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의 트라우마 같은 것이 있다고 할까요?
아들에게 여자친구랑 가는 게 좋지 않겠냐고 묻자
아들은 여자친구가 그 먼 길을 홀로 돌아오게 하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참 멋진 불효자입니다.
결론은 엄마 아빠와 함께 가기로 결정이 되었습니다.
공황장애 약을 먹고 있는 아빠 대신에 사촌 동생이 운전을 맡았습니다.
출발하는 길은 썰렁했습니다.
먼저 간 친구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지만 도리어 불안감만 커졌나 봅니다.
눈치 없는 아빠와 삼촌의 그때 그 시절 이야기는 괴롭게 들렸을 겁니다.
신세 한탄을 늘여 놓던 아들은 부대 입구에 들어서자 입을 다물었습니다.
25년 만에 들어간 부대는 기대 이상으로 깨끗했습니다.
새로 지어진 막사와 건물들은 깨끗한 학교 건물들 같았고 여군들이 참 많았습니다.
저는 26개월 군 생활 하는 동안 한 번도 여군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때는 하늘 같았던 중대장이 그날은 조카뻘처럼 보였습니다.
아무튼 참 많은 것들이 변해있었습니다.
변하지 않았을까 봐 걱정했는데 일단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별의 순간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사랑한다며 아들을 꼭 안아주었습니다.
평소에는 하지 않던 행동과 말이 터져 나옵니다.
저도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힘내라는 격려를 남겨 주었습니다.
엄마의 품에서 벗어난 아들은 뒤돌아 서서 딱 한마디만 남기고 입소식 행사장으로 들어갔습니다.
"감사합니다."
살면서 백번도 더 들었을 말인데 그날 처음 들은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이 한마디를 듣기 위해 다녀온 것 같습니다.
참 다양한 감정으로 자라온 아이였기에 그 한 마디가 더 깊이 마음에 남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꼭 해주고 싶었던 말을 깜빡하고 빼뜨린 걸 알아챘습니다.
괜찮습니다.
요즘에는 군인들이 볼 수 있는 어플로 매일 편지를 보낼 수 있다고 합니다.
훈련을 마치면 그때 편지에 남겨야겠습니다.
아빠는 네가 정말로 자랑스럽다고.......
집에 돌아와 피곤함을 풀고자 잠시 누웠습니다.
갑자기 평소에는 말도 없던 둘째 아들의 목소리가 거실에서 들려옵니다.
엄마에게 형은 잘 들어갔는지, 부대는 어땠는지, 사람은 많았는지 물어봅니다.
순간 피로가 두 배로 늘었습니다.
깜빡 잊고 있었습니다.
아직 두 번째 이벤트가 남아있음을 말입니다.
p.s.
평화를 위해 나라를 지키고 있는 모든 군인들에게 깊은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가족들 모두 평안하시기를 기도합니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