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을 달려왔던 것 같은데 돌아보면 제자리입니다.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손에 든 성적표는 기대한 만큼 나오지 않습니다. 수많은 경쟁자 중에 누군가는 1등을, 혹은 2등을 했다고 트로피를 들어 올리지만 나는 지금 어디 즈음에 서 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루이스 캐럴의 동화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는 붉은 여왕의 나라가 등장합니다. 이곳에서는 누군가 움직이면 세상도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아무리 걸어도 제자리를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붉은 여왕은 앨리스의 손을 잡고 달리지만 아무리 뛰어도 제자리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여왕은 엘리스에게 말합니다.
동화 속 이야기가 지금은 우리 사회를 이해하는 이론이 되었습니다. '붉은 여왕의 효과'라 불리는 이론은 모두가 열심히 달리고 있는 세상에선 내가 아무리 최선을 다할지라도 제자리에 머물러있는 것처럼 보이는 현실을 이야기합니다. 붉은 여왕은 앞으로 나아가려면 두 배는 더 빨리 뛰라고 말합니다. 이미 달리고 있는데 두 배를 더 빨리 뛸 수 있을까요? 차를 타거나 날아가거나 더 빠른 누군가가 대신 뛰어주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즈음 되면 경쟁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시도조차 못 해본 사람도 있고 치열한 싸움에서 밀려나 내상을 입고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군대에서는 낙오자라 불렀습니다. 훈련을 마치지 못하거나 제대로 군 생활을 못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굳이 걸음을 맞추지 않더라도 국방부 시계가 흘러가는 한, 때가 되면 누구나 전역을 맞이합니다. 낙오의 경험도 한때의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한 번 넘어지면 일어나기 어려운 것이 인생입니다. 한 번 생긴 아픔은 트라우마로 나타납니다.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기억입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도 하지만, 대부분 두려움과 공포심을 먼저 얻습니다.
패자부활전이 있습니다. 패한 사람들이 따로 모여 승부를 가르는 경기입니다. 패자부활전을 계속 치르게 된다면 실패보다 성공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도전은 승리했던 사람을 다시 만나야 합니다. 패배자에게 더욱 가혹한 환경입니다. 그래서 몇 번의 패배를 경험하고 나면 도전보다 포기가 현실로 다가옵니다.
패배를 반복할 때 스스로 패배할 것이라고 예상하게 되는 심리를 패배주의(defeatism)라고 합니다. 패배주의는 확률을 넘어섭니다. 전문화된 프로 스포츠에서 승률은 10% 미만을 기록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미국 프로농구의 최대 연패 기록은 28연패이고 메이저리그는 26연패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국 프로야구는 18연패의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처음 열 번 정도 패배할 때는 믿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조금씩 패배를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연패팀의 경기를 중계하는 아나운서는 패배주의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스스로 무너지는 심리를 이겨내야 한다는 말입니다.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일어서는 것입니다. 넘어진 곳에 계속 머물다 보면 실패의 아픔을 벗어내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다시 일어서기는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처음 한두 번은 쉽게 일어날 수 있을지라도 연거푸 실패하다 보면 다시 일어날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쉽게 일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실패에 미련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실패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불안한 희망이 두 다리를 붙잡습니다. 그리고 지난 시간의 노력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까 봐 그 자리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가능성과 미련(未練)은 다릅니다. 가능성은 불씨가 남아 있는 붉은빛을 감추고 있다면 미련은 타고 남은 검은 재만 붙잡고 있는 마음입니다. 깨끗하게 치우고 새로운 불쏘시개를 집어넣어야 하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검은 먼지만 뒤적이고 있습니다.
타인의 시선도 부담스럽습니다. 실패를 보여주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선뜻 일어서지 못합니다. 나의 실패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될까 봐 두렵습니다. 중학교 때 계주 시합에서 마지막 주자로 출전한 적이 있었습니다. 앞 주자들의 선전으로 1등을 하고 있었는데 마지막 코너를 돌다가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우리 반은 꼴등을 하고 말았고 한참 동안 친구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 앉아 있었습니다. 눈에 띄고 싶지 않았습니다. 위로조차 듣고 싶지 않았습니다. 모두의 기억 속에서 나의 실패가 지워지기만 바랬습니다.
하지만 일어서서 주위를 돌아보면 이전과는 다른 시선이 생겨납니다. 힘겹게 걸었던 지난 시간의 잘못된 방향이 보이고 나와 비슷하게 쓰러져 있거나 힘들게 걷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장면입니다. 성공을 향한 열정과 성공을 이룬 사람들의 미소만 보았다면 이제는 시선을 낮춰 실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입니다.
시선의 변화는 생각의 변화를 이끕니다. 이전에 추구하던 삶의 방식을 지양하고 새로운 삶의 철학을 마련합니다. 생각의 변화에 주목할수록 시선의 폭은 커지고 다시 일어서기 위한 자신감을 얻습니다. 일어설 때마다 우리는 새로운 시선을 배웁니다. 그래서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다 보면 처음에 원했던 방향은 아닐지라도 괜찮은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일어서고 걷고 넘어지는 과정은 인생의 수많은 도전 중 하나일 뿐임을 깨닫게 됩니다.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는 여왕의 자리에 오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앨리스의 꿈이었습니다.
동화가 끝나는 마지막 문장입니다. 우리의 모든 경쟁이 한낱 꿈일 뿐이라면 마음이 편해질까요? 어쩌면 처절했던 경쟁의 순간을 그리워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꼴등을 하더라도 만족한 걸음을 걸었다면 의미 있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절망적인 순간이라 하더라도 한 번은 더 일어서기를 응원합니다.
바람이 시원하면 걷고 싶은 마음이 강해집니다. 단순한 욕구 하나가 무거운 몸을 이끌어 일어나게 만듭니다. 인간의 무한한 욕망도 대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합니다. 나를 일어서게 만드는 모든 것을 사랑합니다. 멈춰 선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사랑받을 가치가 충분합니다.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주는 고마운 친구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