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의 시작

by 류완



정해진 방향은 없습니다.


돌아가도 괜찮고 가던 길을 계속 가도 나쁘지 않습니다. 실패와 성공 속에서 우리는 경험을 얻었고 그 경험은 어디를 가든지 위기를 맞이했을 때 더 빠른 결단을 이끄는 힘이 됩니다. 우리의 걸음은 따로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두 다리를 움직이는 방법을 따로 배운 적이 없습니다. 대부분 스스로 잘 해냈습니다. 걸음은 본능적입니다. 목표를 향한 욕구가 두 다리를 움직여 걸음을 만들어 냅니다. 일어서는 용기에 비하면 걸음은 비교적 쉬운 결단입니다.


그렇다고 일어서기보다 걸음의 의미가 더 적다는 것은 아닙니다. 좌절을 경험한 이들에게 다시 일어서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공유하고 싶은 말입니다. 오히려 실패를 맛보지 않은 도전은 두려움보다 흥분감으로 채워지기도 합니다. 간혹 하는 일마다 승승장구하는 사람은 도전을 쉽게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모두가 성공하는 세상은 없습니다. 경기마다 승리하는 선수가 있으면 연패를 감당해야 하는 선수도 나옵니다. 연이은 실패로 두려움을 쌓아 본 사람만이 다시 일어서기 위한 고통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일어서기는 걸음의 시작입니다. 한 발을 내딛는 순간이 아니라 두 다리에 힘을 주어 지금의 장소에서 이동하려는 의지가 걸음의 시작입니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 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언 'Well begun is half done'을 쉽게 표현한 말입니다. 직역하자면 ‘좋은 시작은 절반을 끝낸 것과 같다.’라는 의미입니다. 걸으며 생각하기를 즐기며 소요학파를 이끌었던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일어서는 행동은 절반의 걸음과 비슷한 의미를 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시작의 의미는 특별합니다. 시작은 나를 특별하게 만드는 도전입니다. 그러나 시작은 언제나 두려움을 동반합니다. 여유롭게 몸을 풀던 육상 선수들도 ‘제자리에(on your mark)’라는 구령과 함께 웃음기를 버리고 출발선에 자리합니다. 출발 전 우리는 극도의 긴장감을 경험합니다. 긴장감에 무너지게 되면 다리의 힘이 풀려버리거나 목표를 잃고 방황하기도 합니다. 운동선수들은 반복된 훈련을 통해 두려움을 극복합니다. 실수와 성공을 반복하면서 성공의 가능성을 높여가고 자연스럽게 두려움보다 자신감을 극대화합니다.


1595616391314.jpg 크라우드픽 image



걸음을 떼고 앞으로 나아가는 순간에는 힘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몇 발짝 걷다 보면 조금씩 힘을 빼고 걸을 수 있습니다. 외부에서 물리적인 힘을 가하지 않으면 운동하고 있는 물체는 운동 상태를 유지하려고 합니다. 관성의 법칙입니다. 한 번 탄력을 받은 걸음은 비교적 적은 힘으로도 걸을 수 있습니다. 몸에 긴장감이 빠지면서 부담감도 줄어듭니다. 시작하는 순간이 힘들고 두려울 뿐 일단 걷기 시작하면 조금씩 여유를 찾아갑니다.


주저할 필요가 없습니다. 안개가 자욱한 길에서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리다 보면 떨어지는 체온에 마음만 무거워집니다. 발끝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서 희미하게 보이는 물체를 찾아가다 보면 조금씩 전체의 풍경이 드러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선명하고 확실한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걸음은 의심을 확신으로, 두려움을 용기로 바꿉니다. 결과에 항상 만족할 수는 없겠지만 불확실한 순간에는 일단 걷기 시작해야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서두를 필요도 없습니다. 오랜 시간 지치지 않도록 천천히 속도를 유지하며 걸어야 합니다. 좋은 걸음은 자신을 아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내가 얼마나, 언제까지 걸을 수 있는지 알 수 있어야 끝까지 걸을 수 있습니다. 흥분된 마음으로 처음부터 속도를 높이면 걸음도 지치게 마련입니다.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고 이전에 걸었던 경험을 떠올리면서 자신만의 걸음을 걸으면 됩니다.



그 누구도 아닌 자기 걸음을 걸어라. 나는 독특하다는 것을 믿어라.
누구나 몰려가는 줄에 설 필요는 없다. 자신만의 걸음으로 자기 길을 가라.
바보같은 사람들이 무어라 비웃든간에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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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은 한계를 극복하는 운동이 아닙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땀을 쏟아낼 필요가 없습니다. 약간의 여유를 남기며 다음을 기약해도 좋습니다. 우리의 걸음은 오늘 하루에 끝나지 않습니다. 내일 이어지는 발걸음도 걸음의 연속입니다. 걸음은 그렇게 시간을 이어가며 내 인생을 그려냅니다.






누구도 처음 걸었던 그 순간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응원을 받고 박수를 받았을 그 순간을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인생의 가장 중요했던 첫걸음을 기억하지 못하듯 우리는 우리의 걸음을 대부분 인상 깊게 남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걸음은 출발점과 목적지를 이어주는 선입니다. 선은 점과 점들이 모여 있습니다. 일어서는 지점부터 한걸음, 한걸음이 모두 의미가 있습니다. 걸음에 의미를 부여할수록 결과보다 과정이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결과를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나만은 나의 노력과 과정을 알고 있습니다. 나의 모든 걸음을 함께 한 유일한 존재입니다. 누가 알아주기를 바랄 필요가 없습니다. 일어서고 걷고 도착하는 여정에 최선을 다했다면 스스로 잘했다고, 괜찮다고 다독여 줄 수 있지 않을까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은 자신의 걸음을 사랑하는 것으로 충분히 채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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