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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완 Jan 18. 2023

이등병의 편지


아들의 입대 소식을  알리자 친구들이 더 흥분합니다.

'이제 다 컸구나', '애 다 키웠네'에서 축하한다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뭘 또 축하까지 하나 싶었지만 군대를 다녀온 친구들은

염려가 되면서도 성인 남자의 마지막 통과 의례를 은근히 기대하는 듯했습니다.


또 다른 의미도 있습니다.

모두 그 힘든 시절을 겪어 봤기 때문에 입대하는 아이의 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괜히 염려만 불어넣기보다 기분 좋게 다녀오는 게 좋다는 암묵적 룰이 대화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엄마들은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아내는 친구들에게 아들의 입대 소식을 알리자 염려에 염려가 이어졌다고 합니다.

아기 때 한 번 본 친구는 뜬금없이 용돈도 넣어 주었습니다.

아이 아빠가 입소식을 안 간다고 했다며 먼 길을 어떻게 다녀와야 하나 불평을 털어놓았답니다.

그러면 안 된다며 꼭 함께 다녀와야 한다는 충고가 이어졌다고 합니다.


아니 내가 내 아들 입소를 가든지 말든지 자기들끼리 흥분하고 난리가 났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혼자 다녀와야 하는 아내가 살짝 부추긴 것 같습니다.

친구들의 입을 빌려 같이 가자는 조언인 듯 협박 같은 이야기였으리라 추측합니다.






생각해 보겠다는 말로 대화를 끝마치려 할 때 아내가 물었습니다.

왜 가기 싫은 거냐고,


저는 두 가지 이유로 제 마음을 설명했습니다.


하나는 군에 대한 기억이 좋지 않아 군부대 근처도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25년 전, 제가 경험한 군 생활은 끔찍했습니다.

자세히 설명하기 어려운 부조리에다 1년 가까이 소대 막내 생활을 하면서

꼬일 대로 꼬여버린 군 생활을 보냈습니다.

제대하는 날 얼마나 기뻤는지 버스정류장까지 내내 달렸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상상하기도 싫은 경험을 했던 곳인지라

부대 안을 들어가는 마음이 내키지 않았습니다.

약간의 트라우마 같은 것이 있다고 할까요?


두 번째 이유는 광석이 형님의 노래로 답을 해 주었습니다.

이등병의 편지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부모님께 큰 절하고 대문 밖을 나설 때'


당시 저도 제 친구들도 대부분 친구들이나 여자 친구와 갔거나

혼자 조용히 다녀온 친구도 있었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온 동기들도 있었지만 연병장에서

"부모님 친지 분들은 모두 귀가하여 주십시오."라는 마이크 음성이 들리고 나면

몇몇 엄마들을 중심으로 눈물바다가 되어버리는데 이게 참 못할 짓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신도 가지 마라고 충고했다가 어떻게 그러냐며 타박만 들었습니다.

아들에게 여자친구랑 가는 게 좋지 않겠냐고 묻자 

아들은 여자친구가 그 먼 길을 홀로 돌아오게 하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참 멋진 불효자입니다.






결론은 엄마 아빠와 함께 가기로 결정이 되었습니다.

공황장애 약을 먹고 있는 아빠 대신에 사촌 동생이 운전을 맡았습니다.

출발하는 길은 썰렁했습니다.

먼저 간 친구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지만 도리어 불안감만 커졌나 봅니다.

눈치 없는 아빠와 삼촌의 그때 그 시절 이야기는 괴롭게 들렸을 겁니다.

신세 한탄을 늘여 놓던 아들은 부대 입구에 들어서자 입을 다물었습니다.


25년 만에 들어간 부대는 기대 이상으로 깨끗했습니다.

새로 지어진 막사와 건물들은 깨끗한 학교 건물들 같았고 여군들이 참 많았습니다. 

저는 26개월 군 생활 하는 동안 한 번도 여군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때는 하늘 같았던 중대장이 그날은 조카뻘처럼 보였습니다.

아무튼 참 많은 것들이 변해있었습니다.

변하지 않았을까 봐 걱정했는데 일단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별의 순간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사랑한다며 아들을 꼭 안아주었습니다.

평소에는 하지 않던 행동과 말이 터져 나옵니다.

저도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힘내라는 격려를 남겨 주었습니다.

엄마의 품에서 벗어난 아들은 뒤돌아 서서 딱 한마디만 남기고 입소식 행사장으로 들어갔습니다.


"감사합니다."


살면서 백번도 더 들었을 말인데 그날 처음 들은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이 한마디를 듣기 위해 다녀온 것 같습니다.

참 다양한 감정으로 자라온 아이였기에 그 한 마디가 더 깊이 마음에 남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꼭 해주고 싶었던 말을 깜빡하고 빼뜨린 걸 알아챘습니다.

괜찮습니다.

요즘에는 군인들이 볼 수 있는 어플로 매일 편지를 보낼 수 있다고 합니다.

훈련을 마치면 그때 편지에 남겨야겠습니다.


아빠는 네가 정말로 자랑스럽다고.......




2023년 1월 16일 화천 15사단 입소대에서



집에 돌아와 피곤함을 풀고자 잠시 누웠습니다.

큰 숙제를 끝마친 기분이 들었습니다.

갑자기 평소에는 말도 없던 둘째 아들의 목소리가 거실에서 들려옵니다.

엄마에게 형은 잘 들어갔는지, 부대는 어땠는지, 사람은 많았는지 물어봅니다.

순간 피로가 두 배로 늘었습니다.


깜빡 잊고 있었습니다.

아직 두 번째 이벤트가 남아있음을 말입니다.


p.s. 

평화를 위해 나라를 지키고 있는 모든 군인들에게 깊은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가족들 모두 평안하시기를 기도합니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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