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에서 만난 어머니

남해 두 번째 이야기

by 류완


아침부터 그렇게 8시간을 넘게 걸었습니다. 다랭이 마을부터 앵강다숲 마을까지 대략 20km 정도를 걸었습니다. 하루 종일 걷는 거리로는 짧은 듯 하지만 산속을 헤매던 시간 때문에 한참 동안 느리게 걸었습니다. 해는 조금씩 서쪽 언덕 위에서 머리를 숨기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남해 트래킹을 마치고 시내에서 숙소를 잡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만나는 버스 정류장에서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했습니다.


도시에서 한 정거장은 가볍게 걸을 수 있었지만, 시골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다음 정류장을 만나기까지 30분은 족히 걸어야 했습니다. 길을 잘못 들어선 이유도 있었지만, 마을과 마을 사이가 제법 멀었던 것 같습니다. 연장전 같은 걸음을 걷고 나서야 버스 정류장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힘들게 발이 닿은 버스 정류장은 깔끔하게 잘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바닷바람이 추울까 봐 유리창으로 둘러싼 정류장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러나 초여름의 유리창은 더위를 더할 뿐입니다. 두 다리에 느껴지는 무게감만 아니라면 그곳에 앉아 있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한 번 엉덩이를 대고 나서는 도저히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습니다.







진한 땀을 흘리며 앉아 있었습니다. 도로를 따라 걸어오시는 어머니 한 분이 정류장 안으로 천천히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저희 옆으로 자리를 잡고 앉으셨습니다. 잠깐의 어색함도 허락하지 않으려는 듯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셨습니다.


“어디서 왔어요?”

“서울에서 왔습니다.”

“서울 어디?”


대충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을 말씀드리고 나니 어머니는 좀 더 진지한 모습으로 대화를 이끌어 가셨습니다.


“거기 근처에 우리 아들 네가 살고 있는데......”


근처라 하지만 지하철로 30분 정도는 가야 하는 곳입니다. 서울 안이면 대충 비슷한 동네로 보이시는 건지, 아니면 아들 이야기를 하시려고 던진 무리수였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자식들 이야기로 한참을 보냈습니다. 우리는 그 이야기가 귀에 들어올 까닭이 없었습니다. 그저 버스가 언제 오는 지만 집중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이야기가 잠시 끊겼을 때 한 번 여쭈어보았습니다.


“어머니, 버스가 오려면 얼마 정도 기다려야 하나요?”

“응, 금방 와. 이제 올 때 됐어.”


그리고 이제는 딸의 이야기를 시작하셨습니다. 귀찮아했던 나와는 달리 친구는 조금씩 대화에 참여했습니다. 이제 이야기는 손주들까지 내려간 상태였습니다. 무심히 듣던 나도 어느 정도 어머니의 가계가 그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은 서울에서 대학교수를 하고 있고, 딸은 좋은 집안에 시집을 갔으며, 손주들은 학교에서 공부를 잘한다는 이야기로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어머니께서 여기에 사시게 된 이야기와 남해에 대한 자랑으로 넘어갈 즈음이었습니다.


금방 온다는 어머니의 말씀과는 달리 20분이 지나도록 버스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조급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고, 우리는 택시를 부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버스정류장 한편에 적혀 있는 콜택시 회사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택시는 10분 정도 걸릴 거라고 했습니다. 통화를 마치자마자 어머니의 이야기는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부담감이 조금 내려가서 그런지 어머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습니다. 맞장구도 치고 이런저런 질문도 하면서 대화는 택시가 오는 시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한적한 도로 저쪽에서 택시가 오고 있었습니다. 한눈에 우리가 타야 할 택시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머니께 인사드리고 택시에 올랐습니다. 그 순간 정류장에 홀로 앉아 계신 어머니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어머니께 어디까지 가시는지 여쭈었습니다. 어머니는 무슨 축제가 열리는 장소에 가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기사님께 축제 장소에 들렀다 갈 수 있는지 물어보았고, 기사님은 마침 가는 방향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어머니와의 대화는 그렇게 연장전으로 접어들었습니다. 택시 안에서도 어머니의 이야기가 계속되었습니다. 지금 가는 축제가 정말 볼만하다며 서울 가기 전에 꼭 들려보라는 당부였습니다. 그러면서 대화 중간중간 우리를 칭찬도 하셨습니다. 목적지에 다다르자 이제는 헤어짐을 섭섭해하셨습니다. 택시에서 내리시고 손을 흔드시며 인사를 하셨습니다. 택시가 출발하면서 어머니와의 짧은 만남은 막을 내렸습니다.


백미러로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어머니의 모습이 조금씩 멀어져 갔습니다. 그러나 한참 동안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백미러에서 어머니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어머니는 손을 흔들고 계셨습니다. 고개를 돌려 다시 돌아보았지만, 택시는 이미 코너를 돌았습니다. 왜 돌아보았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내 어머니도 아니고, 한참을 알고 지낸 지인도 아니었습니다. 길게 잡아 40분 정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기억에서 지울 수 없는 한 장면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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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를 다시 다녀온다면 좀 더 편안하게 다녀오고 싶습니다. 이제 나이도 몇 살 더 먹었고 두 다리에 근육도 제법 빠져 그 길을 다시 걸을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때 그 어머니를 만났던 버스 정류장은 꼭 한 번 다시 찾고 싶습니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버스를 기다려보고 싶습니다. 누군가 정류장을 찾아 준다면 용기 있게 인사도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작은 위로도 되어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누구보다 그 어머니께서 다시 나와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를 기억해 주시면 더 행복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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