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육아휴직 후 내 월급으로 생활하며
다른 집도 그렇겠지만 우리 역시 남편의 육아휴직을 결정하면서 가장 우려가 됐던 점은 역시 경제 사정이었다. 직업 특성상 수당이 많이 붙는 남편과 달리 나는 항상 일정한 월급만 들어오기 때문에 당장 가계 소득이 반토막 그 이하로 줄어들게 됐다. 물론 육아휴직 기간 동안 몇십 만원 가량의 휴직수당이 들어오긴 하지만, 그 전에 받던 월급에 비하면 큰 폭으로 줄어드는 건 사실이다.
우리처럼 남편이 휴직을 하고 아내가 외벌이를 하는 케이스가 흔하진 않지만 폭풍 검색을 하니 그래도 비슷한 경우를 찾을 수 있었다. 휴직 기간 동안 마통을 뚫어서 썼다, 저축은 아예 포기해야 한다, 매달 적자라는 등 걱정스러운 글들이 많았다. 나는 전문직도 잘나가는 대기업의 임직원도 아닌 탓에 한국의 평범한 근로자 수준의 월급을 받고 있다. 세 식구가 살기에 (인터넷 기준이 아닌 현실 기준으로) 엄청나게 빠듯하진 않지만 여유롭다고 보기도 어려운 수준이다. 게다가 양가 부모님의 형편이 모두 어려워서 급할 때 경제적 지원을 기대할 수도 없고 오히려 유사시에는 우리가 도와드려야 할 수도 있다. 부동산 대출도 갚아야 하고 객관적으로 상황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남편 휴직 후 우리 집의 가계사정은 크게 안 좋아졌을까? 일단 지금까지 보기에는 삶의 질이 유의미하게 나빠진 것 같지는 않다. 아이가 걸음마를 잘 하게 되면서 휴일마다 근교를 찾아 나들이를 하고, 외식이나 배달음식도 종종 사 먹으며 기념일에는 제법 값나가는 식사를 하기도 한다. 아이의 개월수가 차고 발달이 또래보다 좀 늦다는 진단을 받으면서 센터 수업이나 방문수업 등 사교육을 일부 하기도 했다. 다행히도 아직까진 돈 때문에 아이에게 꼭 필요한 의료적 개입을 못해주거나 부부싸움이 난 적은 없는 것 같다.
사실 우리 부부는 물욕이 그리 크진 않은 편이다. 특히 남편의 경우 사치품에 정말 관심이 없어 결혼할 때도 내가 시계라도 사주겠다는 걸, 자신은 저렴한 디지털 시계면 된다며 끝내 거절하기도 했다. 남편보다는 물욕이 좀 있는 편인 나도 애초에 쇼핑을 그리 즐기지 않아서 계획에 없는 물건은 거의 안 사는 편이다.
남편은 필요한 육아용품이나 생활용품이 있으면 '당근마켓'을 이용한다. 상태가 놀라울 정도로 좋은 물건들이 무료나눔이나 만원짜리 한 장 이내의 저렴한 가격에 올라오곤 해 큰돈을 들이지 않고도 아이 발달단계에 맞는 왠만한 물건은 거의 얻었다. 우리집에 있는 얼마되지 않는 아기 전집도 당근마켓에서 중고로 1/5가격에 구입했다. 전집이 별로 없다고 하니 '저 집 아이 교육에 너무 신경 안 쓰는 게 아니냐'고 생각할지도 모르는데, 다행히 우리 아기는 책을 아주 좋아하는 편이다. 커서는 어떻게 될 지 모르겠지만 현재로서는 책을 멀리하는 편은 아닌 것 같다. 그 외에는 근처 어린이 도서관에서 낱권을 빌려 오거나, 시에서 제공하는 북스타트 프로그램, 동원책꾸러기 프로그램에 당첨돼 1년간 무료로 책을 제공받는 등 여러 방식으로 독서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장난감 역시 부피가 크고 얼마 쓰지 않을 것은 장난감도서관에서 대여하거나 무료나눔을 통해 얻어오고 아이가 더 이상 갖고놀지 않으면 주변 다른 아이에게 물려줬다.
아이와 갈 수 있는 곳도 굳이 비싼 곳이 아니어도 좋은 장소가 많다. 국가, 시에서 운영하는 키즈카페나 공원 등은 무료 혹은 5000원 안팎의 저렴한 입장료로 이용이 가능하고 이런 곳들은 보통 수유실 같은 아이를 위한 장소도 잘 갖춰져 있는 편이다. 어차피 아이들은 사진 잘 나오는 장소보다는 자연 속에서 눈치 안 보고 맘껏 뛰어놀 수 있는 곳이 발달에 더 좋다.
대신 육아수당과 아동수당은 올해부터 그냥 생활비로 쓰고 있다. 남편이 다시 복직을 하면 수당을 다시 모아 아이 명의의 주식을 구입해 주는 걸 생각하고 있다.
물론, 단지 이 정도 '팁'으로 '애 키 우는 것 별거 아니니 육아휴직 누구나 할 수 있어요!'라고 주장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사람마다 가계상황은 모두 천차만별이고 변수가 엄청 많은 것이 바로 육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집 역시 남편 육아휴직 중 가장 크게 든 목돈이 아이 발달 문제로 대형병원에서 종합검진을 받은 것과 사설센터를 다녔을 때라 볼 수 있다. 그나마 다행히 태아보험이 커버돼 절반 정도의 금액만 낸 셈이었지만 무시할 만한 돈은 아니었다. 그나마 코로나 여파로 이런저런 정책지원금이 적지 않게 들어왔고 아이의 발달문제 외에는 별다르게 큰 돈이 들어갈 일이 없었단 점에서 운이 좋았다고도 생각한다.
어쨌거나 우리 부부는 남편의 육아휴직을 아직까지 후회하진 않는다. 휴직을 하지 않고 최소한의 출산휴가 후 곧장 맞벌이를 이어나갔다면 더 많은 돈을 모았을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 가족의 인생이 바뀔 정도의 금액은 아니었을 거다. 그보다는 또래보다 조금 늦게 자라고 있는 우리 아이가 잘 걷고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오롯이 부모의 케어 속에서 안정적으로 양육할 수 있는 기회가 더 가치있다고 믿는다. 우리 부부역시 그 과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진짜 부모로 거듭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