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을 가장한 오지랖 좀 넣어두세요
엄마가 되고 나서 가장 큰 변화를 꼽자면, 불어버린 몸무게나 사라져버린 내 생활 등등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크게 절감하는 것은 나를 향한 주변의 '오지랖'이 엄청나게 증가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때로 나보다 자신들이 우리 아기를 더 잘 알고 신경쓴다는 듯이 나를 가르치려 하고, 심지어 '육아가 힘들다'는 말만 해도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애미"라고 욕할 준비가 되어 있는 듯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 시작은 꽤 빨리 찾아왔다. 조리원에서 퇴소한 직후 정부지원 산후도우미 서비스를 2주 정도 이용했다. 처음 하는 육아가 너무 무섭고 버거워서 한 달은 고용하려고 했으나, 먼저 당시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국적으로 무섭게 확산되는 상황이었고, 둘째로는 산후도우미 선생님의 무시무시한(?) 오지랖에 질려서 약속한 기간조차 채우지 못하고 해약을 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집에 왔던 산후조리사님은 능숙한 솜씨로 나와 신랑을 진두지휘하며 집안 가구 배치를 바꾸고 살림의 아주 소소한 부분까지 지적하고 개선하는 등 초보 부모였던 우리를 금새 육아모드로 전환시키는 데 큰 도움을 줬다. 그뿐만 아니라 마치 자신의 일처럼 초과근무까지 자진해서 하며 저녁식사까지 마련해놓고 퇴근하셨는데 우리는 그야말로 폭풍 감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점점 날이 지나면서 그 분의 지적은 과도한 수준으로 이어졌고 단순한 가르침이 아닌 무시와 인신공격으로 느껴지는 순간이 찾아왔다. 심지어 남편이 사온 육아템을 두고 '뭐 이딴 걸 사왔냐'고 야단치고, 집에 반찬이 없다는 이유로(우리는 병원 1주일+산후조리원 2주일로 근 한달간 집을 비우고 있었다) 주야간으로 일을 하는 친정엄마를 거론하며 '반찬도 안 해주고 뭐 하시냐'고 비꼬기까지 했다. 그래도 이 험난한 신생아 육아에서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분이니만큼(게다가 코로나 시국이라 딱히 사람을 교체하는 것도 왠지 엄두가 안 나서) 일단 약정한 기간만 채우고 그 이후는 재계약하지 말자며 꾸역꾸역 참았다.
하지만 더 큰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조리사님이 출근한지 딱 열흘째 되던 날, 먹성좋던 아기가 그날따라 분유를 잘 먹지 않고 힘이 없어 보였다. 한 달도 안 된 어린 신생아고 일단 엄마인 내가 보기에 크게 아파보이진 않아서 그냥 그러려니 하고 있었는데, 조리사님은 갑자기 아기 머리에 '혹이 났다며', 도대체 애를 어떻게 봤길래 '우리 아기'가 이렇게 됐냐고 나에게 소리를 빽 지르는 거였다. 흡사 그 분이 우리 아기의 친할머니고 나는 보모가 된 기분이었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고 억울하고, 한편으로는 그 소릴 들으니 진짜 혹인가 싶어서 겁도 나서 그렇다면 집앞 소아과에 가보자고 했다. 결과는? 우리 아기를 본 의사 선생님은 크게 웃으시며 이건 혹이 아니고 머리뼈 모양이며, 입에 진료도구를 갖다대자마자 막 벌리는 걸로 봐서 식욕도 문제 없다며, 몸무게도 평균 이상으로 잘 늘고 있으니 걱정 없다고 했다. 결국 나는 진료비 900원을 (내돈으로) 결제하고, 그날 저녁 업체에 전화해 조리사님을 해고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잔여금을 환불받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저 운이 나빠서 사람을 잘못 만났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조리사님처럼 우리 아기의 현재와 미래를 너무 걱정해주시는 탓에 오히려 나에게 공격적인 언행을 하는 사람들은 너무도 많고 많았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퍽 독립적으로 자라온 탓에 제법 앞가림을 그럭저럭 하는 편이었는데 덕분에 부모님을 비롯해 주변으로부터 딱히 이렇다 할 잔소리나 지적을 잘 안 듣는 편이었다. 하지만 아이를 낳자마자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한 마디'씩 해주고 싶은 것처럼 느껴져서 그 낙차가 얼떨떨했다. 물론 고마운 조언들도 많았지만, 상당수는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혼란을 주는 지극히 개인적인 코멘트도 많았고, 심지어 선을 넘어서 기분만 나쁜 인신공격들도 있었다.
아기를 데리고 외출을 하면, 물론 대다수는 그냥 귀여워해 주기만 하는 분들이 많았지만 일부는 아기가 춥겠다고 한 마디씩 하는 분들도 있었고(한여름이었다), 급성장기 중이라 시도때도 없이 칭얼거리는 아기를 데리고 나가면 애가 오줌 쌌는지 운다고 한소리씩 하시는 분들도 있었다. 물론 나는 기저귀갈이대를 찾아 이동 중이었다. 그래도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그 '조언'에는 기준도 딱히 없었다. 하루종일 아기만 보다가 겨우 재우면 이유식 만들고 젖병 닦고 내 시간이 하나도 없다고 토로하면, 사람들은 뭐하러 이유식을 만들어 먹이냐 그렇게 유난 안 떨어도 애 안 죽는다, 그냥 슬렁슬렁 아기 업고(!) 집안일도 하고 가끔씩 뽀로로도 보여주고 그래라, 유난떨지 말면서 징징대지 말라고 준엄하게 꾸짖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이유식을 사먹이고 유튜브 영상을 보여준다고 하면 '자기 살겠다고 애 방치하는 못된 엄마'라고 손가락질하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알았다. 아, 엄마란 자리는 뭘 어떻게 해도 욕을 먹는구나. 유기농 재료로 이유식을 손수 만들어 먹이면 어차피 어린이집 가서 이것저것 다 먹을텐데 뭐하러 유난 떠냐고 하고, 사다 먹이면 자기 애 먹을 것도 못 해 먹이냐고 노는 취급하고, 어린이집을 보내면 애는 엄마 품에 있는 게 제일인데 정서가 걱정된다고 하고, 안 보내고 가정보육하면 아이 사회성이 걱정되니 얼른 보내라고 하고. 유튜브 영상을 안 보여주면 요즘 세상에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영상도 보여주고 해야 말도 는다고 하고, 보여주면 시력 나빠지고 아동 학대라고 하고. 생각해 보면 육아라는 게 정답이 없기도 하고 너무 많기도 해서(그도 그럴 것이 아기 수만큼 정답이 있을테니까) 다 각자 자기가 겪어본 만큼만 조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보통 남의 일에 저렇게까지는 말을 잘 얹지 않는데, 왜 유독 육아에는 도를 넘은 간섭들이 많은걸까? 아기가 사람들의 보호본능을 자극하기 때문에, 아기와 직접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라도 아기를 지켜야 한다는 심리적 작용으로 양육자에게 이런저런 참견을 하게 된다는 분석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영 나쁜 의도는 아니었겠다 싶으면서도, 그래서 그 '참견'이 엄마와 아기에게 도움이 되는가? 라는 관점으로 생각해 보면, 내 답은 '아니오'였다. 그나마 그 지적이 순수하게 아기를 걱정해서라면 그 의도만큼은 높이 사겠으나, 적지 않은 비중은 그냥 만만한 사람을 휘두르고 싶은 욕심에서 비롯된 것도 많아 보였다. 조금 너무 나간 해석일수도 있겠으나, 나는 우리나라의 낮은 출산율을 초래한 수많은 원인 중 하나가 '육아에 관한 양질의 정보는 없으면서 비전문가들이 아무렇지 않게 간섭은 할 수 있는' 한국의 육아문화도 한몫을 하지 않았나 조심스레 짐작해본다.
결국 난 육아생활을 시작한지 고작 7개월만의 하나의 결론을 내리게 됐다. 육아는 어차피 정답이 없으므로, 내 주관대로 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그리고 나 또한 언젠가 '선배 엄마'가 된다면, 이제 막 부모가 되어 허둥지둥하고 있는 후배 부모들을 볼 때 아마도 참견하고 싶은 본능이 단전 깊숙이 올라오겠지만, 최대한 참아보자고. '상대방이 요청하지 않은 조언은 그냥 오지랖이다'라는 문장을 되새기자고. 그렇게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