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 없는 이것저것

by 뚜벅초

1.

이제는 좀 한물 간 논란인 것 같기도 한데 인터넷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가 영포티의 옷차림에 대해서 비난하는 글을 보고 말았다. 한국 나이로는 40대에 들어선 지 석 달째고 만 나이로는 아직 30대 후반인 애매하기 짝이 없는 입장이지만 그래도 영포티 뭐시기를 들으면 유치한 논란이다 싶으면서도 기분이 썩 좋지 않은 건 사실이다. 아무튼 글을 쓴 사람은 특정 세대를 싸잡아 비난하려는 의도는 없다고 거듭 강조했지만, 이제는 중후한 옷차림이 어울릴 40대들이 젊은 척하는 옷을 입고 다니는 게 영 볼썽사납기 짝이 없다며 비난하는 것이 글의 주제였다.


미디어는 소위 Z세대(MZ라고도 하지만, 애초에 MZ라고 하면 그놈의 '영포티'까지 포함이 되어버리므로 좀 더 정확하게 분류해 보겠다)라고 일컬어지는 세대가 각자의 자유를 상호 존중하는 개인주의 문화로 변화하고 있다고 평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성세대가 생각없이 캐묻는 사생활 질문, 결혼과 취업 등에 대한 충고 등을 시대착오적인 타인 침해 행위로 규정하고 금기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본 영포티 담론은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자세와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모습인 것 같다.


나 역시 타인의 사생활에 관심이 없기도 하거니와 남들이 나의 사는 방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을 못 견디는 성격이다. 그렇지만 젊은 세대가 그렇게도 지적하는 기성세대의 옷차림은 과연 사적인 영역이 아닌가? 사실 타인의 옷차림을 두고 나이와 신분에 걸맞지 않는다며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은 세대 문제가 아니라, '라떼'도 혹은 그 이전에도 수없이 이어져 왔던 지극히 한국적인 현상일 뿐이다. 다리가 굵은 주제에 무슨 짧은 치마를 입냐며, 그렇게 안 꾸미니까 연애도 못 하고 있는 거라며, 직장인이 점잖지 않게 머리 색이 왜 저러냐며, 나이가 서른이 넘었는데 어떻게 명품백 하나가 없냐며, 혹은 지하철 타는 주제에 무슨 샤넬백이냐며 끊임없이 서로의 겉모습으로 규정하고 평가내리는 모습들. 그래서 나는 영포티의 옷차림에 신경질을 내는 그들의 모습에서 너무나도 지극히 익숙하고 구태의연한 모습을 보고 말았다.


여담이지만 내 또래로 마찬가지 영포티 경계선에 놓인 남편은 패션에 전혀 관심이 없어서 가진 옷의 90%는 대부분 20대 초반에 산 것이라고 한다. 옷장 안에 있는 아무 옷이나 잡고 언제 샀냐고 하면 대부분 20년 전에 산 것이다. 얼마 안 되는 새옷은 장모님이 생일선물로 사주셨거나 결혼식때 예복으로 맞추고 리폼해서 정장으로 갖고 있거나 혹은 운동복 등 필요에 의해 최저가로 급하게 산 것이다. 사실 20대 옷을 입고 다니는 영포티의 상당수는 이런 케이스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젊어 보이려고 애쓴다기보단 그냥 젊을 때 샀던 옷을 별 생각 없이 계속 입고 있는 경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 나이를 딱히 의식하지 않고 산다.

나 역시 이 정도는 아니지만 딱히 패션에 관심도 없고 조예도 없어서, 요즘 트렌드가 뭔지도 모르고 그냥 그때그때 내 맘에 드는 옷을 입는다. 딱히 나이에 맞는 '중후한'옷을 입어야 된다는 생각도 안 해봤고 그렇다고 젊어 보이려고 애쓴 적도 없기 때문에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했을지는 모르겠다. 나도 중후하게 안 하고 다녀서 뒷담화 당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1초 더 생각해보니 애초에 내가 그딴 걸 의식하고 산 적이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공중의 행복추구권을 크게 침해하지 않는다면 그냥 서로에게 신경 좀 끄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남이사 환갑에 형광핑크색으로 염색을 하고 다니든, 40대 애엄마가 고스로리룩을 입고 다니든, 보기에 좀 거북할수는 있어도 사실 남이 그걸로 인해 영향을 받을 일은 없다. 생각해보니 태생적으로 다양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문화권에서는 서로가 '나와 다르다'는 전제가 당연하기 때문에 남과 다른 모습에 날을 덜 세우는데, 한국인은 대부분 동일한 인종에 비슷한 신체조건을 가졌기 때문에 서로를 무의식중에 '같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과 조금이라도 다른 점이 보이면 이를 못 견뎌하는 거고 심지어 공격성까지 나오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 정말, 왜 그래야 하는가? 타인에 대한 날카롭고 촘촘한 평가의 날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도 향하게 마련이다. '이 나이에는 무엇을 해야 한다'는 억압으로부터 평생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신이 그것을 신경쓰는 한.


행여나 옆자리 영포티가 젊은척하는 것 같아서 거슬리는 분이라면 제발 남의 삶에 신경 좀 끄시고, 기성세대 분들은 젊은이들한테 행여나 미움 받을까봐 벌벌 떠는 것보다 애초에 그게 왜 문제인지?를 질문하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2.

한국에서 7살(만 6세)은 예비초등이다. 그런고로 나 역시 올해로 예비초등 학부모(?)가 되고 말았다. 아기 때 약간의 발달지연으로 눈물콧물을 쏟으며 밤을 새워 최신 유아발달 전공서적을 찾아보고, 센터를 왕복하다가 갑작스럽게 트인 말로 지금은 오히려 또래보다 말을 너무 잘 한다는 소리를 듣는 아이 덕분에, 솔직히 최근 들어 나는 많이 느슨해진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럼에도 예비초등이라는 엄중한 단어는 왠지 사람을 긴장시키곤 한다. 지금이야 나 때처럼 촌지 봉투를 내지 않은 아이들만 따로 불러서 아무 이유 없이 손바닥을 때리거나, 시험문제 틀린 갯수대로 뺨을 맞거나, 급식을 남겼다고 반 학생들이 모두 집에도 가지 못한 채 원산폭격 자세로 기합을 받다가 차례차례 선생의 발길질에 쓰러져 넘어가는 학대야 일어나지 않겠지만(없기를 바란다), 그럼에도 유치원과 초등학교는 뭔가 느낌이 다르다.


다시 심기일전해보려고(?) 예비초등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육아서도 오랜만에 찾아보는 중이다.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서 '너무 긴장할 것 없다'며 '공부하는 습관만 들이면 된다'고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걸 너도 알고 나도 아는 시대다. 우선 공부를 떠나서 자조 습관도 생각보다 필요한 게 많다. 혼자서 시계를 보고 달력을 보고 일정을 챙겨야 한다. 어린이용 젓가락 대신 어른용 긴 쇠젓가락으로 밥을 먹을 수 있어야 하고 초등학교부터는 급식에 마라탕도 나온다니 매운 음식도 조금씩 먹을 줄 알아야 할 것이다.(다행히 우리 때처럼 토할 때까지 억지로 먹이는 분위기는 아닌 듯해서, 정 못먹겠으면 받지 않고 집에 와서 추가로 더 먹으라고 해도 될 듯하지만) 이밖에 화장실 뒷처리 같은 건 다섯 살부터 일찌감치 완성했기 때문에 다행. 아무튼 일단 나를 닮아서 수가 약한 애에게 벽시계 읽기부터 가르치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긴 하다.


여기에 건강하고 행복하기만 바란다지만, 한국 공교육 시스템에 들어간 이상 학업에서 낙오된다는 것은 곧 행복하지 못한 학교 생활을 의미하기도 하니까. 한때는 공교육에 대한 불신 때문에 대안 교육기관을 찾아보기도 했고 아니면 아예 유치원 때처럼 다양한 프로그램이 많다는 사립초도 알아봤지만 자기주장이 강하고 친구가 너무 좋은 우리 집 아이는 절대로 동네 학교를 들어가야 한다는 입장이 강경했다. 아이가 들어가게 될 집앞 초등학교 홈페이지를 보니 1학년 1학기부터 단원평가를 본다는 공지사항이 올라와 있다. 도대체 이게 뭔가 싶어서 검색해보니 한 학기 동안 배운 것을 시험을 보고 다행히 우리 때처럼 학생별로 점수를 매겨서 등수별로 교실 앞에다 떡하니 붙여서 공개처형(?)을 하지 않지만, 시험 성적이 좋지 않아 '낙제(노력요함?)'를 받으면 하교시간 후에 나머지 공부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나도 나머지 공부를 한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2학년 때였나, 수포자답게 아무리 애를 써도 구구단을 틀려서 하교를 못 하고 나머지 공부를 했다. 말이 나머지 공부지 그냥 벌칙성이어서 딱히 선생님이 뭘 가르쳐주시진 않았고 그냥 멍하니 자리에 혼자 앉아있다가 집에 돌아갔던 것 같다.

크게 트라우마가 되는 기억까진 아니었지만 또래들이 집에 돌아갈 때 혼자 남아야 한다는 건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다. 그렇잖아도 완벽주의 성향이 꽤 있는 우리 아이 성격상 또래보다 뒤처지는 경험을 굳이 하게 하기보다는 미리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런데 초등 1학년 수준이 생각보다 높다. 육아서와 유튜브 등에서는 분명 '한글을 더듬더듬 읽을 정도만 되면 충분하다'는데, 일단 수학문제부터가 난이도 높은 문장형이다. 한글은 여섯 살 때 뗐다지만, 과연 우리 아이가 혼자서 이 문장을 다 읽고 올바로 이해해서 시간 내에 바르게 풀 수 있을지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없다. 그래서 다들 학원을 그렇게 보내고도 학습지에, 엄마표 공부까지 하느라 난리들인 것 같다. "요즘 엄마들은 애들을 너무 들볶아, 불쌍한 애들이 뛰어놀지도 못하고"하며 속 편하게 혀 차는 사람들은 역시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것에 틀림없다.(그리고 이 사람들은 막상 아이가 공부를 잘 못 하는 것 같으면 또 쉽게 '엄마 탓'을 할 거라는 데 내 전재산을 건다)


오래전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이런 글을 본 게 기억이 난다. 현직 교사로 추정되는 그 분은 요즘 애들이 영어유치원이다 뭐다 난리지만 실제로는 학습 부진이 심각하다며, 집에서 엄마가 애 데리고 서너 시간만 매일 공부 시키면 되는 걸 안 해서 초등 1학년 애들이 아주 기본적인 두 자릿수 사칙연산 문제도 틀린다며 "요즘 엄마들은 애만 낳아 놓고 책임은 안 지려고 한다(원문은 차마 옮길 수 없어 매우 매우 순화한 표현이다)"고 했다. 그리고 다수의 사람들이 거기에 동의를 하고 있었다.

전체 유자녀 가정의 절반에 달하는 맞벌이 가정에서 하루 서너시간 공부가 말처럼 쉬운지 여부도 문제인데다, 콕 찝어 '엄마'의 책임으로 돌리는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다 떠나서 그 이전에 '학업 성적이 우수하지 않은 제자'와 그 가족이 왜 비하의 대상이 되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르겠고. 애초에 모든 사람이 학업 성적이 우수할 수가 없지 않은가? 노래를 못 하는 사람도, 글을 못 쓰는 사람도, 나처럼 운동을 지지리도 못 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런 사람들은 노력이 부족했다며 비하의 대상이 되진 않는다.


그러나, 내가 자녀가 없다면 그저 넘기면 되겠지만 나 역시 초등학교에 아이를 보내야 하는 입장에서, 그리고 우선은 교사의 평가와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는 입장에서 이 말은 나의 불안을 부추기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또한 혼동스러웠다. 한편에서는 '아이들은 생각보다 잘 해내니 너무 걱정할 것 없다'고 하고, 한쪽에서는 '아이가 잘 못하는 건 엄마 책임이기 때문에 전적으로 다 책임져야 하고, 못 해내면 엄마 실격이다'라고 협박한다.


아닌게 아니라 "애들한테 뭔 공부냐"하며 초연한 모습을 보이던 동료들도 아이들이 유치원에 들어가니 슬슬 학원 정보를 알아보러 다니고 있다. 생각해보면 요즘 아이들의 사교육 루트는 유치원부터 시작인 것 같다. 나는 무조건 '아이들은 뛰어놀기만 해야 한다'며 사교육을 배척하자는 입장은 아니기에, 아이가 다니고 싶다는 공부방을 보내고 있다. 우리 아이는 특이하게도 오히려 예체능 학원은 거부를 해서 유치원에서 방과후 활동으로 하는 예체능 프로그램이나 수업만 참여하고 있다. 시험이 없는 아직까지는 이렇게 본인이 원하는 것만 하며 버틸 수도 있다. 하지만 시험을 보는 연령대가 되면 이야기가 다르다. 싫은 것도 해야 한다는, 불편하지만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하는 인생의 대원칙에 몸을 실을 수밖에 없다.


7살이 되니 유치원에서는 간단한 쓰기 연습 숙제를 매일 내고 있다. 하기 싫다고, 실수할까봐 걱정된다고 찡찡거리는 아이에게 "숙제하는 게 너무 부담이 되면 다른 유치원으로 옮길래?" 했더니 그건 싫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 좋아하는 걸 하려면 싫은 것도 일정 정도는 감내하는 수밖에.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결국 숙제는 해 갔다.




일하기 싫어서 이것저것 주절주절 떠들어 보았다.

너무 쓸데없는 소리를 많이 한 것 같아서 나중에 지울 수도 있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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