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한 질문이, 왜 결혼한다고 하면 아무렇지 않게 여겨지는 걸까
그렇게 왠만한 결혼준비가 막바지에 이르고 드디어 청첩장이 나와 지인들과 자리를 마련해 결혼 소식을 알리기 시작했다. 모두들 표현은 제각각이었지만 한마음 한뜻으로 축하해줬다.
근데, 결혼소식을 알리며 의외로 정말 많이 받았던 질문은 "신혼집이 자가냐 전세냐", "부모님이 얼마나 도와주셨냐" 였다. 물론 대놓고 액수를 물은 건 아니지만 대화 중 자연스럽게 나올 수밖에 없을 만큼의 유도심문이 들어왔다. '정말 이런걸 대놓고 묻는다고?' 싶어 듣는 나도 귀를 의심하게 될 정도였다. 평소 지극히 상식적이었던 지인들조차도, '결혼'을 앞뒀다 하니 내가 너의 예비신랑의 '자격'을 검증해 봐야겠다는 기세로 미니 청문회가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양가의 형편이 그리 넉넉지 않아 지원받은 것 없이 시작한다고 하면 돌아오는 답은 두 종류였다. "진짜? 어떻게 하나도 안 도와 주시냐"와 "그래도 살다보면 많이 도움받을 거야".
애석하게도 두 번째는 별로 기대하지 않는다. 그보단 오히려 나이가 더 드셔서 지금 하고 계시는 일도 하기 어려워지면 우리가 도와드려야 할 각오를 하고 있다.
아무튼 그 정도로 한국의 결혼은 처음부터 끝까지 돈, 거기다 양가 부모님에게 물심양면으로 의존하는 비중이 크다. 개인의 의지라든지 감정이 끼어들 틈이 없을 정도다. 여기다 '사랑' 같은 걸 얘기하면 "가난이 대문으로 들어오면 사랑은 창문 밖으로 도망간다"는 답이 돌아올 게 뻔하다. "결혼은 현실"이라면서.
하지만, 그 현실은 누구의 현실인가?
나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두 가지 의문점과 불편함을 느꼈다. 왜 우리나라는 성인이 된 두 사람의 결합에 부모님의 허락과 승인과 물질적 뒷받침이 '필수'여야 하는가? 혹은 그것을 받지 못할 경우 부모님을 원망해야 하고 결혼 생활은 높은 확률로 불행해질 것이라는 예언까지 들어야 하는가?
우리는 결혼과정에서 일체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 양가가 형편이 어렵기도 했고, 특히 우리 부모님은 당시 여러모로 상황이 정말 나빠서 금전적 지원은 물론이고 사실 정신적으로도 자식 결혼에 쏟을 에너지가 없는 상태였다. 여담이지만 결혼 후에 들은 일이지만 내 결혼식 때 엄마가 펑펑 운 것은 신경을 못 써줘서 미안해서라는 얘기를 들었다. 살면서 엄마가 그렇게 우는 걸 본 적이 없었다.
보통 이런 경우에 많은 자녀들이 부모를 원망하면서 신세를 한탄하는 것을 자주 봤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그 상황이 딱히 원망스럽지는 않았다. 부모님이 자신들의 실책으로 가난한 노후를 맞이하게 된 것은 안타깝지만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없듯이, 내가 부모님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것도 딱히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미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는 신체 건강한 성인이다. 내 배우자도 마찬가지다. 부모가 된 지금도 그렇지만 부모의 역할은 자녀가 성인이 될때까지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키우는게 전부라고 생각하고 그 이후는 당사자가 알아서 하는게 맞다는 생각이다. 물론 내 자식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또한 그의 몫이다.
물론 앞선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치솟는 부동산 금액과 여전히 낮은 사회초년생의 임금, 혹은 그조차도 받기 어려운 취업난 때문에 부모에게 손을 벌리지 않고서는 출발이 어렵다는 현실도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어쩌면 모든 것을 미리 갖춰야만 하는 강박에 시달리지는 않는가? 모든 인생의 과정에 정답이 있다고 믿는 한국인들의 특징처럼 결혼생활이야말로 '현실'이라는 명분하에 '정답'의 조건을 갖춰야만 그럭저럭 잘 살 거라고 믿는 것은 아닐까?
아무튼 하도 주변에서 지원을 못 받는 예비부부를 불쌍하게 보길래 나는 잠시 '내가 그렇게 불쌍한 상황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난 딱히 불쌍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았다. 미지의 영역에 다가가는게 불안하기도 했지만 어차피 인생은 변수의 연속이다. 사실 재벌가의 자녀들도 이혼을 하는 것으로 봐서 돈이 가정 문제 모두를 해결해줄 수 없다는 건 쉽게 알 수 있다.
두 번째는 어째서 결혼 전에는 차마 입 밖에 내기 어려울 정도로 무례한 말이, 결혼할 부부라고 하면 아무렇지 않게 '현실'이라는 명목하에 던져지냐는 것이다.
얼마전 인터넷에서 한 신혼부부가 작은 월세집에서 '다이소'나 '당근마켓'으로 저렴하게 꾸민 집 자랑 글에 무려 천개에 가까운 악플이 쏟아졌다는 소식을 본 적이 있다. 대충 순화해서 옮겨 보면 돈도 없으면서 뭐가 자랑이라고 궁상맞은 결혼생활을 전시하냐, 돈 없는 남자가 양심도 없이 결혼을 해서 구질구질하게 산다는 글들이었다. 원글을 보니 평범한 신혼집 자랑이었다. 강남의 30평대 신축 브랜드 아파트가 아니라서, 한국사회가 규정하는 결혼의 '최소 합격점'에 들지 않으면 얼마나 쉽게 비하의 말을 듣게 되는지 단적으로 보여준 예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난에 대한 평가는 현실이란 명목하에 결혼전과 결혼후가 확연하게 달라진다. 나 역시 결혼전 원룸에서 월세살이를 하며 중소기업에 다녔지만 누구도 원룸의 보증금을 누가 내 줬냐, 월세가 얼마냐, 나이가 몇인데 월세를 살고 있냐고 따지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결혼을 한다고 하면 서울 요지의 30평대 신축 브랜드 아파트를 '시댁에서 사 줘야'만 제대로 된 결혼이고 '인정해줄만하다'고 평가하는 것 같다. 물론 아시겠지만 정말로 저 조건을 충족하는 이는 상위 몇 퍼센트 되지 않는다. 대다수는 '제 발로 지옥불에 기어들어가는 멍청이' 취급을 받는 이상한 구조다. 그렇다고 결혼을 안 하는 선택을 온전히 인정해 주는 것도 아닌 듯하다. 서로가 서로를 평가하고 점수매기며 패배자라고 상처를 주고받는 정말 기형적인 구조가 아닐 수 없다.
혹자는 그렇게 말할 것이다. 결혼은 이전에 비해 수많은 희생을 요구하고, 임출육으로 몸이 상하며 커리어가 중단되고 평생 시댁 노예로 살게 되니까 결혼을 '해줄' 라면 적어도 남편과 시댁에게 빵빵하게 지원이라도 받아야 억울하지 않다고. 글쎄, 일단 나는 아직까진 커리어가 중단이 안 돼서 모르겠지만 내 주변만 놓고 보면 오히려 양가의 형편이 좋을수록 경제적 부담이 없이 한참 자라나는 아이들과 함께하고 싶어 자발적으로 일을 내려놓고 엄마의 삶을 살아가는 경우를 많이 봤다. 개인적으로는 부럽기도 하다. 돈이 많아 일을 안 해도 되는 점이 아니라, 아이들과 돈 걱정 없이 좀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할 수 있어서다. 하지만 나의 삶도 불쌍한 게 아니라 그냥 좀 과정이 다를 뿐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지금 일을 하고 있어도 나중에는 그만둘 수도 있고, 지금 일을 쉬더라도 미래에는 다시 일을 할 수 있는 게 인생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결혼하는 이들을 마구 평가하는 사람들은 경력단절은 경력단절대로 비하하고 맞벌이 가정은 노예처럼 불쌍하다고 또 비하한다. 그냥 서로 다 불안하고 힘드니 그런 거겠지만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다른 사람의 인생을 평가질하기 이전에 자기가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돌아보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여러모로 좋을 것 같다. 대개 좌절된 욕구가 곪으면 다른 사람을 향한 공격성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말이 조금 샜지만, '결혼은 현실이다'라는 명목하에 이뤄지는 많은 무례함들이 얼마나 근거가 없고 과한 것인지 지적하고 싶었다.
현실이란 그렇게 '부=선', '가난=악'처럼 무 자르듯이 딱 떨어지지 않는다. 수많은 변수와 여러 가지 우연과 필연이 겹쳐져 다양한 양상으로 일어나는 것의 총합이 현실이다. 심지어 같은 일을 겪어도 누구는 현실이 너무 혹독하다고 생각해 좌절하지만 누군가는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도 한다. 오히려 그 '현실'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은, 낡은 명제에 갇혀 인간사의 다양성을 고찰하지 못하고 자신의 잣대대로만 평가하는 이들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