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찌기 공자님은 나이 마흔을 불혹이라고 하셨다.
흔들리지 않는 나이.
공자님이 만 나이로 따졌는지 세는 나이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세는 나이는 전 세계에서 오로지 대한민국에서만 취급한다고 하니 정황상 만 나이일 것 같지만)
세는 나이 기준으로 나는 이제 불혹이 되었다.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불혹이 되니 실제로 남의 말에 덜 흔들리게 된다.
더 솔직히 말하면 흔들리려다가도
남의 말을 따름으로써 인정을 받는다는 게
얼마나 의미 없고 또 불가능한 일인지를 알게 됐다.
애초에 남이라는 것이
단일한 집단이 아니기 때문에,
남들의 말이라는 건 다 제각각일 수밖에 없고
그들의 말을 모두 새겨듣고 따르다 보면
내 인생은 사공 많은 배처럼 표류하게 되는 것이다.
타인 민감성이 높고 불안이 많은 나는
참 오랫동안 남의 조언을 열심히 주워들었다.
특히 인생 선배와 어른들의
'다 널 생각해서 하는 말'이라고 시작되는
별로 동의가 되지 않는 말조차
그래도 그들은 나보다 뭐라도 더 알겠지 싶어서
열심히 듣고 그들의 인정을 받으려 애썼다.
하지만 그들은 내 생각만큼 내 인생에 관심이 없었고
하나를 이뤄내면 더 큰 걸 이루지 않고 뭐하고 있냐고 또 다른 말로 나를 때릴 뿐이었다.
아, 애초에 그들의 목적은 나의 행복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컨트롤하는 데서 얻는 쾌감이었던 것이다.
한국은 세계 어느 문화권보다 나르시시스트가 많다고 한다.
타인의 시선을 무척 의식하면서
동시에 타인에게 자신의 영향력을 끊임없이 미치려고 한다.
길지 않았던 해외 체류 중에도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을 좋아하면서도
한국인의 컨트롤 프릭 성향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었다. (심지어 내가 한국인인데도 그런 말을 했다! 인종차별의 뉘앙스는 아니었다.)
대학을 가면 취업 준비는 안 하니,
취업하면 결혼해야지,
살 빼면 이제 몸 만들어야지, 뼈말라가 대세라더라,
여기만 좀 더 고치면 좋을텐데,
끝도없는 간섭과 지적질로 서로를 상처입히는지도 모르고 서로의 자유의지를 침범하면서
애정어린 충고라는 변명을 한다.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비참한 운명 속
가진 것 없이 인적자원밖에 없어서
서로를 끊임없이 '동기부여'하며 빠르게 발전해올 수밖에 없었다는 변명은
한국이 손꼽히는 선진국이 되고 나서도
아무 반성 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그놈의 선진국 되자고 그런건지
모두들 서로를 말로 평가내리고 찌르고 마음에서 피를 줄줄 흘리며
자살률 1위의 기괴한 왕국을 세우고 말았다.
더이상 그 기괴한 플레이에 놀아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후반전이 된 내 남은 인생을 악다구니 쓰며 살고 싶지 않다.
내가 누릴 수 있는 최대한은 행복하게 즐기며 살고 싶다.
언제까지 작은 회사에 머무를 거냐는 걱정엔
난 돌고 돌아 여기서 가장 일과 삶의 균형을 찾았으니 만족한다고, 나가는 건 내가 나가고 싶을 때 나갈 거라고 생각하고 넘긴다.
(굳이 싸우고 싶지는 않다. 하하 네 그러네요 정도가 적절한 대답)
살 좀 더 빼야 하지 않겠느냐는 질책엔
지금도 매일 출근전 운동하고 과식도 안 하지만
젊을 때처럼 빨리 빠지진 않는데,
그렇다고 위고비 맞고 절식해서 급하게 빼면
예전처럼 또 엄청난 식이장애와 요요가 올 것이고
그럼 지금 상태가 그리워질 정도로 더 찔 걸 알고 있다(과거에도 늘 그런 패턴이었으니까)
그래서 난 내가 죽을 때까지 지속 가능한 지금의 상태로 관리하며 살고 있다고
굳이 말하지 않는다.
하하 그렇죠? 가 정답이다.
타인의 충고는 참고로만 하라는데
참고는 결국 나를 휘두르고
내 생각인지 남의 생각인지 모를 삶을 살 거라는 걸
귀 얇고 타인 민감성 높은 나는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그냥 흘린다.
나는 이미 지금 이대로도 괜찮으니까.
당신들이 그렇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