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완 Jul 25. 2022

황금열쇠


세계를 여행하며 돈을 버는 보드게임이 있습니다.


블루 마블


지구를 의미하는 블루 마블은 세계를 돌면서 그 나라의 소유권과 건축권을 가지고

다른 경쟁자의 돈을 뺏는 것으로 수익을 냅니다. 

마지막 최후의 1인이 될 때까지 네모난 판에 그려진 세계를 돌거나 

시간을 정해 가장 많은 돈을 버는 사람이 1등이 됩니다.


게임을 하다 보면 함께 하는 사람들의 성향을 알 수 있습니다.

도전을 좋아하거나, 투자에 적극적인 유형이 있다면

유유히 즐기며 적당히 벌며 안정적으로 게임을 하는 유형,

게임의 승리에 집착하는 사람이 있다면 돈을 잃든 꼴등을 하든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재밌지만 참 잔인한 게임입니다.

강제로 세계를 수 십 번 돌아야 하고 걸리면 내키지도 않지만 통행세를 내야 합니다.

내 소유의 나라에 빌딩과 호텔을 세워두면 더 많은, 잘못하면 전 재산 다 잃을 만큼

상대방에게 돈을 받아 낼 수 있는 막장 호러 자본주의 게임입니다.


지금은 그저 그렇지만 어린 시절에는 저도 참 좋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세계를 여행하고, 나라를 소유하고, 큰돈을 번다는 단순한 판타지가

게임을 통해 현실처럼 느낄 수 있다니 재미없으래야 없을 수 없겠지요.






비교적 단순한 이 게임을 더욱 재밌게 만드는 요소가 있습니다.


'황금열쇠'입니다.




나라 사이사이에 놓여 있는 황금열쇠는 걸리면 무조건 황금열쇠라는 카드 한 장을 가져가야 합니다.

이름이 황금 열쇠여서 좋은 것만 있을 것 같아도 옆사람에게 축하금을 준다거나 장기자랑을 하라거나

뜬금없이 가장 비싼 내 땅을 무조건 반액에 팔라는 말도 안 되는 벌칙이 적혀 있습니다.


이리 비 현실적인 게임이 있나 싶으면서도 몇 달만에 집 값이 수 억이 오르내리는 세상을 살다 보니

게임이 현실이고 현실이 게임인 세상에서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애매할 때도 있습니다.


황금열쇠가 흥미로운 이유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게임판을 주야장천 돌기만 하는 과정 속에서 

뜻밖의 행운, 혹은 불행을 만나게 해 주는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평범한 인생에 불쑥 찾아온 뒤집어지지 않은 카드 하나는

인생을 심심하지 않게 만듭니다. 그 결과가 행운이든 불행이든지 말입니다.


어릴 시절에는 이름을 잘못 만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황금은 무조건 좋은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좋은 물건이 때론 나쁘기도 할 수 있다는 게임의 법칙에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생각이 조금씩 변해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황금을 어떻게 쓰는지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음을 깨달아갑니다.

황금을 갖고 싶은 마음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아무리 값비싼 물건도 가치 있게 쓰지 않으면 돼지 목의 진주 목걸이일 뿐이겠지요?

생각해보니 요즘은 진주보다 돼지가 더 비쌀지도 모르겠습니다.






인생이 무료해지는 시기,

매일 아침 황금 열쇠를 뒤집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해보면 어떨까요?

열쇠는 열쇠일 뿐, 문을 열고 들어가는 세상은 결국 내 걸음으로 닿을 수 있을 테니까요.

황금은 그 세계를 만들어 가는 내 마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좋았던 좋지 않았던 오늘 하루도 황금과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내일은 좀 더 행복한 카드가 쥐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의 게임을 마칩니다.



요거 하나 걸렸으면 하는 요즘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레미제라블 (Les Misérables)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