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아빠 육아를 힘들게 하는 것들

말로만 육아 같이 하지 말라고 하지 말았으면

by 뚜벅초


아이를 낳고 함께 외출을 다니면서 눈여겨 찾아보는 것 중 하나는 바로 화장실이나 수유실에 '기저귀갈이대'가 있는지 여부다. 분유를 끊은 지 한참 지나서도 기저귀를 떼려면 아직 멀었기 때문에 밖에 나가면 기저귀갈이대가 있는 곳이 편했다. 아이가 조금 크고 나선 화장실에 대충 세워두고 후다닥 갈 수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기저귀갈이대가 있는 곳이 여러모로 편리했다. 조금 더 욕심(?)을 내면 독립된 수유실(아기휴게실)을 갖춘 곳은 더 좋았다.


어쩌다 기저귀갈이대나 수유실이 있다고 하면 왠지 고마운 마음에서라도 들르게 됐다. 대개 이런 곳은 우리와 비슷한 처지의 어린 아이 동반 가족단위 손님이 많아 아이가 다소 소리를 내도 눈치가 덜 보였다. 그런데 아쉬운 점은 수유실이나 기저귀 갈이대가 '여자 화장실' 안에만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나마 나랑 같이 나오면 내가 아이를 데리고 기저귀를 갈거나 하면 되는데, 남편이랑 아이가 둘만 나오면 이런 곳은 아예 입장 자체가 안 되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남자화장실 변기 위에서 불편하게 기저귀를 갈거나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오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


여전히 아이의 주 보호자는 여성(엄마)일 것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 것이다. 사실 유아 시설을 갖춘 곳 자체가 드물기 때문에 여자화장실에만 있더라도 일단 감사해야 할 판이다. 그럼에도 남성 육아휴직이 합법적이고, 심지어 이혼이나 사별 등으로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싱글 대디들도 있는 상황에서 이런 시설은 남성 양육자를 더 소외시키는 것 같다. 요즘은 공익광고만 봐도 '육아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가족과 사회가 함께 하자고 하는데 막상 인프라 면에서는 너무 갈 길이 먼 것 같다.


parent-gc33160213_640.jpg 출처 : pixabay


이렇게 사회가 암묵적으로 육아의 디폴트를 여성으로 정하고 있다 보니, 남성양육자인 우리 남편은 소외되는 경우가 좀 있다. 일단 문화센터만 가도 90% 이상의 아이들이 엄마랑 오기 때문에 유일한 아빠로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아빠가 아이를 데리고 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한다. 아기가 18개월이 되면서부터 방문수업도 시작했는데, 방문수업 교사도 대부분 여자분들이다 보니 남편 혼자 있는 집에 오는 걸 꺼려하시는 기색이었다. 다행히 내가 업무 시간을 조금 유동적으로 쓸 수 있어서 되도록이면 시간을 조정해서라도 수업 때에는 집에 있으려고 하지만 여의치 않을 때는 선생님 눈치가 보이기도 한다. 물론 각종 문화센터 수업, 방문수업의 교재에 나와 있는 보호자의 명칭도 모두 '엄마' 였다. 우리 집은 아직 딱히 쓸 일이 없어서 안 쓰긴 했지만, 시터나 아이돌봄 서비스를 이용해도 대부분 여성분들이 집으로 오실 테니 남자인 남편과 집에 단둘이 있는 것을 꺼려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뿐만이 아니다. 맘카페도 왠만한 곳은 남자회원을 받지 않고 있으며 주변에 전업으로 육아를 하는 아빠는 드물기 때문에 '아빠 육아 고충'을 나눌 상대도 찾기가 어렵다. 다행히 남편의 경우 원래 교대직군이라 아이가 있는 동료와 주중에 만나 같이 키즈카페를 가기도 하지만 일반 사무직의 경우 동료를 찾기가 더 어려울 것 같다.


물론 위에 열거한 문제들이 모두 '그저 고정관념 때문'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보다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원인이 있기는 하다. 맘카페가 왜 남성회원을 안 받게 됐는지 이유는 이미 알고 있다. 거기에 남성과 여성의 본능적인 차이부터 임금 격차로 인해 엄마의 경력단절이 보다 '합리적'일 수밖에 없는 가정, 돌봄노동에 여성들이 주로 종사할 수밖에 없는 다양한 이유까지... 그렇다 해도 실질적으로 엄마가 아닌 다양한 보호자들이 육아를 하고 있는 요즘 세상에 가끔은 너무 게으르고 시대착오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도 많다. 여자 화장실에만 기저귀 갈이대를 설치해야 할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까? 그냥 아이의 기저귀를 가는 아빠의 모습 자체를 딱히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건 아닐까? 관공서나 교육기관에서 배부하는 육아 관련 매뉴얼에 보호자를 굳이 '엄마'라고 표기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 우리집같은 아빠 양육가정 외 수많은 편부가정, 조손가정, 기타 다양한 형태의 가족형태를 아예 고려조차 하지 않는 안일한 마인드가 아닐까? 다들 사회가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막상 남자 주양육자 가정인 우리 입장에서는 여전히 갈 길이 멀어 보이는 게 사실이다. 해외의 경우 아이의 주양육자에 대해 습관적으로 '엄마'라고 하는 대신 '보호자' 등의 호칭을 쓴다고 하는데 우리 역시 그런 노력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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