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브런치에 가입해서 첫 글을 쓸 때만 해도 내 글쓰기에는 아무런 목적이 없었다. 흔히들 말하는 것처럼 작가가 된다든지 등단을 한다든지 출간을 하고 싶다든지 하는 목표가 없었다. 출판사에서 브런치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사실도 몇 년이 지나서야 알았다. 그러나 목적 없이 그냥 내 속에서 둥둥 떠다니던 생각들을 토해내듯 쏟아낸 글들이 본의 아니게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얻고, 심지어 출판사 관계자나 기타 여러 분들의 제안까지 받으면서 나에게도 그놈의 기대심리라는 게 생기고 말았다. 급기야 재작년에는 막연한 버킷 리스트였던 출간의 꿈까지 운 좋게 이루고 말면서 그 뒤로 나의 모든 글쓰기는 '이 글이 과연 출간이 될(혹은 팔릴 만한) 글인가'로 귀결되고 말았다. 편한 친구같던 브런치 글쓰기가 마치 내가 매일 회사에서 월급을 받고 쓰는 글처럼 변질돼버리고 만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초심을 되살리고자, 까진 아니더라도 좀 편하게 뭔가를 쓰고 싶다는 마음으로 매거진을 개설해 보았다. 여기다 쓰는 글은 제발 출간이고, 제안이고, 네이버 인플루언서고 수익화고 아무 것도 신경쓰지 말고 그냥 편하게 쓰는 일기처럼 쓰려고 한다.
2.
나이를 과하게 의식하는 글이나 콘텐츠를 솔직히 좀 '후지다'고 생각해 왔다. 이미 모든 사람에게 통상적으로 기대되는 나이다움이나, 인생 통과의례 같은 것도 무의미해진 2020년대에, 여전히 서른즈음이 어떻고 마흔의 서러움이 어떻고 쉰의 우울함이 어떻고 하는 건 너무 구시대적인 생각이란 느낌이다. 심지어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사는 게 안티에이징에도 더 좋다고 하지 않던가! 게다가 나는 글로벌 기준인 만 나이가 맞다고 생각하는 편인데(정치적 입장과는 전혀 별개로) 대개 이런 나이 담론은 여전히 한국식 세는 나이를 기준으로 하니 이 또한 너무 구십년대 스럽다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가 어쩌고 하는 책도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아니, 애초에 2020년대 중반 기준으로 더 이상 '서른'의 사람들, '마흔'의 사람들에게 존재하는 '표준적인 삶의 모습'이라는 게 있긴 한가? 당장 내 주변 또래들만 봐도 누군가는 애 셋을 키우고 있는가 하면 누군가는 아예 결혼도 연애도 안 하고 살고 있지만 누구도 서로를 특별하게 여기지 않는데 말이다. (가끔 부모님 세대 분들이 이러쿵 저러쿵 하긴 하지만... 그 분들을 요즘 시대 분들이라고 하기에는?)
그런데 세는 나이만큼 여러가지 생각이 들게 하고 또 많은 글감(?)을 주는 소재도 없더라. 너무 후지고 진부해 보인다는건 아는데 앞에서 밝힌 만큼 이 글은 누구에게 잘보이려 쓰는 글이 아니라 그냥 내가 끄적이는 글이니까. 또 진부하고 후진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3.
2026년에 나는 한국식 나이로 40대에 들어섰다. 보통 이나이쯤 되면 꺾인 느낌이 되면서 서럽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무섭다고 하는데 솔직한 심정으로 나의 마음은 기대 반 그냥 얼떨떨함 반이다. 이 년 뒤 생일이 지나서 진짜로 만나이 앞자리가 바뀌면 좀 실감이 날 것도 같다. 내 마음은 아직도 이팔청춘인데!! 따위가 아니라 그냥 잘 모르겠다. 20대, 30대에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고 30대에 키우던 아이를 여전히 키우고 있고 몸은 원래 어릴 때부터 골골거려서 그런지 딱히 더 나빠진 것 같지도 않다(정확하게 말하면 더 나빠질 것도 없다는 소리다).
누군가는 더 이상 '성애의 대상'으로 보이지 않는 나이여서 우울하고 슬프다고 하고 누군가는 더 이상 힙하지 않아서 울적한 것 같고 누군가는 다가올 미래가 두려운 것 같기도 하다.
실제 주변을 둘러봐도 다들 앓는소리 뿐이다. 물론 경제적으로는 나보다 훨씬 더 안정적으로 자산을 일군 사람들도 있고 커리어적으로 잘 나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다들 (엄살인지 몰라도) 힘들다는 이야기뿐이다. 입이 마르게 배우자를 자랑하기 바쁘던 신혼 시기를 지나 부부사이도 벌어지고, 이혼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친구들도 생기고, 품안의 자식도 점점 머리가 크면서 내 마음대로 안 된다는 걸 슬슬 깨닫기 시작하고(앞으로는 더하겠지?) 커리어는 자리를 잡은 것 같아 보여도 실제로는 언제 '경력단절'이 현실이 될 지 모르는 불안감하며, 심지어 크고작은 수술을 받는 지인들도 있다. 아, 부모님이 나이들어감에 따라 부양의 문제도 현실로 다가온다.
그래서 다들 빛나고 아무 걱정 없었던 90년대와 Y2K를 동경하나보다.
그런데 나는, 나는 다들 한창 잘 나간다는 20대 때도 딱히 인기 있는 여자애가 아니었어서 그런지, 아직은 과거가 딱히 그립지는 않다. 그때는 그냥 하루하루가 고군분투였고 가정불화와 경제적 어려움, 사회성 부족으로 힘든 시기였어서 안정을 찾은 30대 이후가 압도적으로 더 좋았다. 그리고 더 이상 성애의 대상으로 보이지 않고 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지금의 삶이 퍽 마음에 든다. 물론 나라고 삶이 매번 내 마음대로만 흘러가는 건 아니지만, 젊어서 나름대로 이런저런 고생을 해 본 편이라 그런지, 인생 그냥 다 이런 거 아닌가 싶고 모든 건 다 흘러가게 마련이라는 걸 알아서 그런지 좀 힘들어도 견딜 만하다.
3.
20대 후반부터 30대의 나는 그야말로 격동의 세월을 보냈다. 물론, 누구 하나 인생을 돌아보면 그렇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마는.
예전에 SNS를 할 때(지금은 하지 않는다) 지난 10년의 하이라이트를 적어보는 돌림글(?)같은 게 있었다.
당시가 2021년쯤 됐는데 아무 생각 없이 적었다가 나도 깜짝 놀라고 내 계정 팔로워들도 엄청난 인생을 사셨군요 하는 반응을 받은 적이 있다.
2011년-호주에서 농장, 맥도날드 알바 등으로 번 돈 다 써서 급 귀국, 복학
2012년-직원수 4명 첫 회사 입사
2013년-한 차례 이직하고 퇴사 후 재취준
2014년-취업준비 시작했으나 사회적 이슈(세월호)로 공채 전멸, 백수 기간 길어짐, 부모님 사업 망함
2015년-본가로 들어갔는데 동생의 폭행으로 짐 싸서 원룸 얻어 나옴, 석 달 뒤에 공채 합격
2016년-당시 선배들의 괴롭힘으로 퇴사할까말까 매일 시달리다가 우연히 현재 남편 만남(모솔 탈출!)
2017년-이직, 그러나 이 회사도 만만치 않았음...
2018년-결혼 준비
2019년-결혼, 임신(속도위반은 아님)
2020년-출산, 육아휴직, 우울증 걸려서 처음으로 정신과 다님(그러니까 위와 같은 일들을 겪었음에도 이때까지 병원 가 본 적이 없다는 소리. 처음으로 '극단적인 생각'을 한다는 게 뭔지를 알게 됨)
2021년-복직, 직장내 괴롭힘, 결국 이직함(다행히 다른 직장을 구함)
여기까지만 적었었는데도 너무 파란만장하다 싶었다.
그 뒤로는 비교적 평온(?)하긴 했다.
2022년-아이 발달지연으로 울면서 병원다님, 기적적으로 정상발달 되어 치료 종결
2023년-본격적 양가도움없는 맞벌이 시작.
2024년-내 첫 책 출간, 첫 자가 입주, 공황장애 발병(당시 의사 선생님께 '별 일도 없었는데 갑자기 왜 이런 병이 생긴거죠?'하다가 지금까지의 지난 일들을 모두 말하게 됐는데, 선생님이 '그동안 너무 많은 일들을 견디다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고 하셨다...)
2025년-그나마 이 중에서는 가장 별 이슈가 없었음....
이었다.
나의 앞으로 10년간은 또 어떤 일이 펼쳐질지 기대반 걱정반이지만,
30대보다는 좀 더 평온했으면 하는 마음 반,
혹은 더 빡세더라도 극복해낼 수 있다는 믿음 반 정도다.(정확히는 견뎌낼 수 있는 수준의 고난만 일어나기를)
4.
2026년 새해는 양양 해변의 한 캠핑카 안에서 맞았다.
예전에 브런치에도 썼다가 지웠지만 만삭 때 생전 처음으로 새해 해맞이라는 걸 해보고 싶어서 남편이랑 선유도에 갔다가 날이 흐려서 울면서 집에 돌아온 적이 있다.
이제 애 태어나면 새해 해맞이는 꿈도 못 꿀텐데, 이대로 그냥 몇십년은 평생 못 보는건가 싶어져서.
그 말은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고 실제로 해맞이는 꿈도 못 꾸고 얼레벌레 6년을 보냈다.
그러다가 큰마음을 먹고 이제 애도 7살이 되었으니 새해를 보러 가자(안되면 말고)며 해변에서 가깝다는 캠핑카를 급하게 한 달 전 예매했다.
나를 닮아서 잔병치레는 많지만 다행히도 여행을 참 좋아하는 아이는 신이 나서 이리저리 뛰어다녔고
미국산 캠핑카 안방에서 아이와 함께 잠을 자는데(침대가 2인용이었음;) 갑자기 난방기에 이상이 생겨서 아이가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결국 아이 아빠가 그나마 따뜻한 거실로 아이를 데려가서 재웠고 나 혼자 멀뚱히 안방에 남았다.
시계를 보니 오후 11시 45분. 딱 15분 뒤면 새해가 밝는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은 희한하게도(?) 제야의 종 소리를 안 듣고 자면 눈썹이 하얘진다는 장난을 치곤 하셨다.
그때부터 익힌 습관 때문인지 나는 새해가 넘어가는 자정 12시는 왠만하면 깨어서 TV로 카운트다운을 보든 혼자서 일기를 쓰든 뭐라도 하는 편이다(밤잠이 많은 남편은 쿨쿨 자고 있다)
이날은 다음날 아침 일찍 새해도 볼 거고 해서 그냥 자려고 했는데 기왕 깬 김에 뭘 할까 고민하다가
유튜브를 켜서 명상 가이드를 틀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메따(자비) 명상'.
내가 사랑하는, 사랑하지 않는, 내가 잘 아는, 잘 모르는, 나와 가까운, 먼, 모든 사람들과 존재들에게
사랑과 용서와 연민과 감사와 존중을 담아 전달하는 명상이었다.
새해에는 좀 더 사랑이 가득한 마음으로 만물을 대할 수 있기를.
눈을 감고 심호흡하며 내 가슴 속에서 사랑의 마음을 느끼는 동안 조용히 2026년이 밝았다.
그리고 나의 새로운 1년이, 40대의 새로운 10년도 함께 시작되었다.
밖에서는 사람들이 불꽃놀이를 하는지, 탁탁 소리가 조그맣게 들려오고 있었다.
새해 해맞이는 위치 선정을 잘 못 해서 해변에서 덜덜 떨다가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봤다.
양양 일출은 해변이 아니라 산에서 뜬다던데... 늦게 나와서 산에 못 올라간 탓이었다.
그래도 어쨌든 해를 봤다.
(내년부턴 해는 집에서 봐야지)
돌아와서 떡국도 끓여먹었다.
5.
새로운 10년을 맞이한다고 하니 아이처럼 설레는 것도 사실이다.
나의 10대는 이 세상에 적응하는 것이 목표였고
20대는 최대한 또래들에게 뒤처지지 않도록 모든 것을 열심히 하는 것이 목표였다.
30대는 사회에서 인정받고 자리잡는 것이 목표인 10년이었다.
그렇다면 나의 새로운 10년은 무엇이 목표가 되어야 할까.
사람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평균적인 수명을 대략 80년 전후라고 하면 건강수명의 절반을 지낸 셈이다.
그리고 앞선 전반기는 나를 사회의 기준에 최대한 잘 맞추기 위한 준비 기간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그 과정에서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을 멀리하고 사람들에게 그럴듯하게 보이기 위한 선택을 하곤 했다. 많은 것을 이루고 뿌듯함도 느꼈지만 사라지지 않는 공허감이 항상 도사리고 있었다. 겉보기의 삶은 제법 안락하지만 내가 나로 살지 못하고 있다는 감각, 다른 사람들의 만족에만 복무하고 있다는 느낌...
너무 오랫동안 나는 내 삶의 완성도를 평가하는 기준을 타인의 시선에 의존하고 있었다.
이제는 그 시선을 보다 나 자신으로 돌리려고 한다.
공자가 말한 40세를 뜻하는 '불혹'의 의미는 미혹되지 않음을 말한다고 한다. 물론 40에도 흔들리고 80에도 흔들리는 것이 필부의 인생이라지만, 적어도 내 삶의 모든 결정을 타인의 시선과 말에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는 건 어렴풋이 알게 되는 나이지 않나 싶다.
심지어 흔들린다 하더라도 그건 오롯이 나의 선택에 의한 흔들림이어야 할 것이다.
새해에 읽은 책 중 백수린 작가의 에세이 <다정한 매일매일>에 무척 마음이 가는 구절이 있다.
올해는 존재의 가치를 증명해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처럼 억지로 거창한 목표를 세우지 않으면 어떨까? 마치 내일이면 세상이 끝장날 것처럼 모든 일을 당장의 손해와 이익으로 계산하지도 말고. 싫어하는 노래를 다른 사람들이 부른다고 해서 억지로 따라 부르지 않는다면, 고통을 쉽게 외면하거나 누군가의 상처에 대해 가볍게 말하지 않는다면. 새해에 당신과 내가 들여다보았으면 하는 것은 오직 마음.
<다정한 매일매일>, 백수린
다가오는 10년부터는,
다른 사람들이 부른다는 이유로 부르고 싶지 않은 노래를 억지로 따라부르지 않으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