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가 황금 티켓 증후군이라는 신조어를 발견했다.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싶어서 검색하니,
말하자면 명문대 입학, 대기업 입사, 서울 국평 자가같은 애초부터 소수의 사람만 성취할 수 있는 조건을 모든 사람이 달성하기 위해 무한 경쟁을 펼치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대다수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판임에도
이를 이루지 못했다는 이유로 인생 낙오자 취급을 하는 현상이다.
그래서 일정 시기 안에 명문대 입학도 대기업 입사도 하지 못한 사람들은
영영 자신의 삶이 망해버렸다고 생각하고
스스로의 모든 가능성을 차단하고 세상과의 끈을 놓은 채
'쉬었음 청년'내지는 '히키코모리'의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혹자는 청년 실업 때문에,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 때문에,
수도권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지방의 인프라 때문에 이런 현상이 일어났다고 지적한다.
모두 맞는 말이지만 난 애초에 이 현상이 비단
21세기에 '갑툭튀'한 현대병인지를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한국은 수백년간 과거에 급제해 입신양명하는 것을 최고의 효로 취급했다.
이 때문에 수많은 양반집 자제(혹은 일부 평민)들은 생산적인 노동에 종사하는 대신
수십년간 기약없는 과거시험을 위해 사실상 수험생 신분으로 평생을 보냈다('선비'는 요즘으로 치면 장수생 같은 느낌이다)
이를 전혀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고,
당연히 그가 먹고살기 위한 생활비 벌기, 세끼 밥 차리기, 의식주 해결하기, 자녀 양육 등은 그가 부리는 하인이나 아니면 어머니, 아내 등의 몫이었다.
이렇게 해서 권율 장군님처럼 나이 마흔에라도 급제하면 천만 다행인데
대부분은 선비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임종에 들었다 한다.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7385277
(이 글 쓰면서 급히 구글링해봤는데 조선시대의 평균 과거급제 연령은 35세라고 한다.
당시 평균 수명은 50세를 넘지 못했는데,
급제를 하는 것 자체가 운좋은 소수의 사람들뿐이었음을 감안하면... 이하 생략하겠다.)
그럼에도 족보에 이름을 남긴 사람들은
평생을 손에 물 마를 새 없이 생산적으로 살아온 사람들이 아닌
평생 생산적 일이라고는 조금도 하지 않은 선비님 뿐이었다.
세상이 바뀌고 이제 과거시험도 양반도 없어졌다.
하지만 한국인의 DNA에는 아직도 그 옛날 과거시험 보던 적 가치관이 남아있는 듯하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개인으로 거듭난 게 아니라
모두가 양반이 된 것이다.
과거 급제만이 유일한 생의 목적이었던 계층 말이다.
능력과 사회 기여도에 따라 대가를 받는 진짜 자본주의 사회가 아닌
더 많은 사람들이 과거 급제를 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회가 된 것이 아닐까.
필기 시험(공채, 자격시험)을 통과하지 않은 직업은 제대로 된 직업이 아니라고 취급하는 분위기에서
과거 급제를 위한 삶만을 의미 있게 생각하던 옛 시대의 잔재가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일까.
200만원을 받고 중소기업 정직원으로 근무하거나 카페에서 서빙 일을 하는 것보다
'대기업/공무원 취업준비생' 타이틀을 내걸고 '쉬었음 청년'이 되는 것이
대외적으론 차라리 낫다는 인식까지도 있는 현실이다.
대기업, 전문직과 그 외의 직군 간 급여 차이 문제 역시
작금의 사태를 일으킨 원인이 아닌, 결과일 뿐일지도 모른다.
해당 직업이 얼마나 사회에 기여하는지보다
과거시험과도 같은 경쟁률 높은 시험을 통과했어야, 비로소 어느 수준 이상의 급여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묵시적 합의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이는 꼭 기성세대만의 문제도 아니다.
소위 MZ라고 불리는 청년 세대도 이 관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물론 부모님으로부터 '공부를 잘 해야 한다'고 주입받은 영향이 크겠으나
한국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일원인 인상 여기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적을 것으로 생각된다.(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다시 황금 티켓 증후군으로 돌아가서,
사람들은 이 갑작스럽게 등장한 듯한 현대병을 비판하며
옛날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낭만이 있었는데, 단칸방에서 살아도 만족했는데 한탄하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그랬을까.
단칸방에서 막일 하는 삶을 인생의 '종착역'으로 생각하진 않았을 것이다.
지금 이렇게 고생하면 나도 언젠가는 떵떵거리며 살 날이 오겠지,
내가 아니면 우리 자식이라도 서울대학 보내서 목에 힘 주고 살겠지 하며 순간의 고난을 '버텼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눈만 높아진 젊은이들이라고 비난할 게 아니라,
요즘 엄마들이 애들을 공부하라고 들볶아서 이 지경이 난 게 아니라,
황금 티켓 증후군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닐 수 있으니
자꾸만 옛날이 좋았지 하지 말고
이제 더 이상 과거시험 보던 시대의 문법으로는 다가올 시대를 살아갈 수 없음을 직면하고,
가방끈과 자격시험 대신 사회에 대한 기여도로 올바르게 직업을 판단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는 이게 그렇게 말처럼 간단한 일은 아니다.
내가 아무리 직업엔 귀천이 없다고 역설해도,
남들이 추앙하는 직업보다 네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라고 키운답시고 키워도,
자녀가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사회 속에서 또래와 자신을 비교하며 열패감을 가지는 건
최소한 친구들처럼 과거시험 볼 수 있는 여건이라도 만들어주지 그랬냐고 원망하고 한탄하는 건
부모로서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러니까 결국은 자녀 성장 과정에서는 어떤 선택지든 부족함 없이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대한의 인적, 물적 자원을 제공하는 동시에
그 결과에 대해서는 전혀 개의치 않고 오로지 너의 행복만을 바란다는 초연한 자세를 연출해야 한다.
말하자면 수면 밑에서 미친듯이 발을 구르고 있는 우아한 한 마리의 백조처럼 굴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말 자식 키우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황금 티켓 증후군을 검색하다가 보니 이것 때문에 청년들이 자식도 안 낳아서 저출산의 원인이 됐다고 하는데,
그것도 그렇지만
나는 요즘 세상 육아가 너무 힘들고 어려운 과업인 걸 사람들이 알아채버려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는 사람들도 있는데
내 자식이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고,
내 자식이 불행한 게 나한테도 가장 불행이니까
힘들어도 내 몫이지 뭐.
오늘의 두서없는 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