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스포츠(하는 것과 보는 것 모두), 연예인, 술, 스릴 있는 놀이기구,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파티, 익스트림 스포츠, 적당하게 선 안넘는 디스를 주고받으면서 친해지기, 불특정 이성과의 만남, 아주 매운 음식(불닭볶음면 류)....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것들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좋아하지 않는 것들이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즐기면서 친해지는 분위기 속에서 나는 사람들과 친해지는 데 솔직히 많은 제약을 받았다.
초등학교 때 소풍으로 간 놀이공원에서도 혼자 바이킹을 잘 못 타서 얼어 있었고, 대학 입학 이후에는 (그때만 해도) 고주망태가 될 정도로 부어라 마셔라 하며 취하는 게 당연한 분위기였어서 무리하게 술을 마시다가 분수토를 하고 민폐를 끼쳤다. 이는 사회 초년생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나처럼 술을 한두잔만 마셔도 바로 발진이 올라오고 분수토를 하는 건 일종의 알러지 반응이라 술을 절대 입에도 대선 안 되는 거였다. 그래서 나는 아직까지 '취한'적이 한 번도 없다. 사실 취하기 전에 토해서 못 취한 거지만.
지독한 운동치라서 '운동을 통해 친해지는'것도 불가능하다. 각종 구기종목은 물론이고 게임조차 하지 않는다. 승부가 있는 무언가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운전도 못하고 자전거도 못 탄다. 내가 뚜벅초인 이유는 남편이 지어준 별명인데 어떤 탈것도 운전하지 못해서 오로지 걸어다니는 것밖에 이동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유연성은 그나마 보통사람 수준은 돼서 그나마 따라할 수 있는 게 요가, 필라테스 정도인데 이건 애초에 팀 스포츠가 아니고 혼자 하는 거다. (물론 같이 요가원 다니다가 친해지는 경우도 있다지만 나는 그런 친목활동도 잘 안하는 편이라 혼자 조용히 다녔음)
심지어 맵찔이라서 매운 것도 통 못먹는다. 초중딩들도 먹는다는 불닭볶음면도 입에 댄 적조차 없다. 왜냐면 그보다 훨씬 덜 매워서 한국인의 표준라면이라고 불리는 신라면도 내 입맛에는 너무 맵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나한테 맵부심을 부리는 지인도 있었다. "너는 이런 거 못 먹지?" 하면서. 정작 그 지인도 음료와 물을 정신없이 들이키면서 식은땀을 막 흘리며 한 말이라, 나이 서른에 맵부심이라니 처음에는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서 당황스러웠지만.
어릴 때, 젊을 때는 이런 내가 참 싫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릴수록 사람들은 자극적이고 동적인 것을 통해 친해지기 때문이다. 나의 이런 특성 때문에 무리에서 항상 밀려났고 소외되는 롤을 맡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억지로 무리하며 술을 먹으려고 노력했고 매운 음식을 꾸역꾸역 입에 넣기도 했다. 친구 따라서 무서운 놀이기구에 올라서 눈을 질끈 감다가 호흡곤란이 오기도 했다. 어릴 때는 내숭떤다고 욕을 먹었고 좀 커서는 니가 그래서 매력이 없는 거라고 욕을 먹었다. 거기다가 강하게 대꾸도 못하는 나는 정말이지 기가 약한 아이였다.
이제 나이를 먹으니 맵부심 부리던 주변 사람들은 건강 생각하면서 저자극 음식을 찾기 시작하고(다행히 나는 따로 건강관리를 각잡고 해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술을 못 하고 매운 것도 못 먹어서인지 또래보다 건강검진 결과가 깨끗한 편이다) 과격한 운동보다는 정적인 게 좋다고들 한다. 나는? 이제나 저제나 똑같다. 다만 세상 사람들이 나를 더 이상 특이하다거나, 내숭 떤다거나, 재미 없고 매력 없다고 욕하지 않는(더 사실적으로 말하면 더 이상 내게 이렇다할 관심이 없는) 상태가 되니 편할 뿐이다.
나와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남편은 종교적 이유와 이런저런 이유로 술을 입에 한방울도 대지 않는다. 그래도 회식 자리에서 분위기 맞출 겸 맥주 한잔정도는 마시는 나보다도 어찌보면 더하다. 남편은 심지어 술을 안 먹는다고 조인트까지 까였다는데 꿋꿋이 안 마셨다고 한다. 새삼 그 심지가 부럽다. 이렇게 노잼인간끼리 모여서 남들이 보기엔 노잼스럽지만 할 수 있는 걸 하며 재미있게 살고 있다. 아, 다만 연애 시절에 놀이동산에 가면 나때문에 회전목마나 타는 건 좀 미안할 때도 있었다.
무슨 재미로 사냐고 물으신다면 책 보고 글 쓰고 날씨 좋을 땐 밖에서 걷기도 하고 컨디션이 받쳐주면 살짝 뛰기도 하고 카페인 안 든 차도 마시고 디저트도 먹고 일기장도 꾸민다. 지나친 폭력과 선정적임과 잔인함이 주가 되지 않는 영화를 보기도 한다. 젊을 때는 '나도 이런 것도 할 줄 안다'고 증명하고 싶었지만 이제는 그냥 내가 재미있는 걸 하면서 지낸다.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건 남의 눈에 그럴듯해 보이는 게 아니라 내가 재밌게 사는 거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맵부심 부리던 지인과는 이런저런 이유로 연락하지 않고 지낸 지가 10년이 다 되어 간다. '재미있고 매력적으로' 살던 사람들과도 결국은 다 멀어졌다. 구태여 누가 더 인생을 '잘' 살고 있는지는 평가하고 싶지 않다. 내가 더 잘 사는 것도, 그들이 더 잘 사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남들이 자신의 잣대로 내 인생을 멋대로 평가하고 폄하하도록 그냥 두지 않을 뿐이다. 벌떡 일어나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러 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