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간사이 지역을 걸으며
간사이 여행에 흥미를 느꼈던 계기는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였습니다. 대학 시절부터 즐겨 읽던 책이었습니다. 일상에 지쳐 한동안 관심 밖으로 멀어졌다가 서점에서 신간으로 나온 일본 편 아스카 나라를 만났습니다. 백제의 도래인들이 일본의 고대 왕국을 세우는 데 공을 세웠다고 짧은 역사 인식은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조금 더 그 생각을 구체화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아스카에서 나라로 이어지는 고대 문화의 변화 속에서 백제 문화가 일본 고유의 문화로 변모해 가는 과정이 인상적이었습니다.
5년 전, 일본으로 유학 간 사촌 동생의 권유와 늘어난 저가 항공 덕택에 별다른 고민 없이 간사이 여행을 결정했습니다. 비행시간도 짧고 비슷한 기온에 시차가 없어서 처음에는 외국 여행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열차를 타고 나와 제법 큰 환승역에서 일본어로 된 수많은 간판을 만나고 나서야 내가 이방인임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여행의 첫걸음은 호류사(법륭사)였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인 금당과 5층 목탑, 금당에 그려진 벽화와 백제 관음상이 유명합니다. 일본 최초의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사찰이니 기대감이 컸습니다. 유홍준 교수도 이곳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할 만하다고 하면서 호류사는 ‘one of them’이 아니라 ‘everything’이라고 언급한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여행 첫날부터 내리는 비는 발걸음을 제법 무겁게 만들었습니다. 이른 봄비는 체온도 떨어뜨려 피로감을 더했습니다. 덩달아 발걸음이 빨라졌습니다. 기대했던 여행이지만 무거운 몸과 마음이 빨리 이곳을 지나쳐 가라고 떠미는 것 같았습니다. 참 이상합니다. 내키지 않으면 포기하면 될 것을 다녀왔다는 눈도장을 찍어야 한다는 묘한 의무감으로 걸어야 했습니다.
과도한 기대감 때문이었는지 우울한 날씨에 적응하지 못한 몸 상태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비를 피하며 회랑을 한 바퀴 돌면서 바라본 경내는 정리가 잘 된 사찰 그 이상으로 다가오지 못했습니다. 유명하다는 유물도 스치듯 관람하며 정해진 코스를 따라 걸었습니다.
사찰을 돌고 난 후 버스정류장으로 향했습니다. 들어올 때는 잘 몰랐는데 호류사는 무척 큰 사찰이었습니다. 사찰의 담장을 따라 곧게 뻗은 길이 끝도 없이 늘어져 보였습니다. 넓은 길의 가운데로 네모반듯한 돌바닥이 잘 깔려 있어 편안하게 걸을 수 있었습니다. 몸과 마음이 무거워서였을까요? 담장에 어깨를 기대어 걷고 싶었지만 2차선 도로 즈음되는 너비의 길에서 차마 가운데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누가 쳐다보는 것도 아니고 뒤를 돌아봐도 따라오는 사람 한 명 없었지만 무언가 불편한 느낌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 하늘 위를 올려 봐도 어두컴컴한 하늘에서 흩뿌리는 싸리비만 어깨를 적실뿐이었습니다. 공항이나 기차역에서는 이런 기분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낯 선 땅, 낯 선 공기, 낯 선 건물, 낯 선 사람들의 시선은 그냥 그대로 지나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요하고 서늘했던 호류사의 마지막 길은 알 수 없는 진한 아쉬움을 흘리며 걸었습니다.
하루가 지났습니다. 날씨는 흐렸지만,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았습니다. 어제보다 발걸음에 힘이 붙었습니다. 적응이 되었는지 더 많은 거리를 걸었음에도 편안하게 느껴졌습니다. 동대사 대불이 유명한 나라를 거쳐 교토의 구석구석을 돌았습니다. 볼만한 관광지가 많았지만 생각해보면 수많은 정보로 이미 형태와 역사를 알고 있었기에 실물을 확인하는 정도로 여행은 계속되었습니다. 나쁘지 않았지만, 더 좋다고 느껴지는 것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금각사나 기요미즈데라는 사진보다 현장의 감동이 떨어져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러나 여행의 묘미는 기대하지 않은 곳에 있었습니다. 은각사를 둘러보고 버스를 타기 위해 걸었던 주택가가 그렇습니다. 깔끔하게 정돈된 길, 누굴 위해 마련 한지 모를 집 앞의 아기자기한 화단들, 그리고 복층 가옥들에 둘러싸인 동네 놀이터 크기만 한 묘지가 그렇습니다. 비석마다 놓인 형형색색의 꽃들이 묘지를 장식하고 있었습니다. 일부분이 떨어져 나간 낡은 비석도 있는 반면에 정교하고 반들반들한 비석도 많았습니다. 문만 열면 묘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집주인들은 어떤 생각이 들까요? 삶과 죽음을 현실로 체험하며 사는 이들에게 삶은 감사함으로 다가올까요?
일본의 주택가는 매우 고요합니다. 때론 사람보다 고양이의 느린 걸음이나 까마귀의 울음소리가 더 크게 느껴집니다. 교토 외곽에 있는 후시미 이나리 신사를 찾았을 때입니다. 영화 ‘게이샤의 추억’의 배경으로 유명한 신사입니다. 일정에 쫓기다 보니 도착할 때 즈음 해가 저물고 있었습니다. 경내를 한 바퀴 도는 동안 조명이 하나둘씩 켜졌습니다. 은은한 조명으로 꽤 운치가 있었던 경내와는 다르게 숙소로 향하는 골목길은 어둡고 고요했습니다. 골목마다 눈에 띄는 음료 자판기는 사용자들이 얼마나 있는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내려앉은 어둠이야 어디나 비슷할 텐데 거리를 감싸는 밤의 기운은 우리와는 다른 묘한 차이점을 느꼈습니다.
우리와 비슷한 풍경도 제법 만났습니다. 다운타운을 걷다 보면 광고물을 나눠 주거나 호객행위를 하는 아르바이트를 만나기도 했고, 공원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말없이 바라보시는 어르신의 모습도 보았습니다. 고즈넉한 사찰의 분위기를 흔드는 수학여행 온 학생들의 웃음소리도 반가웠고, 식당에서는 음식을 먹기 전에 사진을 찍는 젊은 여성들도 많았습니다. 한 주점에서는 한국에서 왔다고 서비스를 주시는 사장님을 만났지만, 노점에서 꼬치를 파는 할머니는 무슨 이유인지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런 것 같습니다. 희로애락(喜怒哀樂)은 어디에서나 비슷하게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다만 그 이야기를 표현하는 방식의 차이가 문화임을 조금씩 배웠습니다.
여행의 막바지에 오사카에 있는 시텐노지(사천왕사)를 찾았습니다. 호류사와 함께 백제의 영향을 받은 사찰로 알려져 있습니다. 호류사를 다녀왔기에 갈까 말까 고민하다 무료로 갈 수 있는 패스가 있다고 해서 찾아갔습니다. 오사카 주택가를 걷다 보니 사찰의 입구를 만났습니다. 제법 큰 사찰이 학교, 주택, 여러 상점과 맞닿아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찰의 형태는 호류사와 큰 차이가 없었지만, 전쟁으로 전소되어 지금의 건물은 대부분 1970년대에 복원되었습니다. 덕분에 예스러운 느낌보다는 깔끔하게 채색된 금당과 5층 탑이 일본스러운 느낌을 주었습니다. 일본에서의 걸음에 적응이 된 걸까요? 편안하고 여유롭게 경내를 돌았습니다. 호류사 때 보다 짧은 시간을 돌아보았지만, 유적과 유물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백제 양식이라고 하지만 우리와는 미묘한 차이점도 느껴졌습니다. 왕궁리 5층 석탑이나 미륵사지, 정림사지 석탑은 양식의 차이 때문인지 하늘을 떠받치는 느낌이 있다면 일본의 고대 건축물은 살포시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고요하고 정적인 느낌, 일본의 거리에서 느낀 감정과 흡사했습니다.
첫날 느꼈던 불편함이 조금씩 이해가 되었습니다. 기대감이라 불렀던 나의 감정은 어떤 고정관념으로 포장되어 있었습니다. 스스로 세워둔 예측의 경계를 벗어나자 나는 그 감정을 불편하게 여겼습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래된 역사 앞에서 내 감정을 조절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현지인들이 살고 있는 골목을 누비며 서로의 차이에 적응하고 나서야 비로소 조금씩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사카에서 마지막 일정을 보내고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일주일도 채우지 못한 일정에 간사이 지방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여전히 궁금한 것 투성이며 아쉽게 머물지 못한 곳이 더 많이 떠오릅니다. 혹여나 짧은 여행이 낯선 공간에 대한 새로운 편견을 만들어내지는 않을까 조심스럽게 모아지는 생각을 흩트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기대를 넘어 특별한 여행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걸으며 닿는 곳마다 생각의 에너지가 만들어졌습니다. 무엇보다 무심하게 스쳐 보냈던 일상의 의미를 돌아보는 여행이 되었습니다. 우리 동네의 평범한 풍경도 낯선 누군가에게는 감동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일상이 모여 역사의 한 조각을 채운다고 생각해보니 내 부족한 삶도 그리 의미 없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여행은 자신을 더욱 사랑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지쳐갈 때마다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는 것도 괜찮을 듯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