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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완 Nov 28. 2021

잭 존슨, 그리고 무하마드 알리

20세기 미국 인종주의(raicism)를 돌아보며



1908년, 잭 존슨이 흑인 최초로 헤비급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흑인이 백인을 앞설 수 없다는 인종적 편견이 만연한 시대에서 

흑인 챔피언을 받아들일 수 있는 백인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언론은 의도적으로 잭 존슨을 외면하거나

그의 사생활을 들춰내어 챔피언 자리에서 끌어내리려 했습니다.


결국 은퇴한 백인 전 챔피언 짐 제프리가 잭 존슨을 상대하기 위해 불려 나왔습니다.

그에게 위대한 백인의 희망(The Great White Hope)이라는 별명이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마저도 잭 존슨에게 패했고 백인의 자존심에 커다란 상처를 받았습니다.

백인이 흑인에게 패하는 영상은 상영조차 될 수 없었고

곳곳에서 폭동이 일어나 수 십여 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30년이 흐른 뒤 뉴욕의 양키 스타디움에서 백인과 흑인 복서의 대결이 다시 펼쳐졌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국가 간의 대결이었습니다.

미국을 대표하는 조 루이스와 독일을 대표하는 막스 슈멜링의 챔피언전이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의 기운이 고조되는 가운데 치러진 두 선수의 대결은 특별한 관심을 일으켰습니다.


조 루이스와 막스 슈멜링


미국을 대표하는 조 루이스는 흑인 선수였습니다.

반면 독일 대표 막스 슈멜링은 게르만을 상징하는 순수 백인 혈통이었습니다.

그러나 스타디움의 미국인들은 열렬히 조 루이스를 응원했습니다.

경기는 1회 2분 4초 만에 조 루이스의 ko승으로 싱겁게 끝났습니다.

2년 전 대결에서는 슈멜링이 이겼었지만 전성기에 접어든 조 루이스와는 달리

30대 노장이었던 슈멜링의 패배는 어느 정도 예견되어 있었습니다.

언론은 사악한 나치에 대한 자유의 승리라고 보도했습니다.


조 루이스의 승리는 미합중국의 승리였습니다.

피부색에 상관없이 히틀러의 나치를 통쾌하게 무찔렀다는 이유만으로 영웅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조 루이스는 어린 시절 KKK의 탄압을 피해 디트로이트로 이주하지 않았다면

복싱선수가 될 기회조차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막스 슈멜링의 삶은 더욱 흥미롭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강제 징집되어 전투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그는 히틀러의 반 유대주의 정책에 반대하며 유태인들을 숨겨주거나 피신시켜주었습니다.

너무나 인간적이었던 슈멜링은 자신의 상대였던 조 루이스와도 친분을 이어나갔고

그가 어려운 형편에 처하자 직접 도와주기까지 했습니다.






20세기 초, 미국의 인종차별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차 세계 대전의 이념 대립이 불러온

흑인 복서를 향한 미국 백인 사회의 응원은 매우 놀라운 변화였습니다.


미국 사회에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인종주의가 약해지면서 차별과 편견 또한 변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흑인 청년 캐시어스 클레이는

미국의 영웅이 되어 돌아왔음에도 백인 전용식당에서 문전박대를 당하고 쫓겨났습니다.

이에 분노한 그는 미국식 이름을 버리고 무하마드 알리로 개명했습니다.

 

그는 이전 다른 흑인 선수들과 달리 인종주의와 차별에 철저히 저항했습니다.

공공연하게 흑인 인권운동에 앞장서면서 백인 사회와의 대결구도를 피하지 않았습니다.

언론은 그를 비난하는 기사로 도배되었으나 자신의 뜻을 굽힐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며 징병을 거부하자 챔피언 자격이 박탈되고 법정에 서게 되었지만

그가 법정에서 당당하게 외친 변론은 제법 묵직한 반전 메시지가 되었습니다.


"베트남 사람들은 흑인이라는 이유로 우릴 차별하지 않는데

내가 왜 지구 반대편에 있는 이름 모를 사람들에게 총을 겨눠야 합니까?"


은퇴 후 파킨슨 병을 앓던 그는 놀랍게도 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성화 점화자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평생 미국의 인종주의, 애국주의에 대항하며 반전 운동을 벌이던 그가 

미국에서 벌어진 세계 최대의 행사의 주인공으로 나선 것입니다.

20세기의 마지막 올림픽, 그것도 미국에서 벌어진 세계인의 축제에서 

그는 미국을 대표하는 영웅으로 축제에 불을 붙였습니다.



올림픽 성화를 점화하는 무하마드 알리

 


20세기 미국의 인종주의를 공부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스포츠 스타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흑인들에게 배움의 길은 쉽게 열리지 않았지만

신체적인 강점으로 스포츠계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습니다.

복싱뿐 아니라 야구, 농구, 육상 그리고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스포츠 

미식축구까지 흑인들의 잔치가 되는데 한 세기면 충분했습니다. 


이제 미국은 인종주의를 극복한 나라가 되었을까요?

여전히 미국의 극빈층은 흑인을 비롯한 소수 인종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말입니다.

인종주의(racism)는 인종의 특색에 따라 불평등을 합리화하는 생각을 말합니다.

흑인뿐 아니라 동양인에 대한 편견도 인종주의의 하나입니다.

물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다름에 대한 불편한 생각들도 포함될 수 있습니다.






역사상 한국인임이 이렇게 자랑스러운 시절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K문화의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국제 사회에서 한국을 보는 시선은 100년 전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로 달라져 있습니다.

그러나 백인 사회가 흑인들을 바라보는 지난 백 년의 변화를 따라가다 보면

문화에 대한 열광이 반드시 차별을 극복하게 만드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재능이 있는 소수만을 인정할 뿐 나와 다른 얼굴과 피부색에 대한

고정관념은 고집스러운 편견처럼 여전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인종주의는 다름에 대한 편견과 차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차별은 다수가 소수에게, 혹은 힘 있는 자가 힘없는 자에게 행하는 폭력입니다.

유럽이나, 북미에서 공공연하게 차별을 받았던 한국인들의 고백을 들으면 분노하지만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소수에게 가해지는 차별에는 암묵적으로 고개를 돌리게 됩니다.

부끄럽게도 차별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세계 속에서는 소수일지 몰라도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는 누구나 다수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견을 버리고 다름을 불편하게 여기지 않았던

용기 있는 사람들을 통해 세상은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백여 년 전, 잭 존슨을 사랑했던 백인 아내가 그러했고, 독일의 영웅 막스 슈멜링이 그러했고

시합 도중, 흑인 최초의 메이저리거 재키 로빈슨에게 다가가 어깨동무를 했던 피위가 그랬습니다.

지난 한 세기, 100년의 변화를 이끌었던 이들의 조용한 투쟁이 없었다면

무하마드 알리가 올림픽의 성화를 밝히는 최종 주자로 선정될 수 있었을까요?


우리는 지금 21세기라는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22세기를 맞이하게 될 인류는 어떤 현실 속에서 살아가게 될까요?

나와 다르기에 더 반갑고, 나와 다른 생각에 불편해하지 않는 사람들,

21세기가 무르익어 갈수록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더욱 사랑받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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