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고 얼마 되지 않아 읽은 임경선 작가님의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에는 나이듦과 삶에 대한 작가님의 철학이 잘 묻어난다. 작가님의 말에 90% 정도 공감하면서 내내 고개를 끄덕이며 책장을 빠르게 넘겼다. "나이 들어서 좋은 건 하나도 없다"고 하셨던 것만 빼고.
물론 개인마다 성향이 다르고 심지어 작가님과 나의 연령대 차이도 있지만, 나의 경우 아직까지는 젊음보다는 나이들어가는 현재의 삶이 압도적으로 더 마음에 든다. 젊은 여자로만 쉽게 소비되고, 와중에 만만하게까지 보여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데다, 경제적 사회적으로도 불안정했던 10대와 20대는 으으, 정말이지 생각하기도 싫다. 물론 나의 청춘이 평균 대비 많이 힘든 편이기도 했지만.
나이들어 가면서 마음에 드는 것 중 하나는 내가 어느정도는 내 마음대로 행동해도 괜찮다는 믿음이 생긴 점이다. 물론 나이들어 뻔뻔해지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이 감히 나한테 쓴소리를 못해서(전에도 얘기했지만 추해지고 있는 중이라?)일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인생 초보자로서 뭣도 모를 때 이리저리 부딪히고 깎여가며 다듬어져가던 어린 시기를 넘어 '여기까지는 행동해도 된다'는 암묵적인 룰이 머릿속에 저장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나는 선천적으로 사회성이 많이 낮았으니. 아이 어릴 때 발달치료를 잠시 받으러 다니면서 느낀 건데, 나는 요즘 기준으로 치면 경미한 자폐스펙트럼이 아니었나 싶다. 내가 우리 아이만할 때 기준으로 꽤나 많은 항목이 해당되더라. 지능이 정상범주면 자라면서 티가 안 나게 성장하기도 한다는데 그런 케이스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사실 이 부분은 앞서 말한 임경선 작가님 책에도 등장한다.
어렸을 때보다는 말하고 행동하는 것에 대해서 조금 더 자연스럽고 거리낌이 없다. 뻔뻔하게 내키는 대로 다 해도 누가 뭐라 그럴 거야? 하는 게 아니고, 나의 한계와 가능성을 어느 정도 감지하게 되니까 그 안에서 편하게 나 자신을 방목해도 된다는 안도감이 있는 것 같다.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자신감에서 오는 자유로움이 있다. 아이러니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자신을 제어할 수 있어서 인간은 자유로워진다.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 임경선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내가 그동안 느꼈던 묘한 자유와 해방감의 정체가 뚜렷해졌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 잘 알게 되고, 나의 한계와 가능성을 받아들이면서 따라오는 자유감.
보다 실질적인 장점으로 본다면, 나이가 들수록 만나기 싫은 사람과 안 볼 수 있는 자유가 늘어나고, 여의치 않다면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기가 쉬워진다.
사람을 좋아하는 경우에는 이를 '나이 들수록 인간관계가 협소해진다'고 평가하기도 하는 듯하다. 실제로 우리 남편(나보다는 친구가 많음)의 경우, 나이 드니 비슷비슷한 사람들만 보게 되는데 최근 시작한 취미활동으로 이웃들과 교류도 하게 되고 친구들도 자주 만나게 되어서 좋다고 한다. 나는 그 반대로, 내 인생에 꼭 필요 없는 인간관계와의 과도한 교류가 점차 줄어들고 정말 가까운 사람들 위주로 가지치기된 지금이 참 좋다.
현재 나는 가족이나 직장 동료를 제외하곤 사적으로, 주기적으로 연락하고 만나는 사람이 한 손에 꼽힌다. 그럼에도 지금의 인간관계가 딱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된다. 그마저도 더 줄어들면 어쩔 수 없다고 본다. 그 외에는 그냥 이렇게, 온라인 상의 텍스트로 느슨하게 연결된 정도가 딱 적당하다.
10대 때는 말할 것도 없이 반 친구라고 강제로 묶인, 성향도 다르고 심지어 일부는 나를 괴롭히기도 하는 인간들과 1년 이상을 꼬박 함께해야 한다. 우리 아이처럼 친구 좋아하는 인싸 성향이면 몰라도 나 같은 사람에게는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20대 때는 그보단 낫지만 역시나 '한참 빛나는 청춘에 집에만 있어선 안 된다'는 무언의 압박감으로,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굳이 약속을 잡아서 친구들을 만나고 동아리 활동과 대외활동을 했다. 20대 청년기의 불금과 주말을 집구석에서 보내면 안된다는 압박감으로, 전혀 나와 맞지 않고 불편한 모임과 친구 관계도 끊어내지 못하고 만남을 이어갔다. 게다가, 연애에는 크게 관심도 없고 인기가 많은 편도 아니었는데 연애라는 걸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당시엔 더 심한 분위기였으니) 꾸역꾸역 소개팅에 나가서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꾸겨 입고 있는 고통을 감내했다. 물론 그 과정으로 나의 사회성은 크게 개선됐고 적지 않은 인생공부를 했기에 후회는 없지만, 다시 하라면 정말 하고 싶지 않은 경험들이다.
30대까지만 해도 사회생활이라는 명분하에 나에게 일을 미루는 선배들도, 심지어는 괴롭히는 인간들에게도 예의바르고 살갑게 대해야 했다. 업계에 아는 사람이 많을수록 좋다는 특성상 못 마시는 술을 마시며 꾸역꾸역 자리에 남았다. 겉으로는 하하호호하지만 누구 하나 잘 되면 눈에 안 보이는 신경전으로 세상 피곤한 직장 동기들과의 단톡방도 고통이었다. 결혼을 하고 출산과 육아기를 거치며 이에 대한 압박에선 조금 해방됐지만.
인생의 전반기에는 '현재보다 더 나은 나'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마음이 쉴 새가 없었다. 특히 싫어하는 사람과도 어울리고, 싫어하는 일도 해야만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지속적으로 나를 몰아붙였다. 이제는 청춘이 지나갔다지만, 그만큼 자유로워진 것은 더 이상 발전에 대한 기대감때문에 나를 몰아넣지 않아도 되어서인 듯하다. 오히려 이대로여도 좋다는 확신 덕분에, 내 마음이 내키는 사람들과만 관계를 맺고 내 마음이 거부하는 일은 굳이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성장해야만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명제가 틀렸음을, 지난날의 여러 경험에서 뼈저리게 배웠으니까.
30대까지 밖으로 향하던 시선은 40대 이후부터 점차 내면으로 향한다고 한다. 나 역시 비슷한 과정을 거치고 있다. 30대 후반부터 연습하기 시작한 명상으로 내면의 소리를 듣는 습관을 들이기 시작했다. 수시로 내 마음을 들여다보니 내가 무엇을 할 때 좋고 싫은지, 누구와 함께 있을때 불편한지, 편안한지 더 예민하게 구분할 수 있다. 그리고 싫어하는 일을 억지로 하지 않아도, 싫은 사람들과 억지로 어울리지 않아도 의외로 별 일 일어나지 않음을 알게 됐다.
일상의 모든 순간이 다 솜사탕 같은 달콤함으로만 이뤄질 순 없다. 때로 가끔은 언짢은 사람과도 웃으며 대화해야 하고 귀찮은 일도 해야 한다. 그러나 적어도 이제는 그런 것들이 주를 이루진 않도록 스스로를 조절할 수 있다. 만날 때마다 상처만 주는 사람과는 더 이상 연락하지 않고 지나치게 나를 소모하는 일은 하지 않는 용기를 낼 수 있다. 그리고 남은 시간에는 나와의 대화를 한다. 눈을 감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마음속에서 둥둥 떠다니는 생각들을 조용히 지켜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