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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도와주는데 왜 엄살이야?"

육아는 2인분으로도 부족하더라

by 뚜벅초

신생아 육아가 너무 힘들었던 시기 주변에 하소연을 하면 자주 듣는 말 중에 하나가 "그래도 너네 집은 남편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잖아. 그 정도면 행복한 거야" 였다. 실제로 우리 남편은 육아에 매우 적극적이고 '시키지 않아도' 집안일을 알아서 척척 하는 '1등 남편감'이다. 집안 청소나 설거지는 나보다도 더 부지런해서 내가 하지 않고 미루는 동안에도 엉덩이 붙일 새 없이 집을 정돈하고 있다. 오히려 내가 좀 쉬라고 할 정도다. 게다가 내가 육아휴직을 끝내고 복직하면 남편이 바로 휴직을 낼 예정이라 다른 워킹맘 대비 안심하고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 편이다.


하기사 많은 엄마들이 집안일과 육아에 도무지 관심 없고 그저 '아내의 일'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남편들을 보며 홧병에 걸리는 게 대한민국 일반적인 가정의 풍경이긴 하다. 요즘은 많은 남편들이 바뀌었다지만, 여전히 기혼 여성들끼리 모이면 남편의 소극적인 가사참여에 분통을 터트리기 일쑤다. 심지어 맞벌이 가정의 경우에도 남편은 개인 약속을 잡아 밖으로 도는 반면 아내는 퇴근하기가 무섭게 집으로 달려와 아이들 케어를 한다.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아파도 아빠가 아닌 엄마한테 전화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일들이 겹치고 겹쳐 결국 직장을 그만두는 엄마들이 부지기수다.


이런 가정에 비하면 나는 비교적 행운인 편이라고 할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육아가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나는 강철체력도 없고, 육아가 찰떡같이 적성에 맞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기가 너무너무 순한 천사표 아기도 아니었기 때문에 남편이 도와주는 것과는 별개로 육아는 늘 힘들었다. 2교대 근무로 남편이 이틀에 한 번 집에 들어오는데다, 같이 있는 날이라고 해서 내가 출산 전처럼 맘놓고 쉴 수 있는 날은 손에 꼽혔다. 왜냐고? 일단 남편이 오전에 퇴근해 아기 이유식을 먹이면, 나는 일단 내 밥을 먹고 그 틈을 타서 씻어야 한다. 만약 아기가 전날 밤 잠을 거의 안 자서 씻을 기운도 없을 정도로 피곤하다면 밀린 잠을 한두시간이라도 보충해야 한다. 그러고 나면 남편도 씻고 화장실을 가는 등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 동안 내가 아기를 봐야 한다. 눈깜짝할 새 점심시간이 된다. 나는 점심을 준비하고 남편은 아기랑 놀아주거나 낮잠을 재운다. 점심을 먹으면서 아기 이유식을 번갈아 먹여주고, 남편이 설거지를 하는 동안 나는 아기를 보면서 빨래를 하거나 전날 못다한 정리를 한다. 그러고 시간이 남는다면? 장을 보러 가야한다. 이유식 재료를 사러 가기 위해서다. 남편이 아기를 보는 동안 필요한 식자재를 사서 쟁여놓는다. 어른 밥이라면 '새벽배송'을 이용해도 되지만 아기가 먹는 유기농 식품은 오프라인 매장에서만 파는 경우가 많아서다. 그나마 코로나라도 덜할 땐 남편 없는 날에도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나가 장을 볼 수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것조차 위험해서 나 혼자 마스크를 쓰고 후다닥 다녀온다. 장을 보지 않는 날에는 병원 진료를 받거나, 혹은 남편이 다른 볼일이 있어 외출을 하거나, 어쨌든 기타등등의 이유로 누군가 아기를 보고 누군가는 볼일을 본다. 그러다보면 어느덧 저녁시간이 다가온다. 저녁준비를 하고, 아기 낮잠을 한 번 더 재운 뒤 저녁을 먹고(아기 이유식도 먹이고) 나면 또 설거지를 하고, 같이 아기를 목욕시킨 뒤 수유를 한 뒤 아기를 재운다. 물론 우리 아기는 수시로 깨기 때문에 다른 일을 하다가도 달려가야 한다. 여기서 다른 일이라 함은 이유식을 만들거나, 집 정리를 하는 등 아기가 있을 땐 하지 못한 모든 일들이다. 대략 새벽 1~2시가 넘어야 잠자리에 든다. (간혹 이유식을 사 먹이면 되지 않냐는 질문도 많이 받는데, 이유식을 사 먹이면 그건 그것대로 지적하는 사람들은 차치하고라도 이유식을 사 먹일 때도 우리 가족의 전체적인 노동량은 의외로 크게 줄어들지 않고 그 시간에 다른 일거리를 또 하게 되더라.)


1251099131.jpg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1251099131.jpg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 부부는 거의 두 다리를 펼 새조차 없을 정도로 바쁘게 하루를 보내야 하는 걸 몰랐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대략 어른 둘이 애 하나 정도는 볼 수 있겠지, 라고 안일하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막상 육아를 해 보니 '놀랍게도' 육아를 하면서 사람다운 일상을 유지하는 데는 최소 성인 4명 이상이 필요했다. 이는 전업으로 아이를 케어하는 사람 1명에 더해 3명 정도의 도움 인력을 말한다. 하지만 워낙 '독박 육아'에 시달리는 엄마들이 흔해서 그런가, 남편이 육아에 적극적이기만 해도 힘들다는 말을 하는 것은 스스로 엄마자격 없다고 고백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고 있다. '남편이 도와주면 육아는 할 만하다'는 말은, 육아를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남편이 있는 한 힘들다고 하소연하면 안 된다는 무언의 합의기도 한가보다.


옛날에는 엄마 혼자서 애 10명도 낳고 키우지 않았냐고? 나도 그래서 가정적인 남편을 둔 내가 육아를 힘들어하는 게 나약한 건 줄 알았다. 하지만 예전 육아는 상황이 다르다. 일단 우리 외할머니만 봐도 평범한 중산층 가정 주부였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식모'가 딸려 있었다고 들었다. 친할머니의 경우 아이가 많아서 어린 자녀들은 대부분 위의 큰 형이나 누나가 도맡아 키웠다고 한다. 오히려 지금과 같이 엄마와 아기가 온종일 단 둘이 있는 것이 일반적인 현대의 육아보다 오히려 부담이 덜할 수 있다. 육아를 해본 이들이라면 공감하겠지만, 혼자서 육아를 하는 것은 노동량 자체보다도 아기로 인한 끝없는 방해 때문에 어떤 일에도 몰두하기 어렵다는 점, 기본적인 생리욕구 해결도 어려워진다는 점이 가장 힘들다. 때문에 '옆에 누군가'가 있는 게 몹시 간절해진다. 많을 수록 더 좋고. 오죽하면 며느리들이 치를 떠는 시댁 합가도 아이가 어렸을 땐 기꺼이 하는 경우도 많지 않은가. 시집살이를 시키는 시어머니일망정 갓난아기를 키울 땐 고마울 수밖에 없다.


물론 현대의 생활패턴에 과거와 같은 공동육아를 바라는 것은 다소 어불성설일 수 있다. 사실 예전의 육아는 그만큼의 장점이 있었던 만큼 여성들의 삶의 질 자체가 지금보다 나았다고는 하기 어려우니까. 다 장단점이 있는 것이다. 문제는 육아가 핵가족의 일로 오롯이 제한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빠는 '도와주기만 해도 1등 남편'으로 칭송받는 한편 엄마는 약간의 결점만으로도 끊임없는 시험대에 올라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육아가 그냥 힘들다고 하소연만 해도 모성애 없는, 엄마자격이 부족한, 나쁜 엄마 취급을 하니까.


어찌보면 이런 환경에서 우리나라의 낮은 출산율은 전혀 의아할 게 없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끊임없이 자신의 육체적, 정신적 한계를 시험받으면서 오로지 사명감으로 최소 5년을 버텨야 하는데, 그 와중에도 수시로 주변의 가르침과 간섭을 감내해야 하는 자리라니. 누가 '감히' 하고 싶겠는가?


아이를 낳고 나서 내가 특히 싫어하게 된 말들이다. "애는 되도록 한 살이라도 빨리 낳는 게 좋아. 고민할 시간에 얼른 낳아", "엄마니까, 낳으면 다 하게 돼 있어", "남편이 적극적으로 도와주면 괜찮을거야", 그리고 "딩크로 살 거면 그냥 결혼 안 하는 게 낫지 않아?" 등등. 모두들 육아의 무게를 경시하는 말들이다. 요즘 젊은이들이 아이를 많이 낳았으면 좋겠다고? 그렇다면 부디 사람 낳는 일, 사람 키우는 일을 가벼이 여기지 말지어다. 사람을 키우는 일의 무게와 가치를 존중하고, 노고를 이해하고, 혹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 되는 일을 선택하지 않았다고 해서 섣불리 비난하지 않는 것이다. 특히 그 노고를 엄마에게만 몰빵시키는 일은 이제 좀 더 의식적으로 그만둬야 하지 않을까. 이미 임신출산으로도 힘들 이들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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