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고 시절 숨이 차게 달리다 결국 대부분의 코스를 터덜터덜 걷고야 말았던, 그러고도 거의 사흘 밤낮은 계단도 못 내려갈 정도로 근육통에 시달렸던 공포의 체력장 '오래달리기'.
어리고 허약했고 달리기를 10명이서 하면 거의 항상 10등을 도맡아 했던 내게 오래달리기 코스는 나에게는 거의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하라는 것처럼 거대하고도 과도한 요구사항이었다. 참고로 말하자면 나는 전교생 500여명이 함께 뛰던 그 오래달리기에서도 뒤에서 두어 번째라는 대단한 기록을 세우곤 했다.
그런데 그 길고도 장대하고 고통스러웠던 오래달리기 코스가 고작 800m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며칠 전 우연히 들었다. 그렇게 나를 힘들고 몸서리치게 했던 오래달리기는 체감상 적어도, 3km는 될 줄 알았다.
그런데 고작 1km도 되지 않는 짧은 거리에 내 근육이 그렇게 비명을 질러댔다니.
문제를 극복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근본적인 방법은, 문제보다 내가 더 큰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걸 어른이 되고 알았다. 어릴적 몇날 며칠을 밤새우게 만들었던 친구들 간의 갈등, 이기적인 A 친구가 B 친구를 따돌리려고 나를 종용하는데 나는 둘 다 나름대로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해서 어쩔 줄을 몰랐던 중학생 시절의 날들, A 친구가 은근히 나도 무시하는 것 같은데 B보다는 그래도 A랑 노는게 더 재밌어서 괴로웠던 날들, 어중간한 시험 성적에 내 인생도 결국 어중간하게 살다가 끝나버릴 것 같았던 시간들. 다른 아이들처럼 옷도 잘 입고 아이돌도 잘 알고 잘 놀면 나도 찐따 티가 좀 덜 날까 싶었던 날들.
나이만큼 덩치도 커지고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마음도 커짐에 따라 그런 고민들은, 그러니까 결코 별 것도 아닌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마냥 큰 벽 같았던 그런 갈등관계를 언제부턴가 내가 한참 위에서 내려보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순간.
나는 어느새 그런 문제들보다 더 커져 있었다.
어린 시절에 상상했던 30대와 40대의 성숙함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내 나름대로 어린 시절에 괴로웠던 문제들쯤은 별 것 아니었다고 치부할 정도로 어떠한 형태의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러닝을 잘 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매일 아침 해가 뜨기 전 러닝머신에서 800m의 몇 배 정도는 가뿐하게 달리고 출근을 하는 사회인이 됐다.
흔히들 체력의 정점이라고들 하는 10대 후반과 20대 초반보다, 정점을 찍고 내려오기 시작한다는 40대와 50대에 비로소 운동을 시작하는 주변인들이 많다. 남편은 여러 번 마라톤을 완주해서 집에 반짝반짝한 메달들이 걸려 있다. 나도 그 정도는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하루를 땀을 흘리며 시작하곤 한다.
800m가 아니라 8km도 우습게 뛰는 중년의 사람들 중 상당수는 어린 시절 체력장도 허덕이던 아이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몸은 비록 노화를 시작했지만 더욱 먼 거리를 부침 없이 달릴 수 있는 것은, 아무리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이대로 영영 쓰러져버릴 것 같은 위기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진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그 위기의 순간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나보다 빨리 뛰는 것 같은 주변 사람을 곁눈질하는 것도, 목적지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수시로 시계를 흘끔거리는 것도 아니고, 그저 시선을 정면으로 고정한 뒤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발을 앞으로 내딛는 것 뿐이라는걸, 그게 모든 힘든 순간을 가장 빨리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걸, 달리기뿐 아니라 인생 또한 그렇다는 걸 알고 있기에 그런 것이다.
나도 그래서 더 이상 시계를 흘끔거리지 않고 달리고 있다. 그리고 어딘가에 자랑할 만한 기록은 결코 아니지만 어제의 나보다 더 먼 거리를 쉼 없이 달리는 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