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 만나, 스프링타운

꿈에서 만나, 스프링타운 (1)

by 뚜벅초


예전에 꿈 속에서 갔던 장소를
다른 날 꿈에서 다시 간 적이 있나요?

만약 그렇다면, 당신도 나와
같은 경험을 했네요.

지금부터 들려드릴 이야기는 제가 네 개의 계절을 지나는 동안
한 아름다운 마을에 머문
꿈과 같은 꿈 속 이야기니까요.




그 날도 만원 버스에 몸을 구깃구깃 구기며 앉아 있었다. 옆 자리에 앉은 아저씨의 패딩에서는 담배 냄새와 정체 모를 찌든 냄새가 솔솔 풍겨졌다. 저절로 미간이 찌푸려졌지만 앞, 뒤, 옆 할 것 없이 꽉꽉 들어찬 버스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약한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두 정거장만 더 가면 드디어 집이다.
정리 안 된 잡동사니 박스 같은 버스를 헤집고 내렸다.



나의 집은 이 곳, 4.5평짜리 작디 작은 원룸. 한 곳을 수리하면 다른 곳이 문제가 터질 정도로 편치만은 않은 방이지만, 이 도시에서 내 예산으로 허락된 곳은 여기가 유일했다.
10여년 전, 도망치듯 엄마와의 집에서 캐리어 하나만을 가지고 뛰쳐나온 날 찾아낸 이 방. 적은 보증금으로도 출퇴근이 가능한 서울 변두리에 위치한 이 방을 찾아낸 것은 사실 행운이었다.
비록 다른 지역에 있는 집주인은 방에 물이 샌다고 전화를 걸면 받지 않을 때가 더 많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친구가 없고, 이젠 가족도 없는-그리고 그 상태에 이미 퍽 익숙해진- 나는 이 방과 직장을 왕복하는 삶을 이어가고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그것이 평화롭게 느껴졌다가도 문득 뱃속이 허전한 느낌이 들고 마는, 눌러버릴 수만은 없는 감정.
그러나 어쩔 도리도 없기에 그냥 외로움을 나의 장기처럼 함께 들고 다니는 날들.

그 날도 녹초가 된 몸으로 방 문을 열고 들어와 컵라면에 물을 부었다. 수당 없는 추가근무가 잦아지면서 어떤 요리조차 하고 싶어지지 않는 날이 많았다. 배를 채우기 위한 식사를 마치고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한 뒤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보다가, 타인들의 이런저런 모습들을 구경하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다.




무척 밝은 햇살이 이마를 비췄다. 그리고 평소 들어보지 못했던, 청량한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내 발 밑에는 연두빛의 어린 잔디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고 길을 따라 조그만 꽃들이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며 피어 있다.
가끔씩 웃자란 풀들이 발목에 부딪혔다. 아침 이슬의 차가움이 살갗에 묻었지만 싫지 않은 느낌이었다.
풀 냄새 속에 날 듯 말 듯 섞여 있는 꽃 냄새를 맡으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인적은 없지만 멀리 조그만 집들이 보이는 걸로 봐서 누군가 살고 있는 마을인 것 같다.
잔디밭에서 왼쪽을 돌아보니 조그만 길이 나 있다. 비록 비포장이지만, 흙을 깨끗하게 다져놓은 모습이었다. 일단은 그 길을 따라 가 보기로 한다. 길을 따라가 보니 마을이 눈 앞에 나타난다.
마을의 입구를 알리는 듯한 나무 표지판이 하나 보인다. 조각칼로 서투르게 나무를 파 내고 잉크 같은 것으로 쓴 듯한 글씨가 보인다. 'Springtown'. 이 마을의 이름이 스프링타운인가.
표지판을 지나가니 다양한 색의 집들이 보인다. 사람들은 모두 어디 간 거지? 너무 이른 시간이라 모두 자고 있나?
문득 배가 고프다는 느낌이 들었다. 뭔가 먹을 게 있을까? 마을을 둘러보니 이번엔 민트색 작은 건물의 지붕에 'CAFE'라고 쓰여진 푯말이 보인다. 안을 들여다보니 불도 켜진 것 같다. 그리고...고소하고 달콤한 냄새가 난다.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간다. 낡은 빨간색 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밀린다.
몇 개의 테이블이 보이고 커피 냄새와 빵 굽는 향기가 나는 주방 겸 카운터가 보인다.
그리고 주방에서 커피를 내리고 있는 사람은, 아니 사람이 아니다. 온 몸이 흰 털로 덮인 북극곰이다.
북극곰이지만 제법 콧노래도 부르면서 커피를 내리고, 오븐에서-그 와중에 오븐 장갑도 끼고-갓 구운 시나몬롤을 꺼내고 있다. 그의 털은 카페의 큰 창으로 스며 들어오는 아침 햇살에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어서 오세요."
곰이 뒤돌아서 나에게 말했다.
"오늘 시나몬롤이 잘 구워졌네요. 한 개 드실래요?"



카페 주인이 북극곰이라고, 심지어 말을 하는 북극곰이라고 해서 도망쳐 나오기에는 배가 많이 고팠다.
아니 사실은 그리 많이 고프지는 않았지만, 왠지 이 곰은 그래도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카운터 앞 자리에 앉아 북극곰이 빵을 굽는 모습을 보면서 갓 구운 시나몬롤과 라떼를 먹고 있다니. 심지어 맛이 아주 좋았다. 라떼는 고소하고 진했으며 적당한 쌉쌀함이 잘 어울렸고 시나몬롤은 바삭한 겉면을 깨물면 자연스러운 계피향이 달콤한 설탕과 촉촉한 빵이 입 안에서 조화를 이뤘다.
"정말 맛있네요."
가게에서 주인과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없는 나였다. 언제부턴가 배달음식을 먹거나, 혹은 키오스크로 비대면 주문만 하는 것이 편하다고 생각했던 나였다. 그런데 내가 지금 처음 본 카페 주인과 대화를 하고 있다.

심지어 그 주인은...곰이다.
"고마워요. 시나몬롤은 제가 가장 자신 있는 메뉴에요. 손님이 주문한 라떼도 그렇고요. 그런데 손님은 어디서 오셨나요? 오늘 처음 오신 것 같은데."
"아, 저는..."
나는 어디서 여기로 온 걸까? 여기는 대체 어디일까?
"저도 잘 모르겠네요."
하지만 난 이곳이 왠지 마음에 든다.

사진출처: pexels


브런치에서 처음 써 보는 소설입니다.

(사실 소설 자체를 써 본 일이.... 대학 때 소설창작 수업 과제 이후로 처음인듯...)


언제나 제 글을 봐 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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