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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완 Jun 29. 2022

레미제라블 (Les Misérables)

그리고 6월 봉기


영화와 뮤지컬로 유명한 레미제라블은 우리에게 흔히 장발장이라는

주인공의 이야기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배가 고파 빵 하나 훔쳐 먹었다는 이유로 감옥살이를 마치고 나왔지만

전과가 있는 그에게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분노와 절망만 남아 있던 장발장에게 구원의 손길을 보낸 건 미리엘 주교였습니다.

주교는 갈 곳 없는 범죄자 장발장에게 먹을 것과 쉴 곳을 내어주었지만

장발장은 교회의 은식기를 훔쳐 달아났습니다.

행색이 초라한 장발장이 귀중품을 지니고 있는 것을 발견한 군인들은

장발장을 다그쳤고 그는 주교가 주신 선물이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군인들은 사실 확인을 위해 주교에게 데려갔습니다.

주교는 장발장에게 왜 이건 가져가지 않았냐며 은촛대를 내밀었습니다.

주교의 거짓말,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꾼 위대한 대작의 시작이었습니다.






빅토르 위고는 혁명의 시대를 살았습니다.

물론 그는 프랑스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바스티유 감옥 습격 사건 10년 뒤에 태어났지만

흔히 알려져 있는 프랑스혁명은 유럽 사회 전체를 흔드는 혁명의 신호탄이었고

이후 19세기 중반까지 온 유럽은 혁명의 변증법적인 역사 안에서 밀고 당기기를 반복했습니다.

영국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그의 저서에서 '혁명의 시대'를 1789년에서 1848년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1789년 바스티유 감옥 습격사건에서 시작된 혁명은 1848년 프랑스에서 일어난 2월 혁명으로

왕정이 완전히 해산되고 제2 공화국이 성립되기까지를 혁명의 시대라 부릅니다.


빅토르 위고는 이 시대를 살았고 그의 대작 레미제라블은 이 모든 시간을 바라보며

17년 동안의 기록을 모아 1862년에 초판을 발행했습니다.

레미제라블은 소설이면서도 혁명의 시대를 살아간 시민들의 삶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장발장과 주교의 이야기는 대 서사시의 시작이었습니다.

팡틴과 코제트, 코제트를 사랑하는 마리우스,

마리우스의 혁명 친구들과 마리우스를 짝사랑하는 에포닌,

그리고 에포닌의 부모이자 돈만 밝히고 사기를 치는 테나리디에 부부까지

그 시대를 설명하는 각자의 모습이자 불쌍한 사람들(Les Misérables)입니다.


영화 레미제라블에 등장하는 인물들



시대를 관통하는 대작을 그려낸 작가들은 사람에 대한 이해와 통찰력이 뛰어납니다.

헤밍웨이, 도스토예프스키, 레프 톨스토이 같은 작가들이 떠오릅니다.

이들의 작품은 언제 어느 시대에 읽어도 어색하지 않은 감동을 이끌어 냅니다.

빅토르 위고 역시 그러한 작품을 그려낸 위대한 작가입니다.


특별히 레미제라블이 마음에 남는 이유는 소설이 그 시대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했을 뿐 아니라

혁명의 가치를 넘어서는 미래의 희망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빅토르 위고는 그 미래를 꿈꾸며 과감히 선을 넘는 이야기를 그려냈습니다.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자 주교는 거짓말을 합니다.

그리고 교회의 모든 재산보다 한 사람의 생명을 중요하게 묘사합니다.

그 선택이 한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평생 죄를 뉘우치며 살기로 한 장발장은 불쌍한 여인 팡틴의 딸 코제트를 위해 살기로 결심합니다.

사랑은 그렇게 이어집니다.

코제트는 혁명의 시대에 미래를 잃어버린 한 젊은 청년의 희망이 되고

두 사람의 사랑이 죄인이라는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장발장을 비로소 자유롭게 만듭니다.


빅토르 위고는 권력을 탐하고 가난한 사람들 편에 서지 않는 교회를 비판했습니다.

심지어 그는 교회의 기도를 거부한다고 유언을 남길 정도로 현실 교회에 비판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는 너무나 종교적입니다.

용서와 사랑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기도를 거부했지만 신을 믿는다고 유언을 남겼던 그의 철학소설에 담겨 있습니다.


 




레미제라블의 후반부를 이끄는 인상적인 배경은 실패한 혁명으로 평가되는 6월 봉기입니다.


혁명의 피를 흘리며 왕정을 무너뜨렸던 프랑스는 정치인들의 기회주의적인 선택으로 

왕정이 복고되었고 왕은 권력자들과 손을 잡고 시민들을 불쌍한 사람들로 만들었습니다.

공화주의를 주장했던 대표적 정치인이자 군인, 라마르크 장군이 사망하자

1832년 6월, 그의 장례식에 모인 민중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군대에 맞서게 됩니다.


유혈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소규모의 시위자들이 단 하루 만에 진압당하고 적지 않은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시위대의 상당수가 젊은 청년들이었습니다.

이들의 쓸쓸한 희생은 무모한 자유주의자들의 반란으로 묘사되었으며

이후 프랑스 역사에서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빅토르 위고의 시선은 달랐습니다.

그는 단 하루의 짧은 봉기에서 혁명의 시대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를 찾아냈고

대 서사시의 마지막 배경으로 치열했던 민중의 삶을 현실감 있게 그려냈습니다.




죽음으로 사라져 간 청년들의 이야기를 되살려냈을 뿐 아니라 

그들의 순수한 열정과 잃어버린 꿈까지 찾아 주었습니다.

레미제라블은 안타깝게 죽어간 청년들의 희생을 

이름 없는 사건이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만들었습니다.






우리에게도 6월은 가슴 아픈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한국전쟁이라는 분단의 아픔 속에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민주화 운동으로 직선제 개헌을 이루어 냈지만 젊은이들의 안타까운 희생이 있었습니다.

찬란히 빛나는 아름다운 시절에 자신들의 미래를 바꾸기 위해 스스로 목숨까지 내어 놓아야 했습니다.

젊은이들의 희생을 딛고 역사상 가장 자유롭고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과연 그 비극의 역사는 달라져 있을까요?


여전히 우리 사회는 청년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mz세대라 불리는 그들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그들의 젊음만 부러워할 뿐, 두렵고 불투명한 미래를 바라보며 한숨짓는 모습은 외면합니다.

고독사의 연령이 빠르게 내려가고 있으며, 결혼을 포기하고, 사랑을 포기하고

스스로 외로움의 끝으로 밀어 넣고 살아갑니다.


소통이 두렵고 귀찮은 세대라고 합니다.

그럴 수밖에요. 누구도 귀 기울여 들어주지 않습니다.

가르치려는 목소리만 수없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렇게 살면 안 돼'라고 말하지만 왜 그렇게 살게 되었는지는 관심이 없습니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았던 6월의 어느 날, 참혹한 현장을 빅토르 위고는 귀 기울여 살폈습니다.

그리고 잊혀가는 그들의 목소리를 대작의 피날레로 장식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들을 세상의 주인공으로 그려냈습니다.

그에게 6월 봉기는 실패한 역사가 아닙니다.

젊은이들의 꿈과 희망이 살아 숨 쉬는 생생한 역사의 현장입니다.


이 땅의 청년들, 그리고 여전히 불쌍한 사람들로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이 

자유롭게 미래를 꿈꾸며 인생의 꽃을 피울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

혁명이 끝나도 사랑의 혁명은 끝나지 않았음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

빅토르 위고의 이야기가 눈물이 아닌 미소로 읽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한 달은 쉬려고 했었는데 6월이 가기 전 글 하나를 남기고 싶어 허겁지겁 오래된 생각을 글로 남겨봅니다.

마무리가 엉망이지만 시간이 얼마 없어 그냥 발행합니다.

부족한 부분은 너그러이 읽어주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쓰고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세상은 듣고 읽어주는 사람이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야겠다는 각오를 다져봅니다.

일상에 여유가 없네요.

올해는 너무 덥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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