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완 Jan 30. 2023

아버지의 이름으로



몇 달 전, 아버지께서 심혈관 질환으로 응급실을 찾았습니다.

인생의 굴곡만큼이나 혈관은 심하게 구부러져 있었고 

막힌 혈관은 심장의 온전한 움직임을 방해하고 있었습니다.

담당 의사는 이제 수술밖에 남지 않았다고 결단을 촉구했습니다.


아버지는 수술을 결정하셨습니다.

살만큼 사셨다며 죽음은 두렵지 않지만 답답한 하루가 고역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은 어머니 대신 수술 동의서에 서명을 했습니다.


여든이 다 된 노인에게 심장 수술은 힘든 과정이었습니다.

6시간이 넘는 수술이 이어졌고, 수술 후, 섬망 증세와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셨습니다.

고령이신지라 회복 기간도 더디게 흘렀습니다.

한 달 가까이 가족은 모두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가까이에서 아버지를 수발하셨던 어머니는 아버지 못지않게 힘든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자식들은 언젠가일지 모를 아버지의 마지막 시간을 미리 마음에 적응해 볼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


항상 어려운 존재셨습니다.

엄하셨고, 명령과 순종이 부자 관계의 기본이었습니다.

대화랄 것이 길게 이어진 적도 많지 않았습니다.

형제는 듣기만 했었고 우리의 주장은 단단한 각오가 없이는 전해질 수 없었습니다.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우리 세대의 부모님 대부분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서먹서먹한 아버지와의 관계를 털어놓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크게 불만도 없이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시나브로 변해갑니다.

아버지의 시대는 저물어가고 아들이 이해하는 세상이 커져갑니다.

세상 모든 권력도 세월을 이기지 못하지만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아버지는 변하시지 않았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세우신 원리 원칙은 변함없이 굳건합니다.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난 뒤,

아들은 아버지의 가부장적인 모습에 대한 불만을 넌지시 털어놓았습니다.

한 소리 듣겠구나 싶었지만 되돌아오는 대답은 예상을 벗어났습니다.


"평생 이렇게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어떻게 바꿀 수 있겠니?"


아들은 그렇게 아버지의 기력이 다 하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허무했습니다.

항상 큰 산 같았던 존재였습니다.

든든하기도 했지만 때론 내 앞을 막아서고 움직이지 않았던 아버지,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아버지도 이제 한 걸음 떼기가 어려운 시간이 오자

비로소 자신이 바꾸지 못한 모습을 이해해 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편으로는 강산이 한 번 더 변해도 본인은 변할 수 없으리라는 결심처럼 들렸습니다.

아들은 바꿀 수 없는 아버지와의 관계에 잠시 절망감을 느꼈습니다.

가끔 보는 이웃이라면 웃으며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지만

가족이기에 가슴에 사무치는 아쉬움이 쉬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다행히 수술은 잘 되었습니다.

두어 달은 거동하기 힘들어하시더니 이후에는 수술 전만큼 회복하셨습니다.

무엇보다 수 십 년 본인의 가슴을 움켜쥐었던 혈관이

더 이상 문제되지 않는다는 결과에 이전 보다 기분이 좋아 보이십니다.

이제 남은 인생 답답한 가슴 털어놓으시고 편히 사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변하지 않은 모습 그대로 자신만의 노년을 건강히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숙제 하나가 주어졌습니다.

인생의 절반을 넘어서는 시점,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지에 대한 결심입니다.

이제 나와 가족을 위한 결정을 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나는 아버지의 아들입니다.

나에게도 아버지의 모습이 오래된 흔적처럼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다른 자상한 아버지들과 달리 저 역시 따스함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불쑥 튀어나오는 아버지라는 신념으로 아이들에게 명령과 순종을 강요하곤 했습니다.


그대로 살아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바꿔야 할 부분은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아이들에게 권력을 행사하지 않으며 최선을 다해 사랑을 고백하고

응원하며 웃음을 줄 수 있는 아버지가 되겠다고 결심합니다.


어쩌면 아버지 본인도 간절히 원했던 변화였을지 모릅니다.

우리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 저는 욕심부리던 아이를 크게 나무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아버지는 그 나이에는 다 그런 것이라며 책망하지 말기를 권면하셨습니다.

본인은 표현하지 못했던 따스한 아버지의 모습을 저에게는 담고 싶으셨을지도 모릅니다.


아버지도 그리 하고 싶으셨지만 스스로 벗어내지 못했던 그늘을 벗어 보이겠습니다.

어려운 이웃을 외면하지 말고 불의한 욕심을 좇지 말라는 

아버지의 가르침은 더욱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

그래서 이 모든 변화에 아버지의 이름을 새기겠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내 삶을 조금씩 바꾸어 나가겠습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말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등병의 편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