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셀프보단 전문가의 '공장식' 웨딩

by 뚜벅초


그렇게 본격적인 결혼준비를 시작하고 이런저런 후기를 검색했다. 역시나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있다고 어마어마한 경험담과, 업체 광고글과, 심지어는 결혼 준비 과정을 책으로 낸 사람들도 많았다.

그리고 보통 결혼준비담을 연재하거나 출판하는 사람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셀프웨딩'을 했다는 얘기들이었다. 정말 저예산으로 효율적인 결혼준비 방법이 궁금한 독자 입장에서는 솔직히 좀 김이 샐 정도로. 지금은 '코시국'이라 모두들 강제 스몰웨딩을 할 판이어서 어떤지 모르겠지만, 코시국 이전이던 내 결혼준비 당시에는 기존의 공장식 대형 웨딩을 거부하고 친한 사람들만 모여 나만의 취향대로 꾸민 특별한 장소에서 손수 꾸민 꽃장식과 부케를 들고 드레스 대신 흰 원피스와 밝은 색 턱시도를 입은 신랑신부의 스몰웨딩이 유행이었다. 그렇다. 모 가수 부부가 시초가 된 그 스몰웨딩이다. 물론 당사자도 "하객이 스몰이었을 뿐 예산은 스몰이 아니었다"고 방송에서 밝히기도 했지만.


물론 결혼준비의 과정을 예비부부가 손수 다 준비하고 자신만의 취향껏 꾸미는 것은 의미있고 멋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많이들 생각하는 것처럼 그게 과연 '저예산'인지는, 익히 아시다시피 아니다. 하다못해 예식장에 장식되는 꽃을 직접 꽃시장에서 사다가 꾸미려면 퀄리티도 그렇지만 돈이 만만치 않다. 그리고 신랑신부가 직접 발품을 파는 시간과 노동력도 엄연히 돈인데 왜 그건 계산을 안 하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아무렇지 않게 주변인들의 노동력을 빌렸다는, 인맥자랑에 가까운 후기들도 많이 보았다. 그런 후기에는 '지인 찬스'라서 '무료'로 할 수 있었다고 대충 퉁치고 넘어가던데 제대로 사례는 해 줬는지, 결혼식이 끝나고도 관계가 잘 이어졌는지 의문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내 노동력 니 노동력 발품 손품 팔아서 꾸민 셀프 웨딩 대부분이 정말 특색있다면 모를까 아무래도 전문가가 아니다보니 엉성한 경우도 많고, 전문가 급으로 하려면 일반 웨딩의 수십배 돈을 써야 해서 배보다 배꼽이 더 크게 된다. 어쨌거나 돈도 들이고 해봐야 결국 칠부 원피스에 하늘색 턱시도에 야외 테라스 카페 등 공장식 웨딩의 또다른 버전으로 거기서 거기란 생각도 들었다. 하기야 사람 생각하는 거 다 비슷비슷하니까.


물론 나 역시 미혼 시절엔 주변 사람들의 '공장식 결혼식'에 가서 바글바글 맥락없이 모인 하객들을 보며 참 진부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들을 폄하하는 건 결코 아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나도 결혼준비를 하다 보니, 역시 남들이 많이 선택하는 건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공장식 웨딩은 저렴하다. 그리고 노동력을 많이 필요로 하지 않는다. 웬만하면 일정 이상의 퀄리티를 얻을 수 있다. 직장을 다니며 결혼준비를 하는 와중에 힘들게 스트레스받고 싸워가며 한땀 한땀 다 내손으로 할 필요가 있는가, 과연 '결혼식'이라는 게 내 인생에 그 정도의 중요도를 갖는가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아니었다. 결혼생활이 중요하지, 결혼식은 그렇게까진 아니었다. 허례허식을 거부한다면서 또다른 허례허식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사본 -buffet-g9e2bb6a88_640.jpg 사진:픽사베이


그래서 우리는 원하는 지역인 서울 중심가 내 웨딩플래너가 지정해 준 몇 곳의 웨딩홀을 들렀다. 먼저 들른 한 유명 홀은 식대도 저렴하고 식장도 무척 예뻤지만 하객 수용 공간이 애매했다. 발이 넓으신 시댁의 하객 수가 남달리 많아 모두 수용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어쩌다보니 시식도 했는데 맛도 그저 그랬다. 일단 투어만 해 두고 근처의 다른 식장으로 갔다. 이곳은 외관도 허름했지만 내부는 깔끔했고, 예쁜 식장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촌스럽거나 저렴한 티가 나진 않았다. 지하철역도 뛰어서 5초일 정도로 가까웠다. 무엇보다 식장과 연회장과 신부대기실 등등이 모두 한 층에 있어서 신랑신부와 하객 모두가 이동하기가 편리할 것 같았다. 지인들 결혼식을 갈 때 축의금 내는 곳과 신부대기실과 홀과 연회장이 모두 다른 층, 심지어 별도의 건물에 있어서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났다. 게다가 식대도 앞선 곳과 비슷했음에도 뷔페 메뉴도 다양했고 음식 맛이 좋기로도 유명한 곳이었다. 실제로 결혼식이 끝난 후 지인들에게 묻지도 않았는데 음식맛이 좋았다는 칭찬을 꽤 들었다. 공장식 웨딩의 '결정체'와도 같은 곳이었지만 우리는 이곳이 제법 맘에 들었다. 마침 상담을 받으며 직전에 들렀던 곳의 예약금을 얘기하니 그보다 좀 더 낮게 해준다는 말이 나와 바로 계약서를 썼다. 우리는 이런저런 사정을 고려해 성수기에 결혼식을 올렸는데, 식장마다 다르겠지만 비수기에는 계약금 없이 무료에 가깝게 계약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양가가 모두 돈이 없는 우리는 연예인이나 여유 있는 사람들처럼 가까운 사람들만 모여 '스몰 웨딩'을 하진 못했다. 시부모님은 큰 웨딩홀에서 수백명의 지인들을 불러 그간 '뿌리신' 축의금을 회수했고 덕분에 식대를 다 내고도 돈이 남을 정도였다고 한다. "축의금은 사양하니 마음만 받겠습니다"라는 폼나는 멘트를 던지기엔 우리는 가난했고 그런걸 허락하실 양가 형편도 아니었다.


식장도 공장식으로, 스튜디오 촬영도 셀프가 아닌 전문가의 손길을 빌렸다. 당연히 우리가 삼각대 놓고 찍는 것보단 덜 고생스러웠고 백 배 나은 결과물을 얻었다. 셀프 촬영은 결혼 후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매년 가족사진으로 찍고 있다. 어차피 살다보면 '나만의' '우리만의' 역사를 만들 일들은 무궁무진하니까.


이렇게 쓰고 나니 정말 평범하기 짝이 없고 재미없는 결혼준비처럼 보인다. 그러고 보니 왜 유명한 결혼준비담 글이나 책들은 모두 셀프웨딩 중심인지 알 것 같았다. 그 편이 아무래도 멋지고 재미있으니까. 하지만 우리는 뻔한 공장식 웨딩을 준비하면서도 너무 재밌었다. 연예인처럼 메이크업을 받고 스튜디오에서 사진작가가 요청하는 각종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을 땐 내 친구들도 와서 마치 우리만의 작은 결혼식같았다. 웬만한 걸 전문가에게 일임해도 어차피 우리 손으로 결정하고 해나가야 할 것들은 충분히 많았다. 그 과정에서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고 가치관을 확인하며 때론 부딪히기도 하고 화해하며 단순히 좋은 감정에서 만나는 연인이 아닌 진짜 부부라는 관계로 진화했던 것 같다. 마치 임신을 확인하고 나서 먹을 것 못 먹고 잠 설치고 입덧으로 고생하고 뼈마디가 팅팅 붓는 속에서도 뱃속의 아이를 위해 태교를 하는 과정에서 자신만 알던 '여자'가, 나 아닌 다른 존재를 위해 오롯이 희생하는 '엄마'로 진화하는 것처럼.












이전 04화결혼준비와 함께 시작한 블로그, 부업이 됐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