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아이만큼 우리 부부도 소중하니까

이 또한 아이를 위한 것

by 뚜벅초

아이가 태어나기 전 신혼 때만 해도 '세기의 사랑'을 자부하던 많은 부부들이, 아이 출산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멀어지는 것을 숱하게 봤다. 나 역시 출산과 육아를 경험하다 보니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십분 공감이 간다. 육아라는 게 워낙 부모의 에너지를 극한까지 소모하게 만들고, 수많은 돌발상황에도 노출되다보니 자연스럽게 배우자에 대해 예전처럼 관심을 갖기가 어렵다. 자식이라는 너무 소중한 존재를 신경쓰다보면 배우자는 심지어 뒷전으로 밀어내게 된다. 내 몸 하나 씻고 밥 먹기도 버거운데 배우자와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눌 에너지도 없다. 아이가 잠들면 그냥 쓰러져 자거나 무기력하게 스마트폰으로 아이 용품을 찾아보는 게 일상이 된다. 여기에 부부 중 한 명만 육아를 하는 분위기거나, 서로가 서로의 고충을 이해하지 못하고 공격만 하는 모양새라면 부부사이는 겉잡을 수 없이 멀어지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개인적으로 안타깝게 생각하는 지점은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부부 사이가 멀어지는 것을 무슨 '자연의 섭리'인 것처럼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다. 아이가 너무 어릴 땐 부부 사이까지 챙기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아이가 다 자란 뒤에도 "가족끼리 뭘 그런 걸 해"나 "애 낳은 건 후회 안 하지만 남편 만난 건 인생에서 제일 후회한다"같은 말들이 당연한 상식(?)처럼 받아들여지고, 여기서 벗어나 배우자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면 특이한 취급을 받는(혹은 가식일 거라고 지레짐작하는) 분위기 말이다. 오죽하면 밖에서 손을 잡고 다니는 중년 남녀는 부부가 아니라 불륜이라는 농담까지 돌아다닐지.(물론 손을 잡고 안 잡고 여부가 사이 좋은 부부 여부를 증명한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아직 결혼연차가 길지 않아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혈연으로 맺어져 저절로 끈끈할수밖에 없는 부모 자식 관계와 달리 태생적으로 '남'이었던 부부 사이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상호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부모 자식 관계도 좋은 관계, 발전적인 관계를 위해서라면 누구보다 노력이 필요하다. 게다가 사랑하는 자식에게 부모가 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유산은 바로 부부가 건강하고 사이좋게 여생을 함께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가정 불화가 심한 환경에서, 언제 가족이 깨진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에서 자랐다. 덕분에 타인에게 마음을 여는 것이 어려웠고, 관계 맺기도 힘들었다. 지금은 새로운 나의 가정을 꾸리고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부모님이 서로를 헐뜯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심장이 덜컥하고 마음이 괴로워진다. 부모에게 경제적 지원을 받는 사람들이 부러운 적은 딱히 없었지만 원가정을 항상 따뜻한 이미지로 떠올리는 사람들은 몹시 부러웠다. 그러한 배경 때문에 나는 적어도 내 자식에게는 '심한 불화'가 없는, 평범하게 화목한 가정을 보여주고 싶었다.


people-gf9f115f26_1920.jpg 출처 : pixabay


아이가 아직 유아기를 지내고 있는 만큼 현재로서 우리 부부는 아이를 삶의 최우선으로 두고 아이 중심으로 거의 모든 일들을 결정하고, 생활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는 머지 않아 자랄거고 성인이 되면 부모의 품을 떠나게 될 것이다. 그게 정상이다. 독립시키는 게 말처럼 쉽진 않겠지만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해 그렇게 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러고 난 후에는 우리 부부는 서로가 가장 가까운 가족이자 친구가 되어 있을 것이다. 남편을 육아 동지이자 인생의 친구, 동반자로 여기고 가장 가까운 사이가 되려고 하는 이유다.


남편이 휴직을 하니 우리 부부도 (많이 다투는 만큼) 가까워질 기회도 많아진 것 같다. 교대 근무를 하던 남편이 집에 있으니, 나만 시간을 내면 언제든지 여행을 가기도 쉽다. 남편이 직장에 다닐 땐 이틀에 한 번 꼴로 야간근무를 하고 들어와서 이틀에 한번씩만 저녁을 같이 먹을 수 있었는데, 이제는 내가 퇴근한 후에는 오롯이 가족이 함께할 수 있다. 내 생일 등 특별한 날에는 남편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오라'고 해서 잠시 호캉스를 갈까 고민도 했지만 오롯이 남편과 둘만의 데이트를 한 지 오래된 것 같아서 거절했다. 대신 아이를 잠시 맡기고 분위기 좋은 곳에서 둘만의 식사를 하기도 했다. 결혼하고 나서도 큰 기념일은 왠만하면 챙기고, 가능하다면 아이를 맡기고 데이트를 하거나 여의치 않으면 아이를 데리고라도 다니고 있다.


다음날 새벽에 출근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면 우리 가족은 잠도 한 방에서 모두 같이 자고 있다. 남편이 야간근무를 할 땐 내가 미안해서 남편에게 다른 방에서 자라고 한 적도 있었지만, 오롯이 혼자 보초를 서야 하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남편이 '꼭 같이 자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기도 했다. 사실 이는 아이를 낳기 전 임신 때 만났던 상담 선생님의 조언이기도 하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부부가 한 방에서 아이를 같이 봐야 한다고. 그리고 아이가 잠들면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부부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실제로 우리는 심하게 피곤한 날만 아니면 아기를 재우고 거실로 나와 '티타임'을 갖거나(맥주 한 잔 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남편은 술을 마시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한 캔도 채 다 못 마시는 '알쓰'다.) 영화, 드라마를 함께 본다. 아이가 좀 더 크면 함께 운동을 하거나 취미생활에도 도전하려고 한다.


아이가 어릴 땐 오로지 자신만을 바라보고 집중해주는 부모님이 고맙겠지만, 좀 더 자라 어른이 되면 '알아서 잘 사시는' 부모님이 최고인 것 같다. 나 역시 내 아이에게 그런 부모가 되고 싶어서, 부족하지만 열심히 노후대비를 해 경제적으로도 자식에게 의존하지 않고 별 탈 없이 남편과 해로하는 삶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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