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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완 Aug 15. 2022

기다려주기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무엇일까요?

부자 되기, 챔피언 되기, 악마가 되거나 천사가 되는 일이 생각납니다.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승강장 스피커로 열차가 지연된다는 방송이 퍼졌습니다.

그때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기다려주는 것이 아닐까?'


길을 걷다가도 앞에 어떤 사고가 생겨 길이 막히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짜증을 냅니다.

우리는 대부분 다른 길을 찾거나 건너가려 하지 수습되기까지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사실 우리는 가장 가까운 사람의 실수도 기다려주지 못합니다.

남편이나 아내, 혹은 자녀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그렇습니다.

하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 남편의 무거운 마음을 기다려주지 못합니다.

가정을 열심히 돌보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못하는 아내의 눈물을 기다려주지 못합니다.

아이들도 잘하고 싶습니다.

공부도 운동도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도 부모가 바라는 만큼 성장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성장할수록 생각만큼 잘 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더욱 힘들지만 부모들은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갈등이 일어납니다.

무기력, 우울함, 패배감으로 쓰러져가는 가족에게 카운터 펀치를 날립니다.


"도대체 뭐가 문젠데!!!"


사랑하기 때문이라 말합니다.

관심이 있으니까 왜 그러느냐고 화를 내는 것이지요.

그런데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스스로 고백하며 손을 내미는 날이 찾아옵니다.

우리는 그 순간을 기다리지 못합니다.






고백하자면 저 역시 기다리기를 못하는 편입니다.

기다리지 못하기 대회가 있다면 챔피언은 몰라도 준우승 정도는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족들이 내 마음에 들지 못할 때마다 기다리지 못하고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성장하고 나니 그동안 내 분노와 꾸지람이 크게 의미가 없었음을 깨닫습니다.

아이들은 각자의 모습대로 성장하면서 자신의 생각으로 선택하는 어른이 되어 갑니다.


여전히 아쉬운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방향과 다른 길로 가는 아이들이 못마땅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나도 나이가 들면서 내 삶에 대해 깊이 고민을 하고

아이들의 모습을 다시 살피니 그 모습이 잘못된 것이 아니란 것을 깨닫습니다.

당연히 겪어야 할 성장의 과정이었으며 그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인생을 배우고 저마다의 삶의 방식을 찾아갑니다.

부모의 방식이 아닌 자기 자신이 만들어 나갈 미래입니다.


3일째 얼굴을 못 보고 있는 큰 아들



어른이 되면 부모의 품을 떠나 각자의 방향으로 세상을 넓혀 가야 합니다.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일어서야 합니다.

성장의 과정에서 아이들이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의 생각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인생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아닐까요?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라 말합니다.

상대방의 눈물이 마를 때까지, 그리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고백할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조금만 기다려보면 어떨까요?

백 마디 조언보다 잠깐의 기다림이 더 큰 위로가 지도 모릅니다.






앞으로는 기다리기 챔피언이 되고자 합니다.

막내딸의 쉴 새 없는 투정도 잠시 기다려 주기로 합니다.

아무 말을 하지 않는 고등학생 둘째 아들은 입이 열릴 때까지 웃으며 기다려 주기로 합니다.

새벽에 몰래 들어와 빨래만 잔뜩 쌓아 놓는 큰 아들은 하숙생이라 생각하며 살기로 합니다.

아내의 타박이나 쓴소리에도 짜증 내지 않고 미소로 기다려주고자 합니다.

기다리면 답이 오겠지요.

조금은 지루하더라도 세상은 기다림 속에서 평화를 얻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내가 부릅니다.

조금만 기다려보기로 합니다.

아마도 빨래를 개라고 말할 것 같습니다.

역시 기다림이 정답인 것 같습니다.

막내가 대신 끌려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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