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 대해 현직 미디어종사자 워킹맘이 이의 제기합니다
얼마 전 업무로 포털 뉴스를 검색하다가, 굳이 보고 싶지도 않았는데 옆 화면에 '많이 본 뉴스'가 떠서 무의식적으로 클릭을 했다. 평소의 나 같으면 남들이 무슨 뉴스를 많이 보든 신경도 쓰지 않고, 애초에 그게 무슨 의미일까(미디어 업계 종사자로서, 조회수에 목숨을 걸 수밖에 없는 언론사의 입장은 십분 이해가나)싶어 대체로 무시하지만, 이번엔 클릭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제목부터 '맞벌이'이라고 대문짝만하게 써있기 때문이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3/0013253233?sid=102
기사의 내용인즉 2024년 기준 영유아들이 평균적으로 20개월도 되지 않은 월령에 어린이집에 맡겨지고 있는데, 그 원인으로 맞벌이(워킹맘) 가정의 증가를 꼽고 있었다.
경제매체에 10년 이상 종사해 온 현직 미디어 종사자로서, 비록 뼈문과지만 수많은 데이터를 접하고, 해석하고, 가공해서 기사화하고 있다. 그런데 이 기사를 읽고 나선 여러모로 의구심이 들었다.
기사 본문에 있는 그래프다. 출처는 교육부라고 한다. 아마도 교육부에서 자체 조사 후 데이터를 구성해 출입기자들에게 보도자료로 배포했을 것 같다. 해당 매체 말고도 동시에 여러 매체에서 보도했기 때문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우리나라 영유아들은 평균 19.8개월에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다. 이 중 엄마가 취업한 경우(워킹맘)는 18.2개월, 엄마가 전업주부인 경우(미취업모)는 22.6개월로 조사됐다. 와중에 아빠의 취업여부는 따로 명시하지도 않고 '엄마'만 갈라세운 것도 상당히 시대착오적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우리나라의 유자녀 맞벌이 비중이 딱 50% 정도라고 하니(아빠의 경우 연령대를 막론하고 취업비율이 95%를 넘는다) 당위를 떠나 현실적인 조사를 위해 불가피할 수 있어 이 글에서는 논외로 하자.
현재 영유아를 키우고 있거나 최근에 육아를 하신 분들이라면, 어린이집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를 떠나서 조사 결과 자체는 납득이 되실 듯하다. 실제로 내 주변을 봐도 '엄마의 취업여부를 떠나' 많은 아이들이 돌에서 두 돌 사이에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다. 2020년생인 우리 아이는 25개월부터 어린이집을 다녔는데, 정확히 돌이 지나고 나니 "왜 어린이집을 안 보내냐"며 별종 취급하는 지인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기사의 논지와 달리 이 데이터만 놓고 보면 아이들이 너무 빠른 나이에 보육시설에 맡겨지는 원인을 꼭 '워킹맘이 증가해서'라고 보기 어렵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영유아가 어린이집 등 기관에 입소하기에 적절한 개월수의 기준을 잡아야 한다. 많은 양육 전문가들은 영유아의 신체적, 정서적 발달 수준을 감안할 때 영유아에게 정신적 스트레스를 과도하게 주지 않고, 집단 생활을 즐길 수 있는 최소한의 보육시설 입소 월령을 24~36개월로 규정하고 있다. 물론 아이의 기질에 따라서 이 기준은 달라질 수 있다는 게 대부분 전문가들의 견해다.
(근거: https://www.vegemil.co.kr/webzine/Q1_2020/sub03.aspx - 해당 링크의 기고문을 쓴 소아정신과 원장님은 만 2~3세(24~36개월)로 규정하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5ug0bn2mXE - 영상에 등장하는 아동심리전문가들은 두돌~세돌 이후로 주장하고 있음
이밖에도 다수의 논문이나 보도, 책 등에서 비슷한 원령을 권유하는 전문가들을 본 바 있으나 검색능력 부족과 혹시나 저작권 문제에 걸릴 수 있어 인용하지 못했다...)
간혹 김수연 아기발달연구소 소장님처럼 아이가 걸음마를 하면(통상 10~18개월) 바로 기관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를 기준으로 한다면, 취업모(18개월)나 비취업모(22개월)나 모두 문제가 없다.
다시 기사로 돌아가서, 취업맘(18.2개월)이고 비취업맘(22.6개월)이고 모두 전문가들이 권장하는 월령보다는 훨씬 이른 나이에 아이들을 입소시키는 모습이다. 양 집단의 격차 또한 고작 4개월이다.
만약 취업모의 자녀는 18개월에 입소하지만 비취업모의 자녀들은 36개월 이후 입소를 하는 것이 평균적인 것으로 조사됐다면 기사의 타이틀을 위와 같이 잡아도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위 데이터만 놓고 보면, 어린이집 조기 입소의 원인을 반드시 '맞벌이 증가'라고 단정하기에는 근거가 부족하다.
심지어 우리나라는 OECD 가입국 중에서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여성의 경력단절 문제가 심각하다. 우리나라는 타 선진국에서는 보기 어려운 30대 중후반 여성의 노동시장 이탈현상으로 생애 고용그래프에 'M자현상'이 생기는 거의 유일한 국가기도 하다. 따라서 타국대비 맞벌이 비중도 낮은 편이다. 그럼에도 해외보다 보육시설 이용률이 높고 아기들의 입소 연령이 낮다는 건, 원인이 맞벌이 증가가 아닌 다른 곳에 있다는 뜻이다.
개인적으로는 무상보육 정책이 '양날의 검'이 됐다고 생각한다.
그런즉 마치 워킹맘 증가가 아이와 부모의 건강한 애착형성을 방해하는 근원인 것처럼 규정하는 기사와 콘텐츠가 주기적으로 나오는 건, 실제 '팩트'가 있어서가 아니라, 여전히 '엄마가 일을 하면 아이들은 어느 정도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는 명제가 일반 대중들의 의식 속에 뿌리깊게 박혀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답정너'다. '워킹맘=아이의 불행'이라는 '답'을 정해놓고 근거를 끼워맞추는 것.
물론 이 또한 그냥 뇌피셜일 뿐, 당연히 학술적으로 증명된 바 없다. 오히려 다수의 연구는 엄마의 취업여부가 아이의 정서발달이나 학업과 무관한 것으로 증명하고 있다.
(근거:
1. "(중략) 최근 들어 취업모의 자녀와 비취업모 자녀의 발달을 비교한 결과가 많이 있다. 그러나 양자의 차이를 뚜렷이 알 수 없었으며...(중략)"
"연구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어머니의 취업에 따른 양육태도는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영숙, <어머니의 취업여부에 따른 양육태도 및 유아의 사회․정서적 발달에 관한 연구>, 조선대학교 교육대학원, 2006.
2. (중략)그러나 어머니의 취업은 자녀의 학교적응은 물론 자녀의 주의력이나 정서·행동통제력에도 직·간접적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대신 자녀와 함께 보내는 시간의 질이 자녀의 학교적응에 더 중요하게 적용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https://news.nate.com/view/20190707n03283?mid=n1101)
이러한 답정너가 비단 위 기사 뿐이라면 이렇게 긴 글을 작성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워킹맘에게 실체가 불분명한 죄책감을 강요하는 콘텐츠가 여전히 전방위적으로 과도하게 유통되고 있단 것이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우연히 이런 영상의 썸네일을 보고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원치 않는 영상을 보고 싶지 않아 알고리즘을 차단했음에도, 개별 영상을 볼 때 연관 영상이 함께 뜨는 걸 막는 방법은 찾질 못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1gAYqrFyV8
단지 낚시성 영상이 아닐까 싶어 불쾌감을 참고 영상을 끝까지 봤는데 안타깝게도 반전 없이 진짜로 '맞벌이를 하면 자녀 교육은 포기해야 한다' 수준의 내용이었다. 더욱 황당한 점은 저 자리에 참석한 전문가 패널 3인이 모두 워킹맘이라는 것이다. 뭐 어쩌란 건지....
이런 식으로 조회수를 끌어올리기 위한 의도였다면 아주 대성공이었을 것이다. 물론 사회에는 전혀 긍정적 영향을 주지 못했겠지만.
역시나 이 영상을 봐도 실제 맞벌이를 할 때 자녀에게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의 합당한 근거는 부족하다.
가장 크게 지목하고 있는 '하교 후 학원 뺑뺑이'도, 비단 맞벌이 가정만의 문제라고 보기 어려운 현실이다.
물론 맞벌이 부모로서 아이 돌봄 및 효율적인 시간 관리를 위해(집에서 유튜브, 게임만 하라고 둘 수는 없으니) 불가피하게 학원을 돌릴 수밖에 없는 현실을 부정할 순 없다. 우리나라는 어린이, 청소년이 돈을 쓰지 않고 건전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 너무 부족하다.
하지만 엄마가 집에 있다고 해서 아이들의 학원 이용이 유의미하게 적어지냐고 보기엔, 역시 근거가 부족하다.
이를 위해 관련 기사를 찾아보았다. 마찬가지로 근거가 부족한 맞벌이/외벌이 갈라치기 기사가 보였다.(하..)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0/0003633395?sid=102
2023년 기사다. 기사 제목과는 달리 본문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맞벌이 가정과 외벌이 가정의 월 사교육비 지출 금액 차이는 고작 5.5만원이다.
(중략)
2023년에는 둘의 격차가 5.5만 원(맞벌이 56.5만 원, 외벌이 51만 원)으로 벌어졌다.
5.5만원이면 요즘 유치원생들도 다들 한다는 학습지도 못 한다. 치킨 두 마리 사 먹으면 끝이다. 5.5만원으로 학원 '뺑뺑이'를 돌릴 수 있는 동네가 어딘지 궁금하다.
따라서 저 영상과 위 기사를 보고 내릴 수 있는 타당한 문제제기는 '아직 어린 아이들을 너무 이른 나이부터 과도하게 경쟁적인 학업 스트레스에 내몰리게 하는 한국의 교육 분위기'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워킹맘들이 아이를 망치고 있다'가 아니라.
영상에서 근거로 제시하는 초등 교사분의 경험담에 따르면(이 또한 개인의 경험일 뿐이라는 한계도 있다) 아이가 준비물을 가져오지 않은 경우 맞벌이 가정의 아이는 당황하면서 스스로 해결책을 찾으려 하지만, 엄마가 집에 있는 아이는 여유 있게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는 것이다.
이게 왜 '엄마가 일을 그만둬야 하는 이유', '엄마가 맞벌이를 할 때 아이가 부족해지는 이유'가 되는지 전혀 납득이 되지 않는다. 나 때는 엄마가 집에 있으나 없으나 알아서 준비물을 챙기던 시절이라 그런가? 문득 요즘 일부 젊은 친구들은 직장에 늦는다는 연락조차 부모가 대신 한다는 푸념을 들은 기억이 난다. 학생 때부터 스스로 하는 습관을 기르는 게 왜 나쁜지부터 돌아볼 필요가 있다.
세계 유일의 출산율 0명대, 세계 최악의 여성 경력단절율, 세계 최저비율의 맞벌이 가정 비율을 자랑하는 우리나라는 틈만 나면 "워킹맘 여러분들, 죄책감 갖지 마세요"라고 위로한다. 나는 이 말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 우선 저 말을 워킹대디들에게는 하지 않기 때문이다. 애초에 워킹맘이 위로를 받아야 하는 불쌍한 존재라는 인식 또한 너무 옛 시대의 인식(여자는 그저 돈 잘 버는 남자한테 시집 잘 가서 예쁘게 살림만 해야 복 받은 인생이라는)이라는 느낌인데다, 막상 나처럼 정말 일하는 것 때문에 죄책감을 딱히 갖지 않는 엄마들에게는 위의 콘텐츠 같은 주장을 하면서 감히 왜 죄책감을 갖지 않느냐고 윽박지르는 마음이 느껴진다. 하지만, 미안하지만 우리 아이는 내가 일을 한다고 해서 딱히 불행하지 않은 것 같다. (아직 사춘기가 먼 6살 우리 아이는 "내가 이렇게 행복하려고 엄마 아빠에게서 태어났나봐"라고 한다.)
온 국민이 강박적으로 '젊음'을 추구하고, 요즘 유행하는 밈 하나라도 못 알아들으면 '틀딱' 취급하는 나라에서 유독 육아에 대해서만큼은 80, 90년대의 생활상을 기준으로 잡는 경우를 너무 많이 본다. 아빠가 회사에 나가 열심히 일을 하면 엄마는 앞치마를 입고 보글보글 된장찌개를 끓이며 학교에 간 아이들을 맞이해야만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는 생각. 아빠는 가정일에 관심이 없고 그저 돈만 잘 벌어오면 역할을 다 한 거라고 생각하는 막연한 관념. 출산율이 낮아지고 '실제 현 시대 육아'를 간접경험으로조차 겪어보지 않은 인구의 비중이 늘어나면서 이는 더 심해지고 있다. 이미 30~40대 우리 또래인 성인들이 자신이 자랄 때의 부모님 모습을 현 시대 부모상으로 동기화하고, 여자의 몸으로 바깥일까지 해야 하는 워킹맘을 연민과 동정의 시선으로, 당연히 육아는 엄마가 혼자 다 하고 있을텐데 '그깟 돈 몇 푼 번다고 밖으로 나돌아' 아이를 방치시킬 거라는 관념으로 실체 없는 죄책감을 주고받는 한 이 나라의 미래 세대는 희망을 갖기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