 지나고도 일기예보 속 바깥 온도는 여전히 30도를 넘지만, 왠지 살갗을 스치는 바람에 차가움이 섞이기 시작하던 날 여름 야채를 솥에 가득 넣고 카레를 끓였다. 토마토와 가지, 애호박, 감자를 썰어 카레와 함께 끓이면 달콤하면서도 신선한 여름 맛이 느껴진다. 여름의 활기가 더위로 지친 몸을 채워넣는다.
식단을 바꾸니 속도 편해지고 아무리 먹어도 허기가 지던 증상도 사라졌다. 공황 약을 먹기 시작하며 늘 먹던 커피도 끊을 수밖에 없었는데, 잠을 잘 자고 속이 편해지니 졸음도 오히려 줄었다.
문득 아이가 이유식을 먹을 정도로 아기일 때, 모든 식재료를 유기농 매장에서 공수해다 정성스럽게 끓여 이유식을 만들던 때가 생각난다. 평소에는 비싸다는 이유로 잘 가지 않던 유기농 매장이었다. 더 이상 아기가 아닌 어른이 되어버린 나도 시간과 가격이라는 효율성 앞에 건강을 뒷전으로 해야만 했을까. 어쩌면 더 빨리, 더 많이 생산해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몸을 무리하게 굴리기 위한 연료를 과다하게 부어넣었던 것 같다. 일을 하다 당이 떨어지면 습관적으로 군것질을 찾고 카페인 음료로 잠을 깨웠다.
어린 아기를 키울 때처럼, 이제는 나의 몸을 위해서 건강한 것들을 주고 싶다. 그동안 많이도 고생했던 나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