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아빠보다 할머니가 육아를 하는 게 당연해야 할까
아이를 키우면서 일을 계속하기로 결심했을 때, 워킹맘들 사이에서 가장 복받은 케이스는 '친정 엄마가 가까이 사는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육아기 엄마의 백업은 당연히 친정엄마고 여의치 않은 경우 시어머니의 손을 빌리는 경우가 대다수인 듯하다. 심지어 남편이 쉬는 주말에도 아이를 남편이 아닌 양가 어머니에게 맡기는 게 더 편하다는 엄마들을 자주 봤다. "남자가 어떻게 육아를 해"라는 이유에서다.
남편이 육아휴직을 해서 좋은 점 중 하나는, 흔한 맞벌이 부부들의 공식대로 양가 어머니를 희생시키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주변 워킹맘들 대부분은 가까이에 친정엄마 혹은 시어머니가 살면서 아이의 등하원을 맡아주거나 혹은 아예 주중에는 할머니가 도맡아 보고 주말에만 부모가 아이를 보는 시스템으로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다. 아무리 보육기관과 시터가 있다고 한들 아이를 키우면서 일어나는 수많은 돌발 상황에는 주양육자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아프고 열이라도 나면 어린이집에 보낼 수 없으므로 집에서 봐 줄 사람이 필요하고, 시터를 어렵게 구한다 해도 갑자기 그만두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엄마는 결국 발을 동동 구르다가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육아의 필수요소는 양가 할머니라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이를 키우면서 '당연한 듯' 양가 어머니의 노동력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싶진 않았다. 물론 양가 어머니들 역시 젊었을 땐 일을 하시면서 각각 어머니들의 도움을 받았다. 나는 어릴 적 18개월부터 6살까지 외갓집에서 자랐고 남편도 친할머니의 시골집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젊었을 때도 독박 육아, 살림으로 지쳤고 지금도 넉넉하지 않은 형편으로 일을 하시고 있는 양가 어머니를 육아에 희생시키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우리 엄마는 지금도 젊을 적 아무도 도와주지 않던 독박육아의 설움을 종종 토로한다. 젊은 사람들도 금방 나가떨어지는 육아라는 중노동이지만, 엄마들은 딸이 임출육으로 커리어가 날개가 꺾이는 게 싫어서 자신을 갈아넣게 되는 것 같다.
우리 엄마 역시 절대로 일은 놓지 말라고 '신신당부' 하면서 힘들 때는 자신이 도와줄 수 있다고 출산 전부터 공언했다. 물론 일을 계속 하셔야 했기 때문에 아이를 전적으로 봐주는 건 불가했다. 근처에 사시면서 급한 일이 있을 때 가끔씩 들러 도와 주는 정도였다. 시댁은 차로 한시간 거리에 계시기 때문에 육아를 부탁드리는 건 무리다. 남편의 휴직이 불가능했다면 내가 전전긍긍하며 걸음마도, 말도 서툰 아이를 어린이집 종일반에 맡기고 유사시엔 교대로 연차를 써 가며 외줄타기같은 육아를 했을 것이다. 그나마도 코로나 팬데믹이 심해져 휴원이라도 되면 일을 계속 할 수 있었을지도 의문이다.
물론 서툰 부모보다 능숙하게 육아를 할 수 있는 할머니의 돌봄이 아이 입장에서는 나름대로 좋은 기억이 될 수도 있다. 나 역시 어린 시절 할머니 사랑을 듬뿍 받았던 기억이 살면서 큰 힘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핵가족 사회에서 결국 아이는 할머니가 아닌 부모님과 더 오랜 시간을 보내고 성인이 된다. 내 경우에도 가끔 보는 할머니는 편안하지만 매일 보는 아빠는 서먹했다. 많은 육아서에서도 애착형성 시기에 주양육자가 자주 바뀌지 않는 것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솔직히 우리 부부는 양가 할머니들에 비해 힘든 육아를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아기가 울거나 떼를 쓰거나 발달이 늦으면 한없이 '멘붕'을 하고 감정을 못이겨 짜증을 내기도 한다. 육아서대로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조금이라도 규칙에 어긋나면 스트레스를 받고 영상 보여주기, 간식 등에 대해서도 융통성을 발휘하기 어렵고 서로 부딪히기도 한다. 엄빠 육아가 무조건 할머니 육아보다 나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어차피 아이는 우리 부부의 자식으로서 평생을 함께해야 하는 운명 공동체다. 지금은 다소 고되더라도 우리는 서로에게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남편의 육아휴직은 우리 아이에게는 아빠와 보다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회, 나에게는 육아의 책임을 동등한 입장에서 함께 지고 고민할 수 있는 동지가 생긴 계기가 됐다. 요즘은 많이 나아졌다지만 이런 기회가 아직도 소수의 가정에게만 주어질 수 있다는 게 참 안타깝다.
이렇게 글을 써 놓고 막상 내년에 부부 둘 다 복직을 하면 친정 엄마에게 육아 부탁을 더 자주 드리게 될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가 가장 어리고 손이 많이 가는 첫 2년간을 우리 부부가 주양육자로서 돌봤다는 점, 아이와 보다 친해지고 잘 알 수 있는 기간을 가졌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날들도 조금은 덜 두려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