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맛에 육아

by 뚜벅초

미취학 아동 육아중인 분들이라면 대략 공감하실, 결코 짧지 않았을 6일간의 연휴가 끝났다.(2일에 연차를 내서 긴 연휴를 누릴 수 있었다) 쉬는 날이 가장 두려운 부모님들도 계시겠지만 개인적으로 평일은 매일 일을 해야 하는 워킹맘으로서, 연휴나 주말은 마냥 싫지만은 않은 시간이기도 하다. 어차피 평소에도 일과 육아를 정신없이 수행해야 하는 가운데 일이라도 안 하면 아침이 좀 더 여유로운 감이 있다. 항상 부족하다 싶었던 아이와의 시간을 좀 더 길게 가질 수 있다는 점도 좋다.


하지만 이번 연휴는 남달랐다. 바로 내가 아이에게 옮아서 지독한 몸살감기로 고생했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병원균을 옮겨준 아이는 목감기 정도로 끝났는데, 어른인 내가 주사 및 타이레놀로도 쉽게 낮아지지 않는 열에 시달리며 내내 헤롱거렸다. 심지어 남편은 직업상 연휴따윈 없는 교대근무자라 총 6일 중 이틀은 나 홀로 아이와 시간을 보냈다.

'쉬는 날이라서 싫다'는, '차라리 출근하는 게 낫다'는 어릴 때부터 엄마한테 지겹도록 들어왔던 말을, 나도 (마음속으로) 했다.

주니어 시절 가족과 함께 있는 게 고역이라 회사 나와서 쉰다고 퇴근 안 하려고 뻗대는 상사들을 속으로 한심하게 여겼던 댓가를 치르는 걸까. 역시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다양한 입장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인 듯하다.


이틀은 지방 여행까지 다녀왔고(블로그를 통한 업체와의 협업 일정으로 임의 취소가 안 됐다),

곧 어버이날이라 양가 부모님을 뵙고,

어린이날이니 아이랑 나들이도 해야 했다.


컨디션은 좋아질 듯 말 듯 계속 널뛰기를 했다. 37.5도를 위태롭게 넘나드는 체온계를 보며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남편이 출근을 안 하는 날은 잠시 맡겨두고 누워 있기라도 했지만 남편이 출근을 하면 정말 답이 없었다. 집에선 되도록이면 영상을 보여주지 않지만 잠시 모니터를 틀어 놓고 누워있기도 했다.

긴긴 연휴를 통과하며 피로감이 쌓였다. 아이에게 사무적으로만 대하게 되는 스스로가 염치없었다. 최대한 빠르게 식사와 씻기와 감기약 먹이기, 빨래 설거지 등을 해치우며 아이에게 "잠깐만 기다려"를 반복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매일 밤마다 하는 취침 전 그림책 5권 읽어주기도 목감기가 심하니 고역이었다.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로 5권의 책을 겨우겨우 읽어주고 이야기까지 들려준 뒤 불을 잽싸게 끄고 누워서 잠을 청했다. 그럼에도 잠이 안 온다며 종알거리는 아이에게 "벌써 열 시 반이야. 얼른 자자."하며 돌아누웠다. 겨우 하루를 보냈지만, 아이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기억할까. 항상 최선을 다해 버틴 것 같지만 그래도 아이가 잠들면 아쉬움이 찾아오고, 또 한켠으로는 언제까지 이렇게 빡센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하나 막막한 마음도 드는 밤이 또 지나가고 있었다.


그때 뒤척이던 아이가 말했다.

"엄마, 난 이러려고 엄마 아빠한테 태어났나봐."

"응?"

"엄마 아빠에게 태어나서 이렇게 행복하려고 내가 엄마 아빠 집에 태어난 것 같아."

"!!!!!!"

"엄마 아빠도 내가 있어서 행복하지?"


아파도 마음대로 아프지조차 못하는 엄마의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 내가

끝도 없는 힘듦을 속으로 한탄하고 있는 순간, 아이의 이 말이 화살처럼 날아왔다.

그리고 온갖 복잡한 기분이 먹구름처럼 가득 메우고 있던 내 마음 속을 하얀 빛으로 밝혀 버렸다.



육아가 힘들다는 백 가지 푸념을 하다가도 마지막엔 꼭 '그래도 아이 웃는 얼굴만 보면 모든 피로를 잊을 정도로 행복하다'는 세상 부모들의 레퍼토리는 솔직히 좀 진부하다고 생각했다.

생을 마칠 때까지 벗어날 수 없는 부모라는 숙명은 어느 정도의 정신승리가 아니면 버틸 수 없기에 애써 합리화 중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특히 이렇게 아픈 몸으로 혼자 육아를 해야 하는 날은 그냥 힘들기만 할 뿐 행복이란 감정을 느낄 새는 없었다.

몸이 힘들면 행복도 잘 느끼지 못하는 나는 '힘들지만 행복하다'는 말을 오랫동안 마음 깊이 공감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이 날 아이의 말을 듣고 '힘들지만 행복한' 육아를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응, 엄마 아빠도 우리 버미가 있어서 너무너무 행복하지."


아이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띄며 깊은 잠에 들었다.


6살짜리 아이를 키우며 양가 도움 없는 맞벌이를 하는 삶은, 현실적으로 일과 육아 외 별도의 즐거움을 추구하기가 어려운 상태를 의미한다. 사실은 지금도 종종 그런 상태가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에게 이런 말을 들을 때만큼이면(비록 십여년 뒤 그 아이가 자기 방에서 안 나오려 할지라도), 오롯이 육아에서만 행복과 보람과 즐거움을 찾아야 하는 부모의 삶도 그리 나쁘진 않다는 생각을, 제법 괜찮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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