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의무를 끝내면 다른 의무가 시작된다. 투두리스트로 꽉꽉 채워진 워킹맘의 삶에 '설렘'이라는 게 있을까. 설렘보다는 효율을 생각해야 하고 적은 시간과 돈을 들여서 얼마나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을지를 항상 머릿속으로 계산해야 하는 현실이었다.
그러나 효율뿐인 삶은 마음을 가문 사막처럼 바짝바짝 마르게 만들었다. 사막에는 생물이 살지 않는다. 내 마음도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황량한 모습이 됐다. 사람은 생존 모드로 언제까지고 건강하게 살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건 사람이니까.
배터리가 꺼져버릴까봐 절전 모드로 안절부절하며 사는 삶에서 과감하게 절전 모드를 껐다. 어차피 이래도 불안, 저래도 불안한 건 매한가지였다. 그럴 바에야 지금 당장 내게 허락된 행복을 누리리라.
노트북을 들고 바쁘게 이동하며 일해야 하는 특성상 시공간이 자유롭다는 장점은 있지만 언제나 시간에 쫓긴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그만큼 배터리에도 신경써야 한다. 카페를 가면 음료의 맛이나 분위기보다는 콘센트 자리가 있는지부터 눈으로 빠르게 스캔해야 한다. 듣기 싫은 유행가가 시끄럽게 나오고 옆자리에 술마신 사람들이 냄새를 풀풀 풍기며 음담패설을 하고 있어도 눈앞의 업무부터 처리해야 한다. 배경음악을 무척 신중하게 고르는 나, 산미 있는 커피를 좋아하는 나, 조용한 곳에서 혼자 있어야 에너지가 충전하는 나를 자꾸 잊으려고 노력했다. 나는 도시에서 생존해야 하니까. 그런 것은 모두 사치라고.
예전에 업무 미팅으로 한 번 가보고 커피 맛에 반한 카페가 자꾸 생각이 났다. 그러나 동선이 애매한데다 가격대도 있고, 콘센트 자리와 와이파이도 없어서 업무를 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는 이유로 몇 년간 가보지 못했다.
고작 카페인데도, 어디 산 속에 있는 것도 아니고 도심 한복판 직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카페인데도 분초를 아껴써야 한다는 조바심에 그 정도의 여유조차 내게 허용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곳에서는 한국의 대중들이 별로 즐기지 않는다는 산미 강한 커피를 팔고 있었다. 산미 강한 커피를 좋아하는 나는 딱 한 번 그 곳의 커피를 마시고 그만 반하고 말았다. 이따금씩 그 커피가 생각났지만 현실적으로 내가 입에 넣는 것은 가장 접근성이 좋고 와이파이가 빵빵한 모 프랜차이즈 카페의 탄내 나는 쓰디쓴 커피. 아, 나는 이곳의 커피가 정말이지 싫다. 아니면 집에서 매일 내려 먹는 캡슐 커피뿐이었다. 맛을 느끼기 위한 것이라기보단 그냥 아침잠을 깨우기 위한 카페인 포션이었다.
나에게 커피 한 잔 정도는 선물하고 싶었다.
마침 약간의 시간이 남은 날이었다. 매일 가는 길에서 방향을 틀어 발걸음을 옮겼다. 골목으로 들어가 힘껏 문을 열었다. 매일 똑같은 도심 속 출근길인데 가슴 속에 설렘이 스며들었다.
오랜만에 온 탓에 메뉴판을 보고도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혹시나 시켰다가 예전 그 맛이 아니면 어쩌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봤자 '고작' 몇천 원짜리 커피지 않은가. 내가 일해서 버는 시급보다 적은 돈이다. 기왕 효율만 따지지 않고 살기로 마음먹은 차에 그 정도를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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