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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는 식어가는데, 마실 줄 몰라요

#16. 이모는 없어요, 고모도 없고요

by 생쥐양

아빠는 7형제 중에 넷째로 태어나 소위 '중간'에 낀 존재였다. 엄마는 6남매 중에 둘째 딸로서 나름 귀여움을 받았지만 그것도 잠시 어느 집이 그러하듯, 오빠에게 '치이는' 존재였다고 한다.

이 두 가지 사실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지만 나에겐 고모도 그 흔한 이모도 없다.


그래서일까? 학창 시절에 이모가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던 적이 있었다.

'이모가 생일이라고 사준 거야'

'이모네랑 주말에 놀러 가기로 했어'

'이모랑 밥 먹으려고'

왜 세상 이모들은 조카들에게 선물도 잘 사주고 놀러도 같이 다니며 시도 때도 없이 문자를 주고받는 건지 이모가 없는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모는 조카에게 잘한다"는 혈연 공식이 있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하지만 나는 유년시절부터 바쁜 아빠를 대신해 '아빠 역할'을 해주었던 외삼촌들이 있다. 다행인 건 돌잔치며 생일파티 때 찍은 사진 속에는 '진짜 아빠'가 등장하였으니 그들은 '치고 빠지는'역할을 잘 해냈던 것 같다. 그 시절에는 남자의 결혼 적령기가 20대 중반이었는데 외삼촌들은 하나같이 30대 중반에 결혼을 했으니 나로서는 행운이었다. 우리 남매에게 그만큼 아빠의 공백기를 채워줬기 때문이다.


어릴 때 아빠의 존재는 좋아하는 장난감을 사주고, 외식을 시켜주고, 놀이동산에 같이 다니며 커다란 손으로 나를 지켜줘야 하기까지 그의 할 일은 너무 많았는데 20대 취준생이 된 지금은 용돈을 주는 존재가 되었다. 그냥 그게 다다.

"공부는 잘되니?"

"머 필요 한 건 없고?"

"올해는 합격해야지"

눈치 없이 이런 질문들을 쏟아내면 아빠에게 돌아오는 건 딸의 냉랭한 연락두절이다. 그것이 이혼한 아빠에 대한 소심한 복수이기도 했다.


그런데 부녀관계에서 영원히 '승자'일 것 같던 나에게 신께서 벌을 내리셨다.

"연주야..."

"삼촌"

"너는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연락했어, 놀라지 말고 삼촌 말 잘 들어... 아빠 갑상선암이시란다. 엊그제 찾아뵙는데 얼굴이 많이 안 좋으시더라. 시간 되면 전화 한번 드려봐"

그를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하늘에 닿았던 걸까? 아무리 그래도 내가 원하던 벌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왜 하필? 외삼촌의 전화를 받고 두 손에 힘이 빠져 핸드폰을 놓쳤다.

나는 알고 있다. 아빠도 그동안 두 다리 뻗고 마음 편하게 지내지 만은 않았음을... 그리고 그가 이렇게 무서운 벌을 받을 만큼 인생을 헛되지 살지 않았던 것도 말이다.


떨어뜨린 핸드폰을 주워 단축번호 4번을 길게 누르자 4박자의 정직한 신호음이 길게 울려 퍼진다. 아빠는 그토록 보고 싶었던 딸의 전화를 받지 않으셨다. 그리고는 한통의 문자가, 아니다... 연달아 세 통의 문자가 도착하였다.

아빠는 건강검진을 통해 갑상선암을 조기 발견하여 운이 좋은 케이스라는 거, 엄마가 들어놓은 보험이 있어서 수술비 걱정은 안 해도 된다는 거, 당분간 전화보다는 문자로 연락하자는 말을 전하셨다.

이럴 때는 "아빠, 힘내"라는 위로가 어울릴지 "아빠, 그러게 평소에 건강 좀 관리하지는" 핀잔이 어울릴지 나는 모르겠다. 그 어떠한 말보다 마음속에서 목구멍까지 내뱉고 싶은 말은 "미안해"인데 자존심이 세서 쉽사리 나오지 않는다.


나의 복잡한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헤아려줄 외삼촌에게 전화를 걸었다.

"삼촌, 방금 아빠랑 연락했는데 괜찮다 하시네"

"연주야, 도서관?"

"어? 응"

"20분 뒤면 도착한다. 준비하고 있어"

외삼촌은 80km가 넘는 거리를 오직 조카가 걱정되는 마음 하나로 달려오셨다. 생각해보니 삼촌은 그렇게 필요한 자리에 언제나 계셨다. 초등학교 졸업식날, 중학교 때 학부모 연수, 고등학교 때 진로상담, 대학교 입학식, 그리고 아빠가 짐을 챙겨 집을 나가시던 날, 엄마가 가게 계약서를 쓰던 날


나는 이모가 없다, 고모도 없고...

그런데 삼촌은 있다.

그것도 이모 같은 삼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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