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성비 선택 금지

by 뚜벅초


1.

20대의 나는 월급 100만원 대 초반을 받으면서 그 중 절반 가량을 월세로 쓰고 있었다. 첫 직장은 서울 시내에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야근과 주말출근이 너무 많아 일산 집에서 출퇴근이 어려울 정도였다. 그렇다고 퇴사해서 취업준비를 하자니 당장 내가 먹고 살 생활비조차 나올 구멍이 없었다. 결국 나는 회사 도보 5분 거리에 고시원 방을 얻어서 통근을 했다. 월셋집을 얻기에는 보증금 일이천만원도 융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부모님 사업은 어려워졌고 부모님도 글자 그대로 단돈 몇백만원도 수중에 없는 상황이었다. 미디어에서는 흔히 가난의 상징으로 월세 원룸이 나오지만 진짜로 목돈이 '아예' 없는 사회초년생인 내게 유일한 독립 선택지는 보증금이 없는 고시원 뿐이었다.


엘리베이터 없는 5층에 위치한 그 고시원을 매일 오르내리다가 문득 어느날 다리가 퉁퉁 부어서 걸을 수 없게 됐다. 지병인 무릎 인대에 염증이 생긴 것이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결국 엄마한테 SOS를 쳤다. 엄마 등에 업혀서 내려왔고 어쩔 수 없이 본가로 돌아갔다. 다행히 처우는 비슷하나 통근거리가 보다 짧은 다른 회사로 이직이 되었다.


본가 생활을 몇 년 하다 20대 후반이 됐다. 은둔생활을 하던 동생이 갑자기 내게 주먹을 휘둘렀고, 생명의 위협을 느낀 나는 바로 그날부로 집에서 나와 마을버스로 몇 정거장 거리에 있는 한적한 동네에 있는 원룸을 하나 얻었다. 이번에는 지난번과 같은 일이 없도록 1층에 방을 얻었다. 그곳은 내가 구할 수 있는 방 중 가장 보증금이 싼 곳이었다. 집주인에게 사정사정하여 월세를 2만원 올리고 보증금을 300만원으로 맞췄다. 당시 나는 월급 130만원을 받으며 새로운 회사에 취업한 지 석 달밖에 안 됐기 때문에 이번에도 단돈 300만원이 없었다. 이번에는 엄마가 호주머니를 탈탈 털어 300만원을 빌려주셨다.


월급 130만원에 월세와 공과금 약 50만원을 내면 100만원도 되지 않는 돈으로 한 달을 버텨야 한다. 그렇기에 나의 모든 '선택'은 철저히 가성비에 맞춰졌다. 아니, 가성비도 아니고 사실은 '낮은가격순'이다. 3만원짜리 밥솥과 4만5천원짜리 전자렌지, 2만원짜리 새빨간 조립형 수납장을 사서 나만의 공간을 꾸렸다. 그릇은 전부 천 원짜리 다이소 제품이었다. 미적 취향이라고는 1도 깃들 새 없는 저렴하기 짝이 없는 이 공간에서 나는 생전 처음으로 완전한 자유와 평온함을 느꼈다.


서민 가정에서 나고 자라, 갓 독립을 한 30대 초반까지 극빈층(?)에 가까운 상황이 된 것이다. 월급이 들어오면 바로바로 월세로 이체하고 각종 공과금을 내고 실비보험과 핸드폰 요금 등 필수 비용을 갚기에 급급했다. 수습 생활이 지나 200만원대 초반으로 월급이 오르자 그나마 숨통이 트였지만 나이 서른에 잔고에 단돈 10만원도 없다는 생각에 월급 절반 이상을 뚝 떼어 적금통장부터 넣기 시작했다. 그래서 월급이 올라도 체감 생활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심리적 여유는 좀 나아졌지만)


2.

대학생 시절 어떤 동기들은 백화점에서 충동적으로 10만원 넘는 치마를 사기도 했다는 얘기를 듣고(물론 말한 자신도 너무 과소비를 했다며 자책하는 뉘앙스기는 했지만) 속으로 적잖이 충격을 받기도 했다. 다 똑같이 '가난한 대학생'인 줄 알았는데 그들의 가난과 나의 가난은 질적으로 달랐던 것이다. 누군가는 향수를 사 모으기도 하고 누군가는 부모님이 주신 돈으로 유럽 여행을 가기도 했다. 모든 쇼핑을 무조건 '낮은가격순'으로 정렬해서 2만 원 넘는 무언가를 사 본 적이 손에 꼽혔던 나는 그때 처음으로 가난을 절실하게 체감했다. 누구나 다 마트에서 제일 싼 PB상품만 사먹는 건 아니구나. 누군가는 좋아하는 소스 브랜드가 있고 누군가는 좋아하는 치즈 브랜드가 따로 있기도 하다는 걸 성인이 된 지도 한참 지나서야 알았다. 다 똑같은 교복을 입고 비슷비슷한 학군에 모여 지낼 때는 실감나지 않던 종류의 충격이었다.


사회인이 되어도 한동안은 비빌 언덕이 있는 친구들과 그런 게 전혀 없는 나의 처지는 똑같은 월급을 받아도 천지차이였다. 그나마 월급이라는 것을 안정적으로 벌게 된 이후로는 해외여행도 종종 가게 됐지만, 정말로 가고 싶었던 나라로의 여행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래도 어디론가 정말로 떠나고 싶을 땐 따지고 따져서 가성비 여행을 갔다. 만만한 일본, 싼 동남아, 숙소는 제일 싼 에어비앤비, 항공권은 저가항공의 새벽 2시 출발해 4시에 도착하는 땡처리 항공권으로. 그런 시간대로 여행을 가면 너무 졸려서 하루는 그냥 통으로 날렸다. 그래도 여행을 가는 것 자체가 좋았(다고 생각했)다.


3.

생각해 보면 가성비로 이리 따지고 저리 재서 한 선택지는 대부분 만족스럽지 못했다. 가성비로 최대한 아껴서 다녀온 여행은 지금 생각해도 내가 언제 어디를 다녀왔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가격 때문에, 그나마 만만하다는 이유로 일본의 특정 지역만 5번을 다녀왔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돈을 다 모아서 정말 가고 싶었던 곳에 한 번 다녀오는 게 훨씬 나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누군가는 소소한 소비를 여러 번 하는 데 만족감을 크게 느낀다지만 나는 그런 것보다는 크게 만족할만한 걸 한 번 경험하는 게 나은 것 같다.

옷만 해도 '낮은가격순'으로 이만하면 나쁘지 않겠지 하고 고른 건 이상하게 손이 잘 안 간다. 그냥 안 샀으면 0원인데 아무리 저렴하더라도 그런 건 결과적으로 쓸모없는 소비가 된다. 차라리 좀 무리하더라도 처음부터 눈에 들어왔던 걸 구입하면 마르고 닳도록 입어서 결국 그 가격 값을 하게 된다.


낮은가격순으로 최상단에 위치한 것만 사던 시절에도 이걸 모르진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그때는 정말로 아예 선택지가 없었으니까, 잔고가 허락한 것만 살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전혀 소비를 하지 않고 참고만 살기에는 진짜로 미쳐버릴 노릇이었으니 가성비 소비라도 잔잔바리 하면서 버티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딱 돈 들인 만큼의 약간의 만족만 얻으면서 '이만하면 됐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살아왔던 것 같다.



4.

다행히도, 이제는 그런 소비만 해야 하는 극도의 가난한 상태는 벗어났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나를 위해 돈을 쓸 때마다 얼마간의 죄책감을 느낀다. 습관적인 것이다.


직장 연차가 쌓이다보니 대단한 고액연봉은 못 벌어도 그냥저냥 일상적인 선택을 하는 데 단지 돈 때문에 크게 고통받으면서 살 정도는 아니게 됐다. 이제는 제법 좋아하는 소스 브랜드나 아이스크림 브랜드 같은 것을 따져서 먹을 수도 있게 됐고(매번 그런 건 아니지만), 가끔씩 나를 위한 선물을 하고 싶을 때는 마트 PB상품 1+1 말고 제법 값나가는 브랜드의 바디워시를 사기도 한다.


티끌모아 태산이라고 그런 소소한 소비도 하지 말고 미래를 위해 저축하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내 경험상 티끌은 아무리 모아도 좀 큰 티끌일 뿐이고 그로 인해 끊임없이 누적되는 욕구의 미충족은 나중에 엉뚱한 곳에서 터지기도 한다. 자산을 모으고 싶다면 소득을 늘리든지 투자를 하는 방식을 찾는 게 더 효율적이란 생각이다(그게 쉬운 게 아니라서 보통은 가장 손쉬운 선택인 절약을 하는 것 같지만).


이제는 가성비 선택은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낮은가격순의 내 취향도 아닌 옷을 단지 할인폭이 크다는 이유로 사지 않고, 먹고 싶지 않은 음식을 단지 아깝다는 이유로 억지로 입에 욱여넣어 건강을 해치지 않고, 싸고 질나쁜 것들을 사느니 그 돈을 모아서 정말 사고 싶은 것을 사고, 그다지 가고싶지 않지만 가깝고 만만하다는 이유로 여행지를 고르기보다 정말 가고 싶은 곳을 가려고 해야겠다. 더 최악인 건 가격도 아니고 '사람들이 다들 좋다고 하니까', '이 정도면 그럭저럭 무난한 선택으로 보이니까' 선택하는 거다. 이런 선택을 하느니 그냥 선택을 하지 않는 게 최선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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