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하면 괜찮겠지' 금지

by 뚜벅초

1.

아마도 대한민국 국민의 절반 이상이 그렇듯이 나 역시 10대부터 30대까지의 삶을 꽤나 모범생으로 살았다. 그러니까 사회에서 원하고 긍정하는 가치를 최대한으로 추구해서 나름 인정을 받는 '우등생'도 못 되고 그냥 어설프게 눈치를 보며 그럭저럭 욕은 안 먹는데 그렇다고 인정받을 정도도 못 되는, 근데 내가 원하는 대로 양껏 반항도 못 해본, 어정쩡하기 짝이 없는 모범생 신세.


서른이 넘자 엄마는 "네가 33살에 결혼하면 딱 좋겠다"고 했다. 당시 부모님이 하던 사업은 망헀고 부모님 사이는 더 나빠져서 아예 별거에 가까운 처지가 됐다. 그런 상황이니만큼 결혼 압박이라 할 건 없었지만 은근히 원하는 바는 내비치셨다. 딱히 엄마 말을 들을 생각도 없었는데 나는 엄마가 원하던 그 나이에 진짜로 결혼식을 올리게 됐다. 결혼식에 대한 로망도 없었고, 언제 결혼해야겠다 같은 목표도 없었지만 어쨌든 결혼을 해야 한다면 이미 콩가루가 되어버린 본가 집이 아예 팔리기 전, 그나마 겉보기에나마 가정의 형태를 억지로 유지하고 있을 때 빨리 결혼의 모든 절차를 밟아버리는 게 낫겠다는 전략적(?) 판단에서였다.


결혼식을 마치고 든 가장 큰 감정은 안도감이었다. 아, 그래도 어쨌든 별 탈 없이 남부끄럽지 않게 모든 걸 끝내버려서 다행이야, 라고.


2.

지금까지 인생의 대부분 큰 관문들을 이런 감정으로 넘었던 것 같다. 입시도 취업도 어정쩡하게 '대충 이만하면 괜찮겠지' 정도로 해나갔다. 그렇게 넘은 관문들은 항상 기대와는 다른 모습으로 나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어른들의 권유로 정한 대학 전공, 내가 진짜로 원하던 수준의 직장에는 불합격하고, 현재 다니는 곳은 남 보기 부끄러울 정도로 처우도 열악하고 이름도 없으니까 그래도 적당히 이 정도면 괜찮겠지 싶은 직장에 들어갔다가 지독한 방황만 하고 1년이 좀 넘어 튕겨져 나왔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내가 자라온 유년기, 청소년기의 이 사회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의 단일한 목적지만을 던져주고 달려오기만을 종용했다. 그래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누구인지, 뭘 할 때 행복한지를 탐구할 시간도 없고 그런 행동을 쓸모없는 짓으로 취급하곤 했다.

그렇다고 해서 굳이 입시위주의 교육정책이나 비판하는 해묵은 소리를 하고자 하는 건 아니다. 또래 집단에서도, 가정에서도, 무난해 보임직한 선택을 해야만 무리에 속할 수 있다고 믿었으니까. 내가 좋아하는 콘텐츠를 보기보다 또래 여자들이 좋아하는 로맨틱 드라마나 화장품 등에 관심을 가져야만 친구를 더 많이 사귈 수 있을 것 같아서 억지로 관심을 가지려고 하기도 했다. 물론, 그런 가짜 관심은 오래가지 못했지만.



3.

결혼하고 손주까지 안겨 드리자 엄마는 또 다른 '희망사항'을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그래도 애가 둘은 있어야 하는데". 아이가 세 살이 넘으니 주변은 약속이나 한 듯 둘째를 갖기 시작했다. 모두들 "아이 키우는 건 너무 힘들지만, 그래도 너무 예쁘니까 하나 더 갖고 싶어"라며, 아기 때 울고불고 고생하면서 둘째는 없다고 외쳤던 과거를 깡그리 까먹고 둘째를 계획하기 시작했다. 안 생기면 난임병원을 다녀서라도.


과거의 나라면, 아마도, 인생 선배들이 하는 조언은 그래도 맞는 말일 거야 싶어서 흔들렸을 것 같다. 혹은 주변 사람들이 모두 저쪽으로 가는데, 그래도 저쪽이 확률적으로 더 맞는 게 아닐까? 괜히 남들 잘 안 가는 길을 갔다가 후회하면 어쩌지? 하면서 안절부절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간 나의 삶은 대체로 '좋아함'보다는 '두려움'이 이끌어왔다. '이걸 꼭 하고 싶어'보다는 '이걸 안 하면 큰일날지도 몰라'하며 선택하는 삶. 그런 선택지들이 모여서, 내가 아닌 내 삶을 만들었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 아이를 언제 낳을까 고민하고 있는 나를 두고 사람들은 입을 모아서 "너무 힘들어. 힘든데, 이만한 행복이 없어, 아이가 웃으면 모든 피곤이 다 녹아 내린다니까. 애는 늦기 전에 꼭 낳아야 해"라고들 했다. 언제나 인생 선배들의 조언을 금과옥조처럼 따라다니던 나는 그들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그러나 인생 선배는 선배일 뿐이고 내가 아니었다. 그들의 경험이 꼭 나와 같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생각해보면 과거에도 수많은 사람들의 조언을 주워섬겼지만 딱히 내 인생에 꼭 들어맞는 건 거의 없었다. 결국 내 인생의 교훈은 내가 직접 몸으로 부딪혀가며 얻어야 하는 거였다. 육아도 마찬가지. 아아, 너무 안타깝게도, 나는 아이의 웃는 얼굴에 모든 피로가 녹아내리는 체질이 아니었다. 남을 위해 헌신 봉사하면서 보람을 얻고 존재감을 확인하는 스타일도 아니었다. 타인과의 소통이 있어야만 에너지를 얻는 체질도 아니다. 아이랑 유치하게 장난치며 노는 것보다 혼자 조용하게 책 읽고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내 기질상 육아는 내게 재밌을 요소가 거의 없다. 애가 있으면 엄마들끼리는 스무 살 차이가 나도 동지애가 느껴진다던데, 나는 아이들끼리 아무리 친해도 아이 친구 엄마와의 결 다름이 너무 크게 느껴져서 친해지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맘 커뮤니티'에서 소속감을 느끼지도 못했다.


그렇다고 적당히 육아를 외주화하면서 문제는 흐린눈하고 내 인생 사는 스타일도 못 됐다. 육아는 고역이었지만 꾸역꾸역(?) 열심히 돌보려고 노력했고 사정이 허락하는 한 기관에 맡기는 일을 최소화했다. 개인대 개인이었으면 절대 말 섞을 일 없을 것 같은 아이 친구 엄마와도 웃으면서 칭찬 한 마디라도 먼저 더 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고 아이가 원한다면 적성에 맞지 않는 '파티 플래닝'도 한다(정말, 애를 키워보기 전엔 미처 상상도 못했던 엄마의 역할이다). 그런 덕분인지 몰라도 아이는 어디가서 대체로 좋은 말을 더 많이 듣는 밝고 명랑한 아이로 자라고 있다. 적어도 내가 우리 아이만했을때의 음울함(?)과 위축된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여전히 나에게 육아는 무한한 행복과 즐거움이라기보단 그냥 끝없는 의무감의 연속에 불과했다.


나는 내 자아가 소중한 사람이다. 하지만 애를 낳아만 놓고 열심히 내 자아를 찾으며 인생 즐길 생각은 아직 없다. 나도 방임가정에서 자라서 그 폐해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런 건 아이가 사춘기나 돼서 엄마보다 친구를 더 찾을 때나 생각해 볼까(그때도 완전한 자유는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아이가 더 어릴 땐 일을 그만두고 아이 옆에만 있어야 좋은 엄마가 될 것 같은 생각도 있었지만 아이가 자라면서 그건 그냥 편견이었을뿐이란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일단은 타율적으로 일을 놓게 되는 상황이 아닌 이상은 일을 계속하기로 마음먹었다.


4.

그래서, 이번 생에는 둘째를 낳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둘째 생각을 진지하게 해 본 적은 없지만, 아이가 다섯 살때까지만 해도 이러다가 나중에 마음이 바뀔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그냥 아직은 모르겠다' 정도로 주변에 공표하곤 했는데, 이제는 가임기도 끝나가고(?) 이제와서 낳아봐야 터울도 너무 많이 져서 가능성이 많이 낮은 것 같다. 다행히도 남편이 이러한 생각에 동의하고 있어서 참 다행이다.

저출산 시대라지만 아예 딩크족이 아니고서야 외동은 대부분 '낳고는 싶지만, 현실적인 여건상 어쩔 수 없이...'의 스탠스인 것 같다. 나 같은 경우는 현실에선 아직 못 봤다. 웬만한 결정은 다 아이를 중심으로 놓고 결정하는 편이지만 둘째 문제만큼은 양보하기 어렵다. 내가 둘째를 낳고싶어서도 아니고, 막연하게 '나중에 후회할지 몰라'하는 생각에 남들의 분위기에 휩싸여 결정하고 싶지 않다. 이제 더 이상은.


다행히도 이제 엄마는 포기를 하신 듯하다. 우리 부부를 만날때마다 둘째 얘기를 하시던 엄마가 작년 말에는 드디어 "둘째를 낳았으면 좋았겠지만 이제 너도 나이가 있고 힘들 것 같으니, 그리고 일도 해야 하니 더 이상은 얘기하지 않겠다"로 입장을 선회하셨다. 여전히 아쉬움이 묻어나는 말씀이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우리 엄마는 아들을 낳기 위해 한약까지 먹고 8년만에 어렵게 둘째를 가지셨다. 그리고 그 아들은 현재 서른이 넘었지만 어떤 일도 하지 못하고 가난하고 늙은 부모님에 기대어 근근히 살아가고 있다. 늦둥이 아들만 생각하면 여전히 가슴이 콱 막힌다는 엄마는 '그래도 애는 둘은 있어야 하고, 아들도 딸도 키워봐야 한다'는 지론을 수정할 생각이 없다.

어떤 사람들에게, 행불행의 문제는 자신의 체험이 아닌 '응당 그래야 하니까'라는 당위로 결정되는 듯하다.

나에게 출산을 종용했던 수많은 사람들도 상당 부분은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아이는 행복이니까, 육아는 힘들지만 행복해야 하니까. 육아로 인해 내 삶은 모조리 포기할 수밖에 없었지만 나는 지금 행복하다고 믿어야만 하니까. 너도 낳아서 행복해져야 해. 행복하다고 생각해야 해. 둘째도 당연히 필수고.


5.

나이 사십이 되면 이제 더 이상 옆에서 '충고'해주는 사람이 없기에 사람이 추해지기 쉽다고 한다.

나는 지금 추해지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확실히 30대 중반쯤부터는 나에게 지적질하는 사람이 줄어들었다. 나에게 이렇게 저렇게 살아야 한다고 원치 않은 가르침을 (빙자한 폭언을) 주는 사람도 안 보였다. 그래서 너무 편안해졌다. 내 마음대로 살아도 선을 넘지 않는 한, 누구도 관여하지 않았다. 내게 관심을 주는 사람도 없다.


그러나 남 보기에 좀 추하면 어떨까. 혹시나 추해 보일까봐 전전긍긍하지 않는다는 점도 나이 들어서 좋은 점 중 하나인 것 같다. 예의 없이 남의 바운더리를 넘고 피해를 줘도 괜찮다는 소리가 아니다. 적어도 내 기준엔 남의 인생에 '충고'랍시고 자신의 개똥철학을 강요하는 인간들이 몇 배는 더 추하게 보인다. 왜 나이를 먹어도 이런 인간들을 주변에 둬야 한다고들 하는지 아직까진 잘 모르겠다. 인생을 아직 덜 살아봐서 그런가? 확실한 건 내가 10대, 20대 때 내게 이래라 저래라 하던 사람들이 딱히 현재 나보다 더 잘 살지는 않는 것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언니의 조언'같은 걸 딱히 찾아보지 않게 됐다. 서른 넘으면 여자로선 끝이라고 협박하던 그 언니들은 지금 어디서 뭐 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서른 넘으니까 숨이 확 트이던데.


6.

사실은 작년말까지 모 포털에 유료 연재를 하고 있다가 중단하게 됐다. 유료 연재라는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걸 깨달은 소중한 경험이었다. 시험삼아 해 본 건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구독해 주셔서 놀라기도 했다.

그만둬야지 하면서도 계속 구독자가 늘어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죄송함을 무릅쓰고 작년 마지막 주를 끝으로 연재를 중단했다.

그때 마지막으로 올린 글이 바로 이것이었다.

https://contents.premium.naver.com/workingmom/forworkingmom/contents/251223163204733sv

오랫동안 나는 불안을 기반으로 모든 것을 선택하고 살아왔다.

그래서 맘에 차지 않더라도, 껄쩍지근한 게 있더라도, 나답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이 정도면 괜찮겠지, 남들도 다 하는데 나만 안 하면 안되겠지, 어디 가서 욕 먹지는 말아야지' 하고 애써 안주하려 했다.


새해에 내가 나에게 말하고 싶은 건 이제 그러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만하면 괜찮겠지 금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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