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마치며
결혼과 출산이라는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를 연달아 겪고 나는 오래동안 접속하지 않았던 브런치에 돌아와 몇 편의 글을 남겼다. 그다지 행복하지 않은 성장배경을 가진 다른 많은 이들처럼 나 역시 지독히도 위축돼 있었고, 평범한 삶은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여겼으며, 심지어 내가 누군가와 결혼하면 그 배우자의 삶 역시 수렁으로 빠뜨리게 될 거라는 두려움도 갖고 있었다. 먹고살기 바빠 제대로 진단조차 받지 못했지만 자주 나타나는 우울 증세와 비합리적 사고, 범불안장애, 그리고 노력으로 많이 나아졌지만 대인공포까지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그 무렵 나는 가정폭력을 피해 갑작스럽게 독립을 했고, 원가정과 거리를 두면서 조금씩 정신건강을 회복했던 것 같다. 습관적으로 들던 자학적인 사고가 조금씩 줄어들고, 정서적으로도 안정이 됐다. 그 덕분이었을지, 오랫동안 준비하던 취업에 성공했고 남편을 만나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연애도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결혼에는 조심스러웠는데,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아무래도 '보고 자란 걸 무시할 수 없다', '부모는 욕하면서도 자연스레 닮게 된다'는 말들 때문이었다. 결혼상대를 고를 때 가정환경을 제일 먼저 본다는 인터넷 글들, 가족이 결혼 상대를 데려 왔는데 이혼가정 출신이라 반대하는게 당연하다는 말들이 계속 눈에 밟혔다. 내가 어떤 노력을 해봤자 가정환경은 '천형'처럼 나를 옭아매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떤 사람들에게 가정환경은 '전부'인 것 같았다.
하지만 내 가정상황을 모두 알고도 그걸 비난하거나 거리두기에 앞서 '같이 헤쳐 나가자'고 말해주는 남편의 강력한 권유로 결혼을 결심하게 됐다. '결혼하면 완전 달라질거야'라는 주변의 협박(?)과는 달리 생각보다 행복이 훨씬 더 컸던 신혼생활을 뒤로 하고 출산을 준비하면서 나는 더 큰 불안에 시달렸다. 성인끼리의 관계인 결혼생활과는 달리, 무방비 상태의 아기를 키워내야 하는 육아 과정에서 혹여나 내 부모와 같은 행동을 반복하게 되지 않을까. 심리상담도 받고 육아서도 읽으면서 두려움을 조금씩 극복하고 실질적인 방법도 공부했다. 무엇보다, 가사와 육아를 완벽하게 분담하는 배우자가 있어서 첫 육아의 험난함도 힘을 합쳐 극복해낼 수 있었다.
육아를 한 지 반 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일단 현재로서는 그냥 보통의 엄마 역할은 하고 있는 것 같다. 혼자서 하루종일 아기를 볼 때는, 너무 지쳐서 무표정하게 아기와 놀아줄 때도 있고 때로는 혼자 짜증을 낼 때도 있지만 그럭저럭 큰 소리 내지 않고 아기를 예뻐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우리 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가 보는 앞에서 크게 싸우거나 인신공격을 하거나 아이에게 화풀이를 한 적도 아직까지는 없었다. 50일 이전의 육아가 죽을 만큼 힘들었고 그 이후부터는 조금씩 편해지는 걸로 봐서(더불어 나의 표정도 점점 밝아지는 것으로 봐서) 아직 예단하긴 좀 이르지만 앞으로는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도 생긴다. 남편하고 나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 결혼 전과 다름없이 여전히 서로를 아끼고 존중하고 사랑하며 힘든 일을 분담하고 격려한다.
이것이 일부 사람들이 그렇게도 꺼려하는, 절대로 결혼 상대로는 만나고 싶지 않다고들 하는, '가정 환경 불우한' 사람의 결혼 생활이다.
출산 전 심리상담을 받던 중, 내 직업이 글쓰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된 상담 선생님이 과거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방법 중 하나로 내 경험을 글로 써서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을 추천했을 때만 해도 나는 좀 회의적이었다. 그동안 가정환경을 가까운 친구에게라도 조심스레 털어놓으면 대개는 공감하지 못하거나, 그래도 가족인데 네가 용서하라든지, 심지어는 '우리 가족은 안 그런데 너는 참 안됐다' 라는 반응까지 대부분 상처로 돌아왔다. 좋지 않은 가정환경을 가진 것을 '죄'로 여기는 사람까지 있다는 걸 알면서부터 나는 가급적이면 내 가정 환경을 이야기하지 않고 지내왔다.
그런데,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가정환경은 나쁘지만 사람은 괜찮은 배우자를 맞이하려는데 가족의 반대가 걸린다는 고민글을 자주 보게 됐다. 그리고 적지 않은 댓글들이 '나 역시 가정환경이 나빠서 상대에게 민폐 끼치기 싫어 결혼이나 출산은 꿈도 안 꾼다'고 말하고 있었다. 결혼과 비혼을 선택하는 것은 철저히 개인의 자유여야 한다. 하지만, 그것을 선택하는 이유가 단지 사회적 편견 때문이라면 그건 너무 슬픈 상황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실제로 나는 그들의 기준에 따르면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낳아서는 절대 안 되는 불우한 가정환경과 성장환경을 가진 사람이다. 하지만, 내 주관적인 생각과 주변의 반응을 통해 볼 때 대체로 나는 대한민국 평균 이상의 결혼생활 만족도를 누리고 있는 편이다(지금은 결혼한 지 얼마 안 됐으니 그렇고 몇 년 더 살면 보나마나 불행해질 것이라고 악담하시는 분들의 '우려'는 받지 않겠다. 자랑은 아니지만 우리 부모님은 신혼 때부터 매일 싸우고 경찰 출동하는 게 일이었다고, 너네는 어떻게 그렇게 잘 사냐고 신기해하신다).
어쨌거나 그런 이유로 부족하지만 내 경험을 브런치에 몇 편의 글로 풀어 봤다. 나와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이들, 가정환경 때문에 인생을 망쳐버린 것 같은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길 바라면서. 또 다른 이유로는 나중에 육아를 하면서 '초심'이 흐트러질 때마다 이곳에 남긴 글들을 보면서 결심을 다잡기 위함이다.
행복하지 않은 가정환경에서 자란 이들에게, 이미 알고 있겠지만 그것은 정말로 당신의 잘못이 아니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그것은 천벌이나 운명같은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고 노력을 하면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는, 그저 '일시적인 상태'였을 뿐이라고도 얘기해주고 싶다. 당신은 당신의 부모와 다르며, 어쩌면 가진 것이 '화목한 가정환경'밖에 없어서 성인이 되고도 부모 품 밖을 벗어나지도 못하는 일부 사람들보다도 훨씬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 얘기해주고 싶다. 나아가서 결혼을 하고 안 하고, 부모가 되고 안 되고는 철저히 당신의 판단과 준비 상태에 맡겨야 하며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재단되도록 내버려두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