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딩슈즈가 사라지고 집안싸움이 일어날 뻔 했지만 행복했던 날
2019년 3월, 우리는 지난 2년 4개월간의 연애를 마치고 가족으로 진화했다.
그날은 새벽 5시에 일어났다. 신혼집 근처 24시간 운영하는 콩나물국밥집에서 아침을 먹고 컴컴한 강변북로를 지나 청담동 모 메이크업샵에 도착했다. 신랑은 30분만에 메이크업이 끝났고 나는 장장 3시간동안의 '변장'을 해 예식의 주인공인 신부로 거듭났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그날 남편은 샵에서 모 연예인 커플도 봤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들은 이모님은 둘이 자주 그 샵에 출몰한다고, 둘이 곧 결혼할 것 같다는 귀띔을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커플의 결별 뉴스를 볼 수 있었다.
식장까지 5분 정도 남았을 때, 문득 중요한 것을 놓고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우리 액자 챙겼어?" "아니?" "헉...." 결국 나를 신부대기실에 던져두자마자 남편은 도로 신혼집으로 돌아가서 식장에 디피할 액자들을 가지고 왔다. 이 글을 읽는 예비 부부가 계시다면 식장 준비물은 꼭 전날에 미리 차에 실어 두길 바란다. 당일은 너무 정신이 없기 때문이다.
신부대기실에서 원판 사진 기사님의 지시에 따라 여러가지 포즈로 신랑신부 사진을 30분 정도 찍고 나니 곧 식장에 입장할 때가 됐다. 나는 그동안 신고 있던 플랫슈즈 대신 웨딩슈즈로 갈아신으려고 했다. 웨딩슈즈래봤자 원래 있던 흰색 구두에 인터넷으로 산 브로치를 붙인 거였지만.
그런데 아뿔싸 웨딩슈즈가 안 보였다. 직원들에 심지어 예비 시누이까지 차에 내려가서 샅샅이 뒤졌지만 웨딩슈즈를 넣어둔 종이가방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결국 나는 원래 신고 있던 꼬질꼬질한 플랫슈즈를 신은 채 버진로드에 입장했다.
그 웨딩슈즈는 결혼식이 다 끝난 뒤 집에 돌아가려고 차에 올라타자 아무렇지 않게 놓여 있었다. 지금도 정말 미스테리로 꼽히는 일이었다.
결혼식 때 너무 떨리거나, 울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내가 중심이 된 신기한 축제가 재밌기만 했다. 게다가 미처 청첩장을 전달하지 못한 지인들도 다수 식장에 찾아와 축하를 해 줘 그야말로 폭풍감동을 했다. 새삼 그간 지인들의 경조사를 잘 챙기지 못했던 게 반성이 될 정도였다. 그래서 결혼식 이후로는 왠만하면 초청받은 경조사는 꼭 참석하려고 한다.
내가 신부대기실에서 신나게 사진을 찍는 동안 우리 엄마에게 친가 쪽 친척분 중 한분이 시비를 걸어 약간의 다툼이 일어날 뻔했다는 사실도 뒤늦게 전해들었다. 우리집의 심한 불화로 엄마가 '며느리 노릇'을 하지 않은 게 원인이었던 것 같다. 다른 친척분이 '이런 날 이러시는 건 아닌 것 같다'며 만류했기에 다행히도 큰 싸움으로 번지지는 않았지만. 내내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구나, 그래도 '벌어질 뻔'만 하고 말아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결혼식이 무사히 끝났다. 우리의 연애도 끝났고, 결혼 준비도 끝났고, 1년넘게 해 오던 나의 다이어트도 끝났다.
결혼식 후 집에 가는 길에 제일 먼저 한 건 그토록 먹고 싶었던 치킨을 주문하는 거였다. 신부관리를 받던 마사지샵 건물 1층에는 교X치킨 집이 있었다. 퇴근하고 고작 삶은 계란이나 두유, 고구마 따위로 저녁을 대신한 채 마사지를 받던 나는 당시 그 냄새가 얼마나 유혹적이었는지 모른다. 한이 맺힌 듯 허니콤보를 마구 뜯고 공항으로 향했다.
결혼식, 파리로 떠나던 비행기와 경유지였던 암스테르담 공항에서 사 먹은 쿠키, 처음 파리에 도착한 뒤 들렀던 조그만 시장, 에펠탑 앞에서 사 먹은 누텔라 바른 크레페... 육아와 현실에 찌들려 사는 시기에도 당시의 추억은 꿈처럼 몽글몽글 피어난다. 현실에 눌려 우울해질 때도 다시금 힘을 낼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는 가족이 되었다.
꿈같이 달기도 하고 가끔은 쌉쌀할 때도 있는 현실을 3년동안 그럭저럭 잘 살아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