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만 보며 살다 마흔이 되었다

by 뚜벅초

"쟤는 혼자 알아서 잘 컸어."

어른이 된 나를 보며 부모님이 종종 하는 말씀이었다.

물론 나도 부모가 되어 보니 세상에 정말로 혼자 알아서 잘 크는 아이는 없다는 걸 알고 있다. 다분히 과장이 섞인 표현일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어린시절을 좀 슬픈 마음으로 돌아보게 된다.


내성적이고 예민하고 사회성이 떨어지는 나의 학창시절은 별로 행복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어른들은 나를 모범적이고 착실한 아이로 기억하고 있었다. 오죽하면 수학여행 때 소지품 검사를 하면서도 내 가방은 안 열어볼 정도였으니까. 불안이 높고 타인 민감성이 높은 나는 어른들이나 친구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게 몹시 무서웠다.

그래서 누군가의 눈에 거슬릴 만한 선택을 하지 않았다.

이렇다할 반항기 없이 사춘기를 보냈고 책상 앞에 앉아 조용히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치렀고 적당한 성적으로 어른들이 추천하는 대학의 학과에 점수 맞춰 진학을 했다.

어른들이 보기엔 정말로 나는 알아서 그럭저럭 잘 큰 아이였을 것이다. 어디다 대놓고 자랑을 할 정도로 훌륭하게 자라진 못했어도 크게 손 안가는, 알아서 앞가림 잘 하는 참 편한 아이.



또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친구를 주도적으로 잘 사귀지 못했던 나는 다가오는 아이들과 주로 친해졌고, 그들의 언행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왠만하면 참고 맞췄다. 친구들이 가자고 하는 곳에 따라갔고 친구들이 관심있어 하는 것에 나도 관심 있는 척을 했다. 친구들과 공통 화젯거리를 만들고 싶어서 재미 없는 드라마를 억지로 보기도 했고 관심이 전혀 없는 연예인과 그들의 연애사를 열심히 공감하며 들어줬다.

나는 착한 아이였다. 좀 재미없지만 착한 아이. 무슨 말을 해도 거절하지 못할 것 같은 조금은 만만한 아이.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월급을 받는 직장생활은 학교와는 차원이 다른 고도의 사회생활이었다. 그야말로 누가 더 자아를 확실하게 지우고 조직에 나를 더 잘 맞추는지, 윗분이 말하지 않은 속내를 얼마나 더 잘 미루어 짐작하고 자연스럽게 맞출 수 있는지가 사회생활의 성패를 좌우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닌 윗분이 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했다. 흔히들 수평적이라고 하는, 그래서 직급도 없고 상사의 직급에 '님'자를 붙이지 않는다는 이 업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직급은 없어도 들어온 연차대로 촘촘하게 상하관계가 있었고 반 년이라도 선배면 아무리 부당한 요구라도 공손하게 받아들여야 했다.

가끔씩 참기가 어려울 정도로 답답하고 스트레스가 쌓인다고 하소연하면 모두들 말했다. 야, 그것도 월급에 포함된 거야. 받아들여.


그건 사실이었다.

비빌 언덕이 전혀 없는 무수저에 가까운 흙수저인 내가 도시에서 그럭저럭 의식주를 해결하고 생존하려면 근로소득을 최대한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었다. 조그만 단칸방의 월세라도 내려면 결국 작고 소중한 월급이라도 끊기지 않도록 아등바등 매달려야 했다.

최저임금을 조금 넘는 수준의 박봉에서 월세와 관리비를 내고 나면 계좌에는 최소한의 숨만 붙이고 살 수 있는 수준의 돈만 남았다. 이 돈으로 한 달을 살아내기 위해서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낮은가격순'으로 정렬해 최상단에 위치하는 것들만 소비하며 연명해야 했다. 그때의 나는 상품의 질도, 디자인도, 맛도, 따질 여유가 없었다. 오로지 내가 가진 돈에서 감당이 가능한지가 문제였다.


사회생활이 어느 정도 익숙해질 무렵 결혼을 했고 신혼을 보낸 지 두 달이 되기 전에 아이가 찾아왔다.

결혼을 하면 당연히 아이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사람들은 더 늦기 전에 서둘러 아이를 갖는 것이 최선이라고 권유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인생의 여러 중대사를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고 선택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었고, 온라인 커뮤니티를 검색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출산과 육아는 최대한 빨리 해야 하는 것, 일단 낳고 보면 행복할 것이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뚜벅초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내가 읽고 싶은 글을 씁니다.

1,456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8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13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